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민주주의
Christian democracy
가톨릭 사회교리와 개신교 사회윤리에 기대어 민주주의·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치사상과 정당 운동이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레룸 노바룸』이 정치적 출발점으로 꼽히며, 인격의 존엄, 연대, 보조성의 원리, 가정 중시, 시장경제를 인정하되 국가의 개입을 허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운다. 1919년 루이지 스투르초의 이탈리아 인민당 이후 정당이 생겼고, 2차 대전 뒤 이탈리아·서독·프랑스 등에서 집권 세력이 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1989년 이후 동유럽으로 퍼졌다. 공산주의를 거부하며, 귀족·지주를 대변해 온 보수주의와는 민주적·사회적 성격으로 구별된다.
상세
정의와 사상적 원천
프랑스어권 정의에 따르면 기독교민주주의는 민주적·다원적 사회 안에서 자유, 인간 존중, 인권, 형제애,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도움 같은 기독교 교회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치·종교 사상 조류다. 서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 중요한 정당들을 낳았고, 나라에 따라 우파·중도·좌파에 걸쳐 자리한다. 독일어권 개관은 가톨릭 사회교리와 개신교 사회윤리를 뿌리로 들고, 인간을 존엄하면서도 불완전한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는 인간관에서 자유·민주적 공동결정·사회정의라는 기본 가치를 끌어낸다고 설명한다. 영어권 개관은 여기에 신스콜라철학과 신칼뱅주의 전통을 더하고, 19세기의 주된 과제가 가톨릭과 민주주의의 화해,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을 둘러싼 ‘사회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정리한다. 자크 마리탱은 토마스주의 자연법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근거 지으려 했다.
형성: 1791년의 말에서 『레룸 노바룸』까지
‘기독교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1791년 11월 21일 입법의회에서 입헌파 주교 앙투안아드리앵 라무레트가 처음 썼다고 전해지지만, 당시에는 정치적 의미가 거의 없었다. 1848년부터 프레데리크 오자남과 신문 《새 시대》의 필자들이 이 말을 교회의 사회교리를 실현하는 민주 정부라는 오늘의 의미로 퍼뜨렸다. 그러나 19세기 가톨릭교회는 정치권력의 신적 기원을 고수했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 1891년 5월 15일 레오 13세는 회칙 『레룸 노바룸』에서 노동자의 빈곤을 인정하면서도 민족주의·사회주의 운동을 거부하고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활동을 촉구했다. 이 문헌의 생각은 독일 주교 빌헬름 에마누엘 폰 케텔러의 1864년 저서 『노동자 문제와 기독교』와 크게 겹친다. 1892년 레오 13세는 프랑스 가톨릭에게 공화국에 합류하라고 요청했고, 이 무렵 프랑스 가톨릭은 군주제에 남은 이들, 1871년 알베르 드 묑과 르네 드 라 투르 뒤 팽이 시작한 가톨릭 노동자 서클처럼 사회 활동에 힘쓴 이들, 정치 활동까지 나서려는 이들로 나뉘었다. 1901년 회칙 『그라베스 데 코무니 레』는 교황 문서로는 처음으로 기독교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회민주주의와 대비해 설명했다. 같은 시기 벨기에에서는 1894년 아돌프 단스 신부가 기독교인민당 이름으로 의회에 들어갔다.
정당의 성립과 양차 대전 사이
프랑스에서는 마르크 상니에의 시용 운동이 세력을 넓혔으나 1910년 8월 25일 교황 피우스 10세의 서한으로 단죄되었고, 뒤에 종교적 표지를 버린 청년공화국 연맹으로 되살아났다. 1919년 사제 루이지 스투르초가 이탈리아 인민당을 세웠고, 이 당은 유럽 최초의 기독교민주주의 정당 가운데 하나로 다른 나라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24년 인민민주당이 만들어졌고, 이들 정당은 1925년 파리에서 기독교 영감을 받은 민주 정당들의 국제사무국을 결성했다. 이 무렵 로베르 쉬망, 콘라트 아데나워,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서로 접촉했다. 독일에서는 1870년부터 가톨릭을 지키려는 중앙당이 있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가장 많은 총리를 냈다. 1931년 피우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는 기독교민주주의 철학의 바탕이 되는 보조성의 원리, 곧 작은 단위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단위가 빼앗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식화했다. 2차 대전이 다가오자 여러 나라의 기독교민주주의 활동가들은 전체주의 거부로 모였다.
2차 대전 뒤의 전성기와 냉전
전쟁 뒤 이탈리아에서는 1942년 결성된 기독교민주당이 1992~1993년까지 지배적 정치 세력으로서 1980년대까지 거의 줄곧 총리를 냈다. 서독에서는 기독교민주연합과 바이에른의 기독교사회연합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함께 아우르며 결성되었다. 동독에도 블록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이 있었고, 1990년 통일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에 합쳐졌다.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은 1990년대 초 대형 부패 추문 뒤 1993년 해산했고, 그 정치인과 유권자가 좌우 중도 정당들로 흩어지면서 ‘기독교민주주의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생겼다. 프랑스에서는 인민공화운동이 1946년 제1당이 되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1940년대부터 칠레 기독교민주당과 베네수엘라의 코페이가 유력한 세력으로 자랐다. 영어권 개관은 전후 많은 유럽인이 기독교민주주의를 우익 민족주의와 좌익 공산주의라는 극단 사이의 온건한 대안으로 보았다고 서술한다. 1989년 이후에는 동유럽에도 기독교민주주의 정당이 생겼으나 영향력은 나라마다 크게 달랐다.
경제관과 보수주의·사회주의와의 구별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은 경제가 사람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보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영어권 개관은 이들이 시간이 지나며 연대주의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로 옮겨 갔고, 1980년대부터 유럽의 기독교민주주의 정당들이 부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다고 정리한다. 경제 문제에서는 중도좌파, 사회·도덕 문제에서는 중도우파로 분류되어 왔으며, 세속화와 국가 무신론에 반대하고 공산주의를 거부한다. 독일어권 개관은 민주적·사회적 내용이 기독교민주주의를 역사적으로 귀족을 대변해 온 본래 의미의 보수주의와 구별해 준다고 쓴다. 기독교 노동조합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에서 나온 노동조합과 뚜렷이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