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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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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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세계 인물들

몽자 자오나

Monja Jaona
민족해방·반식민 운동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 1910–1994 ○ 자연사

혁명전선에 합류했다가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이탈한 남부 민족주의 지도자

"마다가스카르 국민은 라치라카를 다음 7년 동안 선출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부정선거를 규탄했다.

마다가스카르 남부 안탄드로이족의 민족주의 정치가다. 1943년 비밀결사 지니를 조직하고 1947년 반란에 가담해 식민 당국에 투옥된 뒤, 1958년 MONIMA를 창당해 빈곤한 남부 농민을 대변하며 프랑스에 종속된 치라나나 체제에 맞서 1971~72년 로타카 시위를 이끌었다. 라치라카의 혁명전선에 합류했다가 1977년 지방선거를 부정으로 규탄하고 탈퇴해 제2공화국의 대표적 야당 지도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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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비밀결사 지니(Jiny) 조직
  • 1946–1950지니 가담 혐의로 식민 당국에 투옥
  • 1958MONIMA(마다가스카르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 창당
  • 1959–1961톨리아라 시장
  • 1971–1972로타카 농민·학생 시위 주도, 치라나나 실각으로 이어짐
  • 1976–1977혁명전선(FNDR) 합류 뒤 1977년 지방선거 부정 규탄·탈퇴
  • 1982대선에서 라치라카에 맞서 출마, 부정 규탄 뒤 가택연금
  • 1989–1992라치라카 실각과 다당제 전환을 이끈 시위 주도

리샤르 라치만드라바

Richard Ratsimandrava

포코놀로나와 지역 공동체

권력을 넘겨받으며 라마난초아 장군에게 "저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장군님!"이라고 답했다.

마다가스카르의 군인·정치가로 1972년 내무장관이 된 뒤 전통적 지역 공동체 포코놀로나를 바탕으로 한 행정·사회 재편을 추진했다. 1975년 2월 국가원수가 됐으나 곧 암살됐다. 그의 구상은 뒤이은 라치라카 체제의 국가계획과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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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프랑스군 소위로 피아나란초아 제12해병보병대대에 배속
  • 1969마다가스카르 헌병대 사령관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마다가스카르인 장교)
  • 1972라마난초아 장군 군사정부의 내무장관
  • 1975.02국가원수 겸 정부 수반, 국방·계획 담당 국무장관

디디에 라치라카

Didier Ratsiraka
마다가스카르 국가기관 공산주의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 1936–2021

마다가스카르의 사회주의 헌장

「사회주의 혁명은 자주적이고 인도적이며 조화로운 방식으로 급속한 경제·문화 발전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유일한 선택이다」

1975년 집권한 마다가스카르 지도자다. 사회주의 혁명헌장과 제2공화국을 통해 국유화·계획 투자와 경제적 탈식민화를 추진했다. 부채와 생산 부진 속에서 1980년대 시장 지향 조정을 받아들였고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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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2프랑스 해군사관학교 졸업, 해군 장교 임관
  • 1972–1975가브리엘 라마난초아 과도정부 외무장관; 프랑스-마다가스카르 협정 재교섭, 프랑 환권 이탈
  • 1975최고혁명평의회 의장으로 국가 원수 취임
  • 1975국민투표로 대통령 선출, 제2공화국 수립
  • 1976집권당 AREMA 창당, 사무총장 취임
  • 1982대통령 재선
  • 1989대통령 재선
  • 1991파노라마 협정 체결, 대통령직 유지하되 대부분 권력 이양
  • 1993다당제 대선에서 알베르 자피에 패배, 퇴임
  • 1997대통령 재선, 재임
  • 2002대선 분쟁 끝에 7월 망명
  • 2003궐석 재판에서 공금 유용으로 10년 중노동형
  • 2011망명 9년 만에 귀국

마난다피 라코토니리나

Manandafy Rakotonirina
자유주의·공화주의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베치레오족) 1938–2019 ○ 자연사

1972년 혁명세대 좌파 정당 MFM의 창당자

MFM이 마침내 혁명전선에 들어오자 라치라카는 '더 이상 MFM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

몽자 자오나의 모니마에서 정치에 입문한 농학대 교수 라코토니리나는 1972년 5월 시위를 조직해 치라나나 정권의 퇴진을 이끈 학생세대의 지도자였다. 1972년 12월 마오쩌둥주의 좌파 정당 소민 권력 투사(MFM)를 창당했으나 1976년 라치라카 정권에 해산·연금되었다가, 이듬해 6월 혁명전선(FNDR)에 합류해 혁명최고평의회 경제위원장으로 국유기업을 맡았다. 이후 자유주의로 돌아서 1991년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고, 2009년 망명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로 체포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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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모니마(MONIMA) 입당
  • 1968모니마 안타나나리보 지부 책임자
  • 1972MFM 창당(12월 27일)
  • 1977–1989혁명최고평의회 위원·경제위원장
  • 1989대통령 선거 2위(약 20%)
  • 1991–1993경제사회복구위원회 공동위원장
  • 1993–1998국회의원(마난드리아나)
  • 2009망명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미셸린 라볼로나리소아

Micheline Ravololonarisoa

1972년 마다가스카르 학생운동을 이끈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

1972년 4월 24일부터 1960년 협력협정 폐기와 말가시화를 '제2의 독립'으로 내걸었으나 1972~1975년 군정은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란자노로는 이를 '제3의 독립'으로 부르며, FAEM 사무총장직을 둘러싼 사료도 엇갈린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태어나 자란 페미니스트 사회주의자다. 정치를 남성의 영역으로 여긴 소시민 가정 출신으로, 학생기독교운동(SCM-MPIKRIMA)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정치화되었다. 1972년 마다가스카르 문학·언어학과 3학년이던 그는 FAEM 사무총장으로 4월 24일 시작된 전국 학생운동을 이끌며 1960년 협력협정 폐기와 말가시화를 '제2의 독립'으로 내걸었고, 5월 12일 밤 체포되어 노시라바에 수감되었다. 나이로비에서 WSCF '해방' 프로그램을 맡았고, 1975년 제네바를 거쳐 1978년 나이로비로 돌아왔으며 남편 체포·석방 뒤 캐나다로 건너갔다. 1991년 영국으로 이주해 유엔여성기금(UNIFEM) 아프리카 부서장을 지내며 2010년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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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마다가스카르 문학·언어학과 3학년, FAEM 사무총장, 파업위원회 위원
  • 19725월 12일 밤 체포되어 노시라바에 수감
  • 1972 이후나이로비 WSCF 아프리카 지역사무소 프로그램 담당자로 '해방' 프로그램 지도, 세계교회협의회 인종차별 반대 프로그램 위원, 개발협력연구기구 설립 및 서아프리카 담당
  • 1975–1991제네바를 거쳐 1978년 나이로비로 복귀, 캐나다에서 여성학 대학원 수학 및 프랑스어 강의 후 영국으로 이주
  • 2010유엔여성기금(UNIFEM) 아프리카 부서장(Head of the Africa section)으로 퇴직, 이후 독립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