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카를 페퍼빌덴브루흐

Karl Pfeffer-Wildenbruch

부다페스트 포위전에서 항복을 거부하고 독일군을 지휘한 무장친위대 제9산악군단장

1907년 군에 들어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참모장교로 콘스탄티노플의 독일 군사사절단에서 일했다. 1919년 경찰로 옮겨 칠레 경찰대 책임자, 경찰학교 감찰총감을 지냈고, 친위대에 들어가 힘러의 참모부에서 일했다. 1939년 말 친위대 경찰사단을, 1943년 라트비아인 제6친위군단을 맡았다. 1944년 12월 부다페스트의 제9친위산악군단장이 되어 1944년 12월 24일부터 1945년 2월 11일까지 포위전에서 독일군을 지휘했고, 모든 항복 권유를 거부해 길고 참혹한 포위전으로 이어졌다. 탈출 시도가 실패한 뒤 소련군 포로가 되어 1949년 징역 25년을 선고받았고, 1955년 풀려나 1971년 빌레펠트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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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1919독일군 장교, 참모장교
  • 1919경찰 입직
  • 1928칠레 경찰대 책임자
  • 1936경찰학교 감찰총감
  • 1939–1940친위대 경찰사단장
  • 1943–1944제6친위군단(라트비아인)장
  • 1944–1945제9친위산악군단장, 부다페스트 방어 지휘
  • 1945–1955소련 포로, 1949년 징역 25년 선고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Alfred Rosenberg
독일 국가기관 파시스트·나치 독일 발트 독일인 1893–1946 ✕ 처형(교수형)

나치 인종 이론가로서 1941~1945년 동부 점령지 장관을 지낸 레발 태생의 발트 독일인

1893년 러시아 제국 에스토니아현의 레발(탈린)에서 태어나 리가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18년 물러가는 독일군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 1919년 1월 히틀러보다 먼저 독일노동자당에 들어갔고, 1923년 당 기관지 『푈키셔 베오바흐터』의 편집장이 되었다. 1930년 인종 이론서 『20세기의 신화』를 냈고, 히틀러에게 「시온 장로 의정서」를 소개해 유대인 음모론을 심었다. 1941년 7월 17일 동부 점령지 장관이 되어 힌리히 로제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으로 두었으나 실권은 크게 제한되었다. 발트 지역을 독일의 「생존 공간」으로 보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네 죄목 모두 유죄를 받고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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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독일노동자당 입당
  • 1923『푈키셔 베오바흐터』 편집장
  • 1930『20세기의 신화』 출간
  • 1941–1945동부 점령지 장관
  • 1946뉘른베르크 재판 사형 선고, 처형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Joachim von Ribbentrop

나치 독일 외무장관으로 독소 불가침 조약 협상을 주도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외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 협상을 주도했으며, 이 조약은 독일의 9월 폴란드 침공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추축국에 유대인을 독일의 살해 시설로 이송하고 독일 내 유대인 시민을 추방에 넘기도록 압박하는 외교 활동을 지휘했다. 국제군사재판에서 네 혐의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았고,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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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1945독일 외무장관

프리드리히 예켈른

Friedrich Jeckeln
나치당·나치 정권 파시스트·나치 독일 독일 1895–1946 ✕ 처형(교수형)

카미야네츠포딜스키·바비 야르·룸불라의 대량 총살을 지휘한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슈바르츠발트의 호른베르크에서 직물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싸웠다. 1929년 나치당, 1930년 친위대에 들어갔고, 1933년부터 브라운슈바이크의 경찰청장과 정치경찰 책임자를 지냈다. 1941년 6월 힘러에게 남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로 뽑혀 관할 지역의 아인자츠그루펜 학살을 모두 지휘했고, 카미야네츠포딜스키(2만 3600명)와 바비 야르(3만 3771명)의 대량 총살에 자신의 방식을 썼다. 11월 오스트란트로 옮겨 리가 유대인의 절멸을 명령받았고, 룸불라에서 이틀 동안 2만 5000명이 살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1945년 4월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리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46년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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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1918독일군 장교, 조종사
  • 1929–1930나치당·친위대 입당
  • 1932–1945제국의회 의원
  • 1933–1938브라운슈바이크 경찰청장, 정치경찰 책임자
  • 1941남부 러시아·우크라이나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 1941–1944오스트란트 친위대·경찰 고위 지도자
  • 1946리가 재판 사형 선고, 처형

