소련 공수군 사령관, 8월 쿠데타에 가담한 국방차관
1991년 8월 19일,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쿠데타 당시 아찰로프는 공수부대의 모스크바 진입을 조율하고 오스탄키노 TV 센터 봉쇄 임무를 맡았다.
1945년 11월 13일 타타르 자치공화국 아트닌스키 구의 아타마시 마을에서 태어나 2011년 6월 23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1966년 카잔 전차학교, 1973년 장갑병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제7근위공수사단장(1978), 제8근위군 사령관(1985~1987), 레닌그라드군관구 참모장(1987~1989)을 지냈으며 1980년 소장이 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소련 공수군을 지휘하고 1990년 12월부터 1991년 9월까지 소련 국방차관을 지냈으며, 1989년 상장으로 진급했다. 1991년 8월 17일 KGB 시설 회의에서 권력 장악에 합의한 국방차관 중 한 명으로 기소되었고, 1993년에는 루츠코이의 국방장관이 되었다가 체포되어 1994년 사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66–1973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66–1973제8근위군 전차소대장·중대장 (주독소련군집단)
- 1973–1975제44공수훈련사단 제243자주포훈련연대 부지휘관
- 1975–1977제137근위공수연대장
- 1977–1978제98근위공수사단 부사단장
- 1978–1982제7근위공수사단장
- 1984–1985제2근위전차군 부사령관 (주독소련군집단)
- 1985–1987제8근위군 사령관 (주독소련군집단)
- 1987–1989레닌그라드군관구 참모장·제1부사령관
- 1989–1990소련 공수군 사령관
- 1990–1991소련 국방차관
- 1993루츠코이 대안정부 국방장관
- 2003–2011러시아공수군재향군인연합 의장
관련 역사 사건
1991년 1월, 빌뉴스 텔레비전탑 작전
1991년 1월 11일 소련군이 빌뉴스의 인쇄소와 통신 시설을 잇따라 점거하고, 12일에는 국방차관 아찰로프가 현지에 도착해 모든 군사작전의 지휘를 맡았다. 76근위공수사단의 공수부대원과 KGB 특수부대 '알파'가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밤 텔레비전탑과 텔레비전·라디오 센터를 공격했고, 탑을 사수하려던 시민 14명이 숨졌다. 공격의 목표는 리투아니아 지도부가 국민과 소통하는 마지막 통로인 방송을 끊는 것이었으며, 이 일은 계획만 되고 실행되지 않은 최고회의 습격의 전주곡으로 기획되었다. 아찰로프는 끝까지 이 작전의 지휘 책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사망 직전 NTV 인터뷰에서는 고르바초프가 1월 13일 작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리투아니아 검찰은 빌뉴스 사건을 반인도 범죄와 전쟁범죄로 재분류하여 2015년부터 관련자들을 궐석으로 재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