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ĩ tuyến 17 · 1954.07.21–1976.07.02

17도선

17th parallel (Vietnam)

1954년 제네바 협정이 베트남을 남북으로 가른 임시 군사분계선과 그 양쪽 비무장지대를 함께 부르는 이름. 협정 제1조는 분계선을 정해 베트남 인민군은 북쪽에, 프랑스 연합군은 남쪽에 집결하게 하고 양쪽 최대 5킬로미터에 비무장지대를 두었다. 실제 선은 꽝찌성 벤하이강을 따라 북위 17도 부근을 지났다. 1956년 통일 선거가 열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국경이 되었고 1976년 통일로 사라졌다.

상세

베트남 적대행위 중지에 관한 협정의 제1장 「임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임시 군사분계선을 정하고, 양쪽 군대는 철수한 뒤 그 남북에 집결한다. 베트남 인민군은 이 선의 북쪽에, 프랑스 연합군은 이 선의 남쪽에 집결한다.
임시 군사분계선은 첨부 지도(지도 제1호 참조)에 표시한 대로 정한다.
또한 적대행위의 재개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을 막는 완충지대로서, 이 분계선의 양쪽으로 분계선에서 최대 5킬로미터까지 비무장지대를 둔다.
Article 1. Une ligne de démarcation militaire provisoire sera fixée, de part et d'autre de laquelle seront, après leur repli, regroupées les forces des deux parties : les forces de l'Armée populaire du Viêt-nam au nord de cette ligne, les forces de l'Union Française au sud de cette ligne.
La ligne de démarcation militaire provisoire est fixée comme il est indiqué sur la carte jointe (voir carte n° 1).
Il est également convenu qu'une zone démilitarisée sera créée de part et d'autre de cette ligne de démarcation, à une distance de 5 kilomètres au maximum de cette ligne, pour servir de zone tampon et éviter tous incidents qui pourraient amener la reprise des hostilités.

남북의 경계는 길이 76.1킬로미터로, 서쪽 라오스와의 세 나라 접경점에서 곧게 동쪽으로 가 벤하이강의 보호수 마을에 이른 뒤 강을 따라 북동쪽 통킹만으로 나갔다. 「17도선」이라 불렸지만 실제로 위도선을 따르지는 않았고 그 부근에 걸쳐 있었을 뿐이다. 양쪽 군대는 300일 안에 각자의 집결 지역으로 옮겨야 했고(제2조), 비무장지대는 국제감시통제위원회의 기동 감찰반이 감시했다.

제네바 회의 최종 선언은 이 분계선이 임시적인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영토적 경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1956년 7월 국제 감시 아래 총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과 베트남국은 아무것도 서명하지 않았고,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은 자기 정부가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북쪽에서는 자유선거가 불가능하다며 선거를 거부했다.

1955년 남북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무장지대는 사실상의 국경으로 굳어졌다. 베트남 전쟁 동안 이곳은 남북의 전선이 되었고, 미국 해병 제3사단 정보부는 1968년 1월 비무장지대 일대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 병력을 4만 943명으로 추산했다. 경계는 1975년 남베트남 정부의 붕괴로 사실상,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통일로 법적으로 사라졌다. 한반도의 38도선·비무장지대와는 다른 대상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treaties.un.org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