힌리히 로제

Hinrich Lohse
독일 국가기관 파시스트·나치 독일 독일 1896–1964 ○ 고향에서 사망

1941~1944년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으로서 발트 유대인의 게토 수용과 재산 몰수를 명령한 나치 대관구장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농가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상을 입었다. 1923년 나치당에 들어가 1925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관구장이 되었고, 1933년 이 주의 주지사를 겸했다. 1941년 7월 25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에 임명되어 리가와 킬을 오갔고, 7월 27일 포고로 유대인 명부 작성, 노란 별 착용, 재산 몰수와 게토 수용을 명령했다. 리에파야의 유대인 처형을 막은 일로 해명을 요구받자 11월 15일 경제적 이해와 상관없이 모든 유대인을 없애라는 것인지 물었으나, 이후 3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1944년 8월 13일 허가 없이 오스트란트를 떠나 해임되었다. 1948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1951년 건강 문제로 풀려났고 1964년 고향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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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3나치당 입당
  • 1925슐레스비히홀슈타인 대관구장
  • 1933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지사
  • 1941–1944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
  • 1948–1951징역 10년 선고, 1951년 석방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

나치당 선전 책임자이자 선전장관으로 반유대주의와 독재를 선전했다.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당 선전 책임자로서 1926년부터 베를린 당 조직을 이끌고, 1930년 당 선전 책임자가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선전장관으로 임명한 뒤 언론·영화·라디오·문화계를 나치 이념에 맞춰 통제하고, 반유대주의 선전과 유대인 박해를 부추겼다. 1938년 11월 포그롬의 주요 선동자였으며, 전쟁 말기에는 총력전을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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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1945나치당 베를린 대관구 지도자
  • 1930–1945나치당 선전 책임자
  • 1933–1945국민계몽선전부 장관
  • 1944–1945총력전 전권위원
독일 국가기관 파시스트·나치 독일 독일 1904–1942 ✕ 암살 공격 부상으로 사망

친위대 정보·경찰기관 수장으로 홀로코스트 실행을 지휘한 나치 관리다.

1942년 반제 회의에서 하이드리히는 유럽 유대인 살해를 위해 독일 국가기관들의 협력을 조율했다.

하이드리히는 1931년 친위대에 들어가 국가보안부(SD)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1936년에는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포괄한 보안경찰을 지휘했다. 1939년 제국보안본부(RSHA)가 설치되자 수장이 되어 보안경찰과 SD를 통합 지휘했고, 유대인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나치의 박해와 살해 정책을 실행하는 핵심 기관을 이끌었다. 1941년 총독 대리로 임명된 보헤미아·모라비아에서 저항 세력을 처형하고 유대인 게토화와 강제이송을 추진했다. 1942년 1월 반제 회의를 주재해 유럽 유대인 살해를 위한 부처 간 협력을 조율했으며, 5월 체코 저항요원의 공격으로 부상한 뒤 6월 4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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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1942친위대 국가보안부(SD) 수장
  • 1936–1942보안경찰 수장, 1936–1939년 보안경찰 수석사무국장
  • 1939–1942제국보안본부(RSHA) 수장
  • 1941–1942보헤미아·모라비아 총독 대리

에드문트 페젠마이어

Edmund Veesenmayer

1944년 헝가리 주재 제국 전권대표로서 헝가리 정부에 유대인 이송을 압박한 친위대 외교관

바트키싱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뮌헨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192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2년 나치당에 들어갔고, 오스트리아 슈슈니크 총리의 사임 공작,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1941년 크로아티아 독립국 선포에 관여했다. 1944년 3월 독일의 헝가리 점령과 함께 친위대 여단지도자로서 헝가리 주재 제국 전권대표가 되어 게슈타포 등 국방군 밖의 점령 기관을 지휘했고, 헝가리 정부에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이송을 압박했다. 6월에는 리벤트로프에게 약 34만 명의 유대인이 제국으로 넘겨졌다고 보고했고, 10월에는 화살십자당의 권력 장악을 도왔다. 1949년 빌헬름가 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1951년 풀려났고, 1977년 다름슈타트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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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8뮌헨에서 정치학 박사
  • 1932나치당 입당
  • 1939체코슬로바키아 해체 공작
  • 1941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 독립국 선포 주선
  • 1944헝가리 주재 제국 전권대표
  • 1949–1951빌헬름가 재판 징역 20년, 1951년 석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