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론
Activity theory
사람의 의식과 정신은 머릿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도구와 기호로 매개된 사회적·대상적 활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드러난다고 보는 소련 심리학의 학파와 그 국제적 후계. 세르게이 루빈시테인이 ‘의식과 활동의 통일’ 원리로 기초를 놓았고, 알렉세이 레온티예프가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이론을 이어 활동·행위·조작의 구조로 체계화했다. 철학자 에발트 일리옌코프가 그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고, 바실리 다비도프의 발달교육과 핀란드의 위리외 엥에스트룀이 확장한 ‘문화역사적 활동 이론’으로 이어졌다.
상세
왜 ‘활동’에서 마음을 설명하려 했나?
20세기 초 심리학에는 크게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보고하는 내성법으로 의식을 연구하는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을 아예 빼고 자극과 반응만 측정하는 행동주의와 러시아의 반사학이었다. 앞의 것은 의식을 바깥 세계와 끊어진 닫힌 방으로 만들었고, 뒤의 것은 사람을 기계처럼 다뤘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소련 심리학자들은 이 둘을 모두 넘어서려 했다.
그들이 찾은 열쇠가 ‘활동’(деятельность)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낡은 유물론이 대상을 관조의 형태로만 파악하고 “인간의 감성적 활동, 실천”으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람은 세계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들고 세계를 바꾸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바뀐다. 활동 이론은 이 생각을 심리학의 원리로 삼았다. 의식은 활동에 앞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활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활동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마음을 연구하려면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도구와 말로 누구와 함께 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이 생각은 오늘날 교육학, 노동 연구,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조직 연구에서 널리 쓰인다. 소련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주의 학문 가운데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갈래 가운데 하나다.
비고츠키, 루빈시테인, 레온티예프는 각각 무엇을 했나?
뿌리는 레프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이론이다. 비고츠키는 사람의 고등 정신 기능, 곧 의도적 기억·주의·개념적 사고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같은 기호와 도구를 매개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활동 속에서 형성되어 안으로 들어온다고 보았다. 비고츠키, 알렉산드르 루리야, 알렉세이 레온티예프는 이 연구를 함께 시작한 ‘트로이카’였다. 비고츠키의 이론 자체는 별도 항목인 문화역사이론에서 다룬다.
활동 개념을 심리학의 철학적 원리로 처음 세운 사람은 세르게이 루빈시테인이다. 마르부르크에서 신칸트학파 철학을 공부한 그는 1922년 무렵 이미 의식과 활동의 통일 원리를 내놓았고, 1934년 「카를 마르크스 저작 속의 심리학 문제」에서 그 원리를 마르크스의 텍스트에 근거해 정식화했다. 그의 원리는 이렇다. 정신과 의식은 활동 속에서 형성되고 활동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무엇이 먼저냐는 물음은 사라진다. 의식과 활동은 하나의 유기적 통일이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레온티예프는 1931년 말 우크라이나 하리코프로 옮겼고, 비고츠키가 1934년 일찍 세상을 떠난 뒤 그곳의 ‘하리코프 학파’를 이끌며 활동의 구조를 연구했다. 하리코프 학파는 바깥에서 하는 실천적 활동과 머릿속에서 하는 내적 활동이 같은 구조를 가진다는 문제를 파고들었다. 레온티예프는 1950년대 이후 모스크바 대학 심리학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1966년 신설된 심리학부의 초대 학부장을 맡았다. 그의 1975년 책 『활동, 의식, 인격』은 이 학파의 정전이 되었다. 루빈시테인 쪽과 레온티예프 쪽은 활동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두고 서로 비판하기도 했다.
활동·행위·조작은 무엇이 다른가?
레온티예프가 정리한 활동의 구조는 세 층으로 되어 있다. 맨 위의 ‘활동’은 어떤 필요를 채우려는 과정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동기’다. 그는 “활동의 개념은 반드시 동기의 개념과 묶여 있다”고 썼다.
Итак, понятие деятельности необходимо связано с понятием мотива.
활동은 여러 ‘행위’로 이루어진다. 행위는 의식적인 ‘목표’를 향한다. 레온티예프의 말로는 “동기의 개념이 활동의 개념과 짝을 이루듯, 목표의 개념은 행위의 개념과 짝을 이룬다.” 행위는 다시 ‘조작’으로 이루어지는데, 조작은 그 행위를 실제로 수행하는 방식으로서 주어진 ‘조건’에 맞춰진다. “행위는 목표에, 조작은 조건에 대응한다.”
Подобно тому, как понятие мотива соотносится с понятием деятельности, понятие цели соотносится с понятием действия.
Действия, как уже было сказано, соотносительны целям, операции - условиям.
