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
1987 System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형성된 한국의 정치·경제·노동체제.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과 재벌 중심 성장 구조의 지속을, 노동 영역에서는 기업별 노조 체제와 전투적 조합주의의 확립을 특징으로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확대, 노동자 내부 격차 심화를 겪으며 장기 위기 담론의 대상이 되었다.
상세
1987년의 두 사건
87년 체제라는 규정은 1987년의 두 사건을 하나의 구조로 묶는다. 하나는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대중적 저항으로 확산되어 6월 29일 여당의 수용 선언을 이끌어냈고 10월 개헌으로 직선제와 5년 단임제가 제도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7월부터 9월까지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두 달 사이에 3천 건을 넘는 노동쟁의가 발생하고 다수의 신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두 사건의 결합 방식이 이 체제의 성격을 규정했다. 정치적 민주화는 헌법 개정과 선거 제도로 제도화되었으나, 노동 부문의 성과는 기업별 노조와 단체교섭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산업별 교섭이나 사회적 협약의 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기업 단위의 교섭력이 성과 배분을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경제적 내용
정치적 이행과 경제적 개방이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무역과 자본 시장 자유화, 1990년대의 세계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재벌 주도의 성장 구조는 유지된 채 시장 개방이 확대되었다. 민주화가 경제 권력의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 체제 규정의 핵심 논거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분기점이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도입, 파견 노동 합법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제도화되었고, 비정규직 고용이 급증했다. 기업별 교섭 구조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교섭력은 유지되었으나 그 밖의 노동자에게는 대표 기구가 없었으므로,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확대되었다.
위기 담론
2000년대 이후 87년 체제라는 말은 성취의 이름이 아니라 위기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치 영역에서는 대통령제와 양당 구도, 5년 단임제가 만드는 제약이 개헌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노동 영역에서는 기업별 노조 체제와 전투적 경제주의의 한계가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이 규정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하나는 시기 구분의 문제로, 1997년 이후의 변화가 87년 체제의 연장인지 별개의 체제 성립인지에 관한 논쟁이다. 다른 하나는 이 개념이 정치와 경제, 노동의 서로 다른 층위를 하나의 체제로 묶으면서 각 층위의 고유한 동학을 흐린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87년 체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조건을 논의하는 공통 어휘로 기능하고 있다.
관련 용어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7년체제' 항목 정의: 1987년을 기점으로 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변동과 특질을 통칭하는 개념
- 레디앙, '87년체제와 노동운동: 회고·성찰·전망' 노동운동 분석틀로서의 87년 체제 개념과 전투적 조합주의, 사회적 조합주의 논쟁
- 한국일보, 도재형 '87년 헌법과 노동체제 톺아보기' 87년 노동체제의 헌법적 기초: 기업의 시민권 획득과 국가 규제 권한의 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