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оюзная контрольная комиссия · 1943.11.10–1947.12.14

연합국 통제위원회

Allied Control Commission

제2차 세계대전 말 연합국과 휴전한 추축국 쪽 나라들(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핀란드·헝가리)에 강화조약 때까지 휴전 조건의 이행을 감독하려고 둔 연합국 기구. 이탈리아에서는 서방 연합국이, 루마니아·불가리아·핀란드·헝가리에서는 연합군(소련군) 총사령부 대표가 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주도했다. 1947년 파리 강화조약이 발효하면서 해산했다. 독일을 4국이 공동 통치한 연합국관리위원회와는 다른 기구다.

상세

첫 위원회는 1943년 9월 29일 이탈리아 항복 문서 제37조에 따라 11월 10일 세워진 이탈리아 통제위원회였다. 수석 위원은 영국의 노엘 메이슨맥팔레인, 이어 해럴드 맥밀런이 맡았고, 위원회는 1947년 이탈리아 강화조약이 맺어진 뒤 12월 14일 해산했다.

1944년 9월 12일 루마니아와의 휴전협정 제18조는 「평화가 맺어질 때까지 연합 열강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연합군(소련군) 총사령부의 전반적 지휘와 지시 아래」 조건의 이행을 규율하고 통제할 연합국 통제위원회를 두게 했고, 부속서는 루마니아 정부와 그 기관이 위원회의 모든 지시를 이행할 의무를 지며 위원회의 소재지를 부쿠레슈티로 한다고 정했다. 위원장은 명목상 로디온 말리놉스키 원수였고 실제로는 소련군 장성들이 위원회를 움직였다. 위원회는 소련이 루마니아에 공산주의 통치를 세우는 도구의 하나였고, 강화조약이 발효한 1947년 9월 15일 해산했다.

1944년 10월 28일 불가리아와의 휴전협정과 1945년 1월 20일 헝가리와의 휴전협정은 연합군(소련군) 총사령부 대표를 의장으로 하고 영국과 미국 대표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두게 했으며, 독일에 대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위원회를 소련군 총사령부의 전반적 지휘 아래 두었다. 불가리아 위원회의 의장은 표도르 톨부힌 원수, 헝가리 위원회의 의장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원수였다. 헝가리 위원회는 1945년 2월 5일 데브레첸에서 일을 시작해 국가방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토지개혁과 산업 복구를 감독했고, 1945년 11월 선거 뒤에는 소련 공사 게오르기 푸시킨과 보로실로프의 압력으로 독립소농당·공산당·사회민주당·국민농민당의 4당 연립이 꾸려졌다. 두 위원회도 1947년 9월 강화조약 발효와 함께 끝났다.

핀란드에는 1944년 9월 22일 소련인 200명과 영국인 15명으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안드레이 즈다노프 상장의 지휘로 들어왔다. 소련이 거의 전부를 장악해 공식적으로도 「연합국(소련) 통제위원회」라 불렸다. 위원회는 북부의 독일군을 몰아내는 라플란드 전쟁과 동원 해제를 요구하고, 전쟁 책임 재판과 민방위대·로타 스바르드 같은 조직의 금지, 소련 시민의 강제 송환을 요구했으며, 1947년 9월 26일 소련이 파리 강화조약을 비준하자 핀란드를 떠났다.

이 위원회들은 휴전 조건 감독 기구로서, 패전국 독일 전체를 미국·소련·영국·프랑스가 만장일치로 통치한 연합국관리위원회(Alliierter Kontrollrat, 1945~1948년 활동), 오스트리아의 연합국위원회(1945~1955), 일본의 극동위원회·대일 연합국 이사회와 구별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