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еловежские соглашения · 1991년–현재

벨로베자 협정

Belovezha Accords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로베자 숲의 비스쿨리 정부 다차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3국 수반이 서명한 협정으로, 정식 명칭은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관한 협정'이다. 소련이 국제법의 주체이자 지정학적 실재로서 존재를 종료한다고 선언하고 그 자리에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했으며, 조약 본문은 서문과 14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1922년 소련 창설 조약의 원서명국 네 나라 가운데 트랜스캅카스 공화국이 1936년 해체된 뒤 남은 세 나라가 그 조약과 1969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근거해 탈퇴 절차법을 거치지 않고 연방을 해체한 것이다. 12월 21일 알마아타 의정서로 나머지 공화국들이 CIS에 합류하면서 70년 소비에트 국가의 공식적 종말이 확정되었다.

상세

전사

1991년 4월 23일 노보오가료보에서 고르바초프와 9개 공화국 수반이 공동 성명을 채택하면서 연방 개편 교섭이 시작되었다. 1991년 3월 17일 전연방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77%가 소련의 존속과 개혁에 찬성했으나 6개 공화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1991년 7월 말까지 '주권적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조약 초안이 마련되어 8월 20일 서명이 예정되어 있었다. 8월 19~21일 모스크바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이 일정은 무산되었고, 이후 공화국들은 각자 독립을 향해 움직였다.

서명과 비준

1991년 12월 8일 세 나라 대표단이 비스쿨리에 모였다. 서명자는 6인이었다. 벨라루스에서는 최고회의 의장 스타니슬라프 슈슈케비치와 총리 뱌체슬라프 케비치,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제1부총리 겐나디 부르불리스, 우크라이나에서는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브추크와 총리 비톨트 포킨이었다. 초안은 밤을 새워 작성되었고 다음 날 14개 항 성명이 채택되었다. 이 성명은 신연방조약 교섭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중앙의 근시안적 정책이 생활수준의 재앙적 하락을 낳았다고 선언했다.

협정 본문은 소련이 곧 국제법의 주체이자 지정학적 실재로서 존재를 종료한다고 선언하고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했다. 제14조는 조정 기구의 소재지를 민스크로 정하고 영토 내 모든 소련 기관의 활동을 종료시켰다. 12월 10일 우크라이나 최고회의가 295표 대 10표로, 이어 벨라루스 최고회의가 263표 대 1표로 비준했고 12월 12일 러시아 최고회의도 188표 대 7표로 비준해 발효되었다. 12월 21일 알마아타에서 11개국이 CIS 가입 의정서에 서명했다. 조지아와 발트 3국은 참여하지 않았고, 발트 3국은 1940년 소련 편입 자체를 불법으로 본다.

법적 근거와 논란

협정의 구성은 1922년 소련 창설 조약의 원서명국이라는 지위에 기대고 있었다. 창설 조약에는 러시아 SFSR, 우크라이나 SSR, 벨라루스 SSR, 트랜스캅카스 SFSR이 서명했고 이 가운데 3개국이 남아 있었으므로, 다른 공화국의 참여를 우회해 연방을 해체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세 나라만으로 소련 전체를 해체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법적·정치적 논란이 제기되었고, 이는 11개국이 알마아타 의정서에 서명하면서 사실상 해소되었다.

모스크바 중앙 정부는 협정의 합법성과 효력을 부인했다. 고르바초프는 다민족 국가의 운명을 3개 공화국 지도자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고 모든 공화국의 참여와 국민의 의지를 고려한 헌법적 방식으로만 결정되어야 한다고 비판했고, 서명 다음 날 성명을 내어 카자흐스탄 등이 회담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 권력은 이미 무력했다. 남은 연방정부는 나흘을 더 존속했고, 12월 25일 고르바초프의 사임과 함께 크렘린 통제권이 러시아 대통령실로 넘어갔다. 12월 26일 소련 최고회의 상원인 공화국평의회가 연방의 붕괴를 인정하고 자신과 연방을 동시에 해체하는 투표를 하면서 최종 법적 단계가 끝났다. 하원인 연방평의회는 12월 12일 러시아가 대표를 소환한 이후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소련의 체포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벨라루스 KGB가 서명 준비를 모스크바에 보고했고 특수부대가 비스쿨리를 포위했으나, 모스크바는 자리를 사수하고 명령을 기다리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 명령이 끝내 오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훗날 내전 위험과 권력 유지 목적의 체포로 비춰질 것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러시아는 소련의 승계국가가 되었다. 옐친은 12월 25일 유엔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쿠에야르에게 소련이 해체되었고 러시아가 승계국으로서 소련의 유엔 회원국 지위, 특히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계속한다고 통보했다. 소련의 부채와 핵무기에 대한 책임도 러시아에 돌아갔다. 12월 21일 알마아타 정상회담도 유엔 회원국 자격과 관련해 러시아의 승계국 지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이후에도 협정의 법적 지위는 논쟁거리로 남았다. 1996년 3월 15일 러시아 국가두마는 옐친과 부르불리스가 서명한 벨로베자 협정이 러시아 연방에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선언하는 결의를 채택했는데, 실질적 정치 결과는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9월 러시아 하스불라토프는 협정 비준이 인민대표자대회의 전속 권한이었고 최고회의 결정은 권고적 성격에 불과했다고 인정했다. 1999년 5월 옐친 탄핵 시도에서 국가두마 특별위원회는 협정 서명이 소련 및 러시아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반역죄 혐의가 있다고 결론내렸으나 탄핵은 의회 지지를 얻지 못했다.

CIS 자체는 국가가 아니라 지역 국제기구로 창설되었다. 1994년 3월 31일 CIS 경제재판소는 1991년 협정이 CIS 헌장에 우선하며 헌장은 협정을 비준한 11개국의 창설 조건을 변경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참여국 구성은 이후에도 변했다. 조지아는 2008년 협정과 알마아타 의정서, CIS 헌장을 폐기하고 2009년 CIS를 탈퇴했다. 우크라이나는 CIS 창설에 참여했으나 2014년 국가안보국방평의회가 의장직 중단을 결정하고 완전 탈퇴 절차 개시를 선언하는 등 여러 CIS 협정을 폐기하는 절차를 밟아 왔고,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클림킨은 우크라이나가 CIS의 일원이 된 적이 없으므로 탈퇴할 수 없다고 말한 반면 CIS 사무총장 레베데프는 탈퇴 통보가 없었다며 2024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CIS의 일부라고 밝혔다. 몰도바는 2026년 4월 8일 벨로베자 협정과 알마아타 의정서, CIS 헌장을 폐기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 이는 CIS 집행위원회에 통보한 뒤 1년 후 발효된다.

협정 원본은 분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2월 7일 벨라루스 외무부는 전 지도자 슈슈케비치에게 원본이 사라졌다고 알렸고, 그는 회고록 작성을 위해 원본을 찾으려 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ormal name, signatories, prehistory (Novo-Ogaryovo process, Ukrainian referendum), content of 14 articles, legal basis in 1922 Treaty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official and unofficial names, key provisions, Vienna Convention legal basis, ratification timeline
  3. themoscowtimes.com The Moscow Times (2016): firsthand account from Shushkevich, Kravchuk, and Burbulis at 25th anniversary panel; spontaneous drafting process; legal reasoning via 1922 treaty signatories
  4. 위키백과 (러시아어)
  5. 위키백과 (영문)
  6. themoscowtimes.com
  7. 위키백과 (영문)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