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세르게예비치 플레하노프

Юрий Сергеевич Плеха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0–2002 ○ 체포 1991, 사면 1994

KGB 도청 전문가에서 경호 총괄로, 8월 쿠데타의 방아쇠를 당기다

고르바초프의 회고: 「옐친은 누군가 옆에서 도청하는 듯 불편해했다. 그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9국장 플레하노프가 그 방을 준비한 것이다.」

안드로포프의 개인 비서로 출발해 KGB 12부서(도청·검열)를 13년간 지휘한 도청 전문가. 크류치코프의 지시에 따라 1991년 7월 29일 노보오가료보 회담실을 사전 도청 장비로 세팅했고, 고르바초프·옐친·나자르바예프의 강경파 교체 밀약이 녹음되어 쿠데타 세력에 전달되면서 8월 쿠데타의 뇌관이 되었다. 쿠데타 당일에는 포로스 별장으로 날아가 공모자들을 고르바초프 앞에 들여보냈고, 실패 후 체포되어 1994년 사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포로스 방문과 쿠데타 실패 뒤의 구금

1983년부터 1991년 8월까지 플레하노프는 국가·당 지도부 경호를 맡은 국가보안위원회 제9국을 이끌었으며, 1990년 2월부터는 이 조직이 경호국으로 불렸다. 1991년 8월 18일 크림반도 포로스의 고르바초프 별장에 도착한 대표단에는 플레하노프와 발레리 볼딘, 올레그 바클라노프, 올레그 셰닌, 발렌틴 바렌니코프가 포함됐다. 그들은 다음 날 서명 예정인 신연방조약을 막으려는 비상사태 선포 시도에 앞서 고르바초프에게 비상사태 선포와 권력 이양 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별장에 사실상 연금됐고, 모스크바에서는 8월 19일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권력을 장악했다고 발표하며 파업·집회 금지와 언론 검열을 명령했다. 위원회의 지시는 군과 보안기관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고, 8월 21일 쿠데타는 무너졌다. 플레하노프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모스크바의 마트로스카야 티시나 구치소에 수감됐고, 1992년 12월 석방됐다. 국가두마가 1994년 2월 23일 사면을 의결했다. 이는 쿠데타에 대한 형사 책임이 법정에서 확정된 판결이 아니라 사면으로 종결됐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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