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르 블라디미로비치 야코블레프

Егор Владимирович Яковлев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0–2005 ○ 자연사

글라스노스트 시대를 연 『모스크바 뉴스』 편집장, 금기를 깨는 데 앞장서다

「잠자리에 들 때 벙어리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검열이 풀리던 시절, 점진적으로 넓혀가는 금기의 경계를 설명하며.

모스크바 역사기록대학 출신으로 『이즈베스티야』 특파원과 잡지 『주르날리스트』 창간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1986년 APN 부의장 겸 『모스크바 뉴스』 편집장에 임명되어 3만 5천 부의 영문 선전지를 8개 언어 300만 부의 글라스노스트 기관지로 키웠다. 스탈린 숙청, 아프간 전쟁, KGB 활동 등 금기를 잇달아 깨뜨렸고, 1991년 쿠데타 당시 11개 자유언론의 공동호 『옵샤야 가제타』를 발행해 저항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 뉴스』 편집과 글라스노스트의 확장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야코블레프는 주간지 『모스크바 뉴스』 편집장으로 일하며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보도를 조직했다. 스탈린 시대 숙청, 공산당 간부의 특권,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 KGB의 권한 남용을 다룬 기사는 소련의 공식 선전과 다른 쟁점을 대중에게 제기했다. 신문 발행일인 수요일에는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 편집국 앞에서 독자들이 신문을 사려고 줄을 섰다. 동료 빅토르 로샤크는 야코블레프가 단순히 문장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자들의 원고에 생각과 논점을 보태며 편집했다고 회고했다.

야코블레프는 처음부터 사회주의 체제의 폐지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은 그가 개혁을 인간적인 사회주의의 실현 가능성으로 보았으며,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서 그 목표가 달성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1991년 소련군의 리투아니아 독립운동 진압에 『모스크바 뉴스』가 항의하는 사설을 야코블레프 등과 함께 게재했고, 그는 공산당을 탈당했다. 같은 해 8월 쿠데타 둘째 날에는 11개 자유주의 성향 신문 편집자들을 모아 두 쪽짜리 공동호 『옵샤야 가제타』를 냈다. 표제는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였다. 쿠데타 이후 그는 글라스노스트 수호 재단 설립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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