레온티예프가 든 유명한 예가 원시 시대의 집단 사냥이다. 사냥이라는 활동의 동기는 먹을 것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몰이꾼이 하는 행위는 짐승을 놀라게 해 쫓아내는 것이다. 그것만 떼어 보면 오히려 먹을 것에서 멀어지는 행동처럼 보인다. 이 행위는 다른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는다는 집단적 분업 속에서만 뜻을 가진다. 개인의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는 그가 속한 사회적 활동 전체를 봐야 이해된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옮기면,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의 행위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자동차를 만드는 생산 활동, 그리고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는 동기 속에서 뜻을 얻는다. 같은 행위라도 처음 배울 때는 의식적 목표였던 것이 숙련되면 의식하지 않는 조작으로 내려간다.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기어 바꾸기는 하나하나 신경 쓰는 행위지만, 익숙해지면 조작이 된다.
일리옌코프는 어떤 철학적 근거를 주었나?
철학자 에발트 일리옌코프는 활동 이론에 철학적 토대를 주었다. 그는 현실이 사람의 의식에 주어지는 것은 활동의 형식을 통해서라고 강조하며, 피히테·헤겔·마르크스의 전통을 이어 루빈시테인, 비고츠키, 레온티예프의 심리학적 활동 이론을 철학적으로 해석했다. 그의 ‘이상적인 것’ 이론, 곧 의미와 규범이 개인의 뇌가 아니라 사회적 활동의 형식 속에 객관적으로 있다는 이론은, 사람이 그 형식을 활동 속에서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활동 이론의 학습관과 짝을 이룬다.
일리옌코프는 레온티예프가 《철학의 문제들》에서 연 활동 개념 토론에 「활동 개념과 그 교육학적 의미에 대하여」로 응답하며, 그 토론이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겨냥이 매우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1975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는 레온티예프 학부장의 초청으로 모스크바 대학 심리학부에서 연구 세미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시청각장애 아동 교육 실험(자고르스크 실험)에서도 함께했다.
Разговор, поднятый на страницах журнала «Вопросы философии» А.Н. Леонтьевым, мне представляется не только очень своевременным, но и очень точным по прицелу.
학교 교육에는 어떻게 쓰였나?
활동 이론을 교실로 가져간 사람은 심리학자 바실리 다비도프다. 그는 일리옌코프의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 사상을 비고츠키 전통과 결합해, 학습에서 일반화의 유형에 관한 독창적 이론을 세웠다. 다닐 엘코닌과 함께 만든 발달교육 체계는 아이들이 많은 사례를 외워 공통점을 뽑는 ‘경험적 일반화’가 아니라, 개념이 생겨나는 기본 관계를 탐구하는 ‘이론적 일반화’를 학습 활동으로 하게 한다. 모스크바 제91 실험학교가 그 무대였다.
이 실험은 정치적 대가를 치렀다. 다비도프는 공식 교육학의 교조를 여러 번 비판했고, 1981년 그가 엮은 『교육 발전의 철학적·심리학적 문제』가 나온 뒤 1983년 당에서 제명되고 소련 교육과학아카데미 일반·교육심리학연구소 소장에서 해임되었으며, 제91 학교 실험에서도 배제되었다. 몇 년 뒤인 1986년 그는 우신스키상을 받으며 복권되었고, 엘코닌·다비도프 체계는 지금도 러시아 초등교육의 한 갈래로 남아 있다.
소련 밖에서는 어떻게 이어졌나?
활동 이론은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 밖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을 서방에 본격적으로 옮긴 것은 북유럽 연구자들이었다. 핀란드 교육학자 위리외 엥에스트룀은 1987년 『확장에 의한 학습』을 내고, 헬싱키 대학을 중심으로 이 이론을 노동 현장과 조직 연구에 적용했다. 그는 레온티예프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공동체’(같은 대상을 공유하는 사람들), 주체와 공동체를 잇는 ‘규칙’, 대상과 공동체를 잇는 ‘분업’을 더해 ‘활동 체계’라는 삼각형 모델을 만들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콜이 만들고 엥에스트룀이 널리 알린 ‘문화역사적 활동 이론’(CHAT)이라는 이름은 비고츠키에서 갈라진 여러 흐름을 하나로 묶으려는 것이었다.
이 확장판에서 중요한 개념은 활동 체계 안의 ‘모순’이다. 예컨대 병원에서 새 전산 시스템(도구)이 들어왔는데 기존의 진료 규칙이나 의사와 간호사의 분업과 맞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엥에스트룀은 이런 모순을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새로운 활동 형태로 ‘확장’하며 배우는 계기로 보았다. 마르크스의 모순 개념이 조직 학습 이론으로 옮겨진 셈이다. 소련 안에서는 철학자 게오르기 시체드로비츠키의 ‘조직-활동 게임’도 활동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활동 이론의 기본 메시지는 사람의 능력이 머릿속에 갇혀 있지 않고 도구·언어·공동체·분업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디지털 도구와 인공지능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지금, 기술을 개인의 능력에 덧붙는 장치가 아니라 활동 체계 전체를 바꾸는 매개로 보는 이 관점은 여전히 쓸모가 크다. 동시에 그 기원은 노동과 실천이 인간을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에 있다. 영어권에서 활동 이론을 쓰는 연구가 늘었지만, 그 마르크스주의적 뿌리, 곧 사회적 노동과 그 모순에 대한 관심이 흐려졌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