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주소련 대사로 3대 회담에 배석하고 봉쇄 정책을 옹호한 민주당 외교 원로
철도 재벌의 아들로 투자은행을 세우고 유니언 퍼시픽 철도 회장을 지냈다. 무기대여법 집행을 조율하고 처칠과 스탈린에게 보내는 대통령 특사가 되었으며, 1943~1946년 주소련 대사로 테헤란·얄타·포츠담 회담에 배석했다. 얄타에서 폴란드 문제에 더 강경하게 나서라고 권했고, 1945년 헝가리 휴전협정 의정서에 미국 대표로 서명했다. 전후 케넌의 봉쇄 정책을 앞장서 옹호했고 상무장관, 마셜 계획 조정관, 뉴욕 주지사를 지냈으며 두 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노렸다. 1963년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협상했고 1968~1969년 파리 평화 회담에서 대통령 개인 대표를 맡았다.
다른 이름: 윌리엄 애버럴 해리먼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2–1946유니언 퍼시픽 철도 회장
- 1941–1943처칠·스탈린에게 보내는 대통령 특사, 무기대여 조율
- 1943–1946주소련 대사(테헤란·얄타·포츠담 회담 배석)
- 1946–1948주영국 대사, 상무장관
- 1948–1950마셜 계획 조정관
- 1955–1958뉴욕 주지사
- 1963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협상
- 1968–1969파리 평화 회담 대통령 개인 대표
관련 역사 사건
- 1945.02–08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얄타·포츠담에 배석한 주소련 미국 대사얄타 회담에 배석해 폴란드 문제에서 소련에 더 강경하게 나서라고 권했고, 1945년 3월 21일 루스벨트에게 소련의 목표가 전체주의의 확립이라고 경고하는 전문을 보냈다. 포츠담 회담에도 참석했다.
- 1945.08소련의 대일 참전과 만주 작전스탈린에게서 대일 참전 조건을 들은 주소련 미국 대사1944년 12월 스탈린이 지도를 펼쳐 놓고 남사할린·쿠릴 열도, 뤼순항·다롄항 조차권, 만주 철도 공동 운영, 외몽골 현상 유지라는 참전 조건을 밝힌 상대였다. 이 목록은 얄타의 일본에 관한 협정에 그대로 들어갔다.
- 1944–1948폴란드: 루블린 위원회에서 통일노동자당까지정부 재조직 3국 위원회의 미국 대표1945년 얄타 합의 뒤 몰로토프, 클라크 커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폴란드 임시정부 재조직을 협의하는 위원회의 미국 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