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wa Warszawska (Cud nad Wisłą); ru. Варшавская битва · 1920.08.12–25

바르샤바 전투 (1920)

Battle of Warsaw (1920)

1920년 8월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투하쳅스키의 서부전선군이 바르샤바를 공격하다 피우수트스키의 반격에 무너진 전투. 8월 12일 시작된 공격을 폴란드군이 바르샤바 교두보와 모들린에서 막는 동안 16일 비에프시강에서 피우수트스키의 타격군이 북쪽으로 쳐 올라가 소비에트 전선을 갈랐다. 8월 25일 무렵 붉은 군대의 3개 군과 기병군단은 무너지거나 동프로이센으로 넘어가 억류되었다. 폴란드에서는 「비스와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상세

7월 붉은 군대는 그로드노, 브레스트, 비아위스토크를 차지하며 바르샤바로 다가왔고, 레닌은 바르샤바를 거쳐 독일 혁명과 손잡기를 기대했다. 피우수트스키는 8월 5~6일 밤 참모총장 로즈바도프스키와 함께 비스와강 뒤로 물러나 바르샤바를 지키고 남쪽 비에프시강에 정예 사단을 모아 반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8월 13~14일 라지민이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시코르스키의 제5군은 브크라강에서 반격했다. 소비에트 남서전선의 제1기병군은 리비우 공격에 묶여 오지 않았고, 이를 두고 예고로프와 스탈린의 책임 논쟁이 이어졌다.

16일 반격이 시작되자 약한 모지르 집단은 첫날 무너졌고 폴란드군은 36시간에 약 70킬로미터를 나아갔다. 제4·15·16군과 브지시캰의 제3기병군단이 사실상 해체되었고, 2만 5천~3만 명이 동프로이센으로 넘어가 억류되었다. 붉은 군대의 손실은 전사 약 1만 5천 명, 포로 약 6만 5천 명으로 추산된다. 「비스와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피우수트스키의 정적이던 민족민주당 의원 스트론스키가 만들었고, 계획을 프랑스의 베강 장군 공으로 돌리는 신화도 오래 남았지만 베강 자신은 승리도 계획도 폴란드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패배로 소비에트 러시아는 강화로 돌아섰고 1921년 3월 리가 조약이 맺어졌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