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unschweiger Manifest · 1870년 9월 5일

브라운슈바이크 선언 (1870)

Brunswick Manifesto of 1870

1870년 9월 5일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던 독일 사회민주노동자당(아이제나흐파) 중앙위원회가 낸 선언. 스당 뒤 전쟁의 중단과 프랑스 공화국과의 「명예로운 강화」를 요구하고 알자스-로렌 병합에 항의했다. 선언문은 압수되었고 위원 전원이 체포되어 쇠사슬에 묶인 채 동프로이센 뢰첸으로 끌려갔다. 1792년의 브라운슈바이크 선언과는 다른 문서다.

상세

전쟁이 시작될 때 브라운슈바이크의 위원회는 공격받은 쪽은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프랑스와의 전쟁을 지지했다. 자무엘 슈피어와 빌헬름 브라케의 이 입장은, 전쟁이 독일 쪽에서 의도된 것이라 보고 「형제에 대한」 무력 사용에 반대해 7월 제국의회 표결에서 기권한 아우구스트 베벨·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두 진영의 격렬한 다툼으로 창당 1년 된 당은 깨질 위기에 놓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9월 1일 무렵 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알자스-로렌 병합이 「이 전쟁을 유럽의 제도로 만드는 최선의 수단」이고 「서쪽의 폴란드」를 붙들려고 새 독일에 군사 전제를 영속시키며, 강화를 「프랑스가 잃은 영토를 되찾을 만큼 회복할 때까지의 휴전」으로 만든다고 썼다. 스당의 승리와 나폴레옹 3세의 생포 뒤 위원회는 전쟁 계속에 반대로 돌아서, 9월 5일 선언에서 프랑스와의 즉각적인 「명예로운 강화」를 요구했다. 선언은 「우리는 알자스와 로렌의 병합에 항의한다. 우리는 독일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음을 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이익을 위해, 동방의 야만에 맞선 서방 문명의 이익을 위해, 독일 노동자는 알자스와 로렌의 병합을 참고 견디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고, 루이 보나파르트를 보통 범죄자로서 프랑스 공화국에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당은 이로써 분열을 면했지만 지도부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마르크스는 9월 15일 『폴 몰 가제트』에 「브라운슈바이크에 본부를 둔 국제노동자협회 독일 지부 위원회는 이달 5일 독일 노동계급에게 보내는 선언을 내어 알자스와 로렌의 병합을 막고 프랑스 공화국과의 명예로운 강화에 기여할 것을 호소했다. 사령관 포겔 폰 팔켄슈타인 장군의 명령으로 이 선언이 압수되었을 뿐 아니라 위원회의 모든 위원, 심지어 이 문서의 불운한 인쇄공까지 체포되어 보통 범죄자처럼 쇠사슬에 묶여 동프로이센의 뢰첸으로 끌려갔다」고 썼다.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약 1,000km 떨어진 곳이었다. 1871년 1월 『데일리 뉴스』에서는 위원들이 「지난해 9월 초부터 갤리선 죄수처럼 다뤄졌고 지금도 국가반역 혐의로 사법 희극을 겪고 있으며」, 선언을 퍼뜨린 많은 노동자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고 썼다. 국가반역 기소는 집회법 위반으로 쪼그라들어 슈피어에게 구형된 수년의 자유형은 판결에서 징역 2개월로 남았다. 총평의회의 9월 9일 담화는 이 선언을 인용하며 독일 노동계급이 「이 보장의 첫째로 프랑스를 위한 명예로운 강화와 프랑스 공화국의 승인을 요구한다」고 썼고, 「독일 노동계급은 독일 중간계급과 같은 무른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월 26일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는 제국의회에 병합 없는 강화를 제안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de.wikipedia.org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3.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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