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 이사예비치 파소프

Зельман Исаевич Пасс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40 ✕ 처형

대숙청기 외국정보를 이끈 폴란드 작전 책임자

예비 조사에서 자신의 특별부서 근무를 이렇게 진술했다. "1934년 가을부터 부서는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규모 반혁명 분자 집단을 적발하고 제거해 왔다. 부서는 거의 항상 백 명의 체포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1922년 GPU에 입문해 군사방첩 특별부서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37~1938년 '폴란드 작전' 당시 GUGB NKVD 제3(방첩)부서 부책임자로 소련 전역의 폴란드계 시민에 대한 대량 체포·고문·처형을 지휘했다. 1938년 3월부터 10월까지 소련 대외정보국(제5부서) 책임자로 전임되었으나, 예조프 숙청의 파고 속에서 체포되어 1940년 2월 총살되었다. 1957년과 2013년 두 차례 사법 심사에서 사건 조작과 불법 수사 방법을 이유로 재활이 거부된 몇 안 되는 NKVD 고위 간부 중 한 명이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폴란드 작전: NKVD 첫 '민족 작전'의 중앙 집행자

1937년 8월 9일 정치국이 승인하고 11일 예조프가 서명한 NKVD 명령 제00485호로 시작된 '폴란드 작전'은 대숙청기 이른바 '민족 작전' 가운데 최초이자 최대 규모였다. '폴란드군사조직(POW)'이라는 날조된 간첩 음모론에 기대어, 소련의 폴란드계 국민과 구 폴란드 왕국 출신자 거의 전부를 체포 대상으로 삼았다. NKVD 자체 집계로 1937년 8월 15일부터 1938년 11월 15일까지 약 13만 9천 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그중 약 11만 1천 명이 총살되었다.

파소프는 이 작전의 중앙 집행자였다. 1936년 12월부터 GUGB NKVD 제3(방첩)부서 폴란드과장으로, 1937년 9월부터는 부서 부책임자로, 소련 전역의 폴란드계 시민에 대한 대량 체포·고문·처형을 지휘했다. 특히 동지 정당인 폴란드공산당(KPP) 지도부의 '수사'를 직접 맡아 율리안 레슈친스키-렌스키와 메치슬라프 로가노프스키 등의 총살로 끝나게 했다. 방첩 부책임자로서는 '앨범식 판결'과 지역 '트로이카'를 통한 전 연방 '민족 작전'의 대량 살해에도 책임을 졌다.

작전이 노린 것은 실재 음모가 아니라 '민족' 그 자체였고, 정통 폴란드 공산주의자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근거로 KPP는 1938년 코민테른에 의해 '간첩 조직'으로 낙인찍혀 해산되었다. 훗날 파소프의 재활이 거부된 핵심 근거도 바로 이 작전에서의 '사건 조작과 불법 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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