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오쩡

張紹曾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879–1928 ✕ 암살

롼저우 병간으로 입헌을 요구한 베이양군 장군, 1923년 화평 통일을 내건 국무총리

1879년 즈리 다청에서 태어나 베이양 무비학당을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11년 신해혁명 때 육군 제20진 통제로서 롼저우에서 병간을 일으켜 입헌을 요구했다. 민국 초 쑤이위안 장군으로 내몽골 서부 왕공 회의를 열어 그들을 위안스카이 정부에 묶어 두었고, 1917년 장쉰의 복벽에 맞서 일찍 군을 일으켰다. 1922년부터 여러 내각의 육군총장을 지냈고, 1923년 1월 리위안훙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쑨원을 베이징에 불러 남북을 화평 통일하자고 주장하다 무력 통일을 내건 차오쿤·우페이푸와 갈라졌고, 그해 6월 즈리파가 리위안훙을 몰아낼 때 물러났다. 1928년 펑위샹과 국민당에 닿아 있다는 이유로 장쭤린이 보낸 자객에게 톈진에서 암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