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독자성
Class Independence
노동계급이 자본가 계급 및 그 정당들로부터 정치적·조직적·이념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원칙. 마르크스는 1871년 런던 회의 연설에서 “노동자 정당은 어떤 부르주아 정당의 꼬리도 되어서는 안 되며, 독립적이어야 하고 자기 목표와 자기 정책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계급독립은 자본가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 거부로 표현되며, 노동계급 자신의 정당·강령·이데올로기를 건설할 것을 요구한다. 일회적 선언이 아니라 계급의식 발전의 조건이며, 마르크스는 독립을 건너뛰고 앞서 나가려는 시도를 섹트적 대체주의로 비판했다.
상세
개념의 형성
계급독자성은 19세기 노동운동이 부르주아 정당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원칙이다. 마르크스는 1871년 9월 21일 런던 회의(제1인터내셔널) 연설에서 “노동자 정당은 어떤 부르주아 정당의 꼬리도 되어서는 안 되며, 독립적이어야 하고 자기 목표와 자기 정책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설은 「노동계급 정치행동에 관하여」라는 속기 기록으로 전해지며, 프랑스어로 행해졌고 1934년에 전문이 처음 공간되었다. 마르크스의 논증은 정치로부터의 완전한 기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을 기권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들을 부르주아 정치의 품에 던지는 일이며, 파리 코뮌 이듬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행동은 이미 당면 과제가 되어 있었다. 계급 폐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이고, 혁명은 최고의 정치적 행위로서 그 수단인 정치행동을 요구한다.
같은 해 런던 회의는 “노동계급은 자기를 계급으로서 조직하고 모든 기성 부르주아 정당과 구별되고 대립되는 독자적 정치당을 구성하지 않고서는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 결의는 국가와 정치당을 부정한 바쿠닌주의자들에게 직접적 도전이었다.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 총평의회에서 독립적 노동자 정당을 통한 정치행동과 계급투쟁의 무기로서의 파업을 옹호했으며, 정치행동에 반대한 프루동주의자들과 충돌했다.
계급의식 발전의 조건
계급독립은 일회적 선언이 아니라 계급의식 발전의 조건으로 이해된다. 마르크스는 계급독립이 확립될 때 계급의식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보았고, 독립을 건너뛰고 앞서 나가려는 시도를 섹트적 대체주의로 비판했다. 엥겔스는 새로 운동에 들어선 나라마다 노동계급이 독자적 정치당으로 조직되는 것이 중대한 첫걸음이며, 강령이 미숙한 것은 불가피한 일시적 악이지만 노동계급이 자신의 운동을 가질 때 스스로의 실수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썼다. 그는 또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대형 조직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운동이 발전해 분열될 때 중요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닌과 전술 문제
레닌은 『좌익공산주의 — 하나의 유아병』에서 볼셰비키 경험이 다른 나라에 그대로 수출될 수 없고 각국이 마르크스주의 방법에 따라 일반적 혁명 목표를 구체적 조건에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레닌주의 전통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전위당의 지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지만, 계급독립의 구체적 적용 형태(노동당 가입 여부 등)는 국가별 조건에 따라 판단해야 할 전술 문제로 남는다.
레닌은 영국 공산주의자들이 노동당에 직접 가입해야 하는지를 정보 부족으로 판단하지 않았을 뿐 원칙적으로 배제하지 않았고, 계급독립의 실현을 부르주아 대표자들을 분열시켜 혁명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계기로 보았다. 그는 영국 노동계급이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겪고 그 결과를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혁명의 조건이라고 보았으며, 의회 활동을 통해 그 결과를 대중이 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의 관점에서 정부 참여는 자본가 국가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가 노동계급을 위해 무엇을 제공하지 못하는지 실물 투쟁에서 드러내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지지를 쌓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의 사례
스페인에서는 안티카피탈리스타스가 포데모스를 창당해 청중과 간부를 키웠지만 결국 이글레시아스 그룹이 당을 장악했다. 프랑스에서는 LCR이 해산하며 NPA를 창당했으나 출발 때보다 작은 규모가 되었고, 많은 간부가 메랑숑의 좌익전선으로 이탈했으며 NPA는 고립되어 섹트적 내분 극복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포르투갈의 좌익블록은 낙태권의 중대한 패배에 대응해 결성되었고, 4인터파·마오주의자·좌파 사민주의자들의 공동 지반 위에서 긴축과 실업에 대응하며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화했다. 미국 DSA는 수만 명의 신규 활동가가 모여든 장소로서 민주당으로부터의 이탈과 노동계급 조직화 열망을 처음에는 품었으나, 조직 내 반격을 거쳐 역사적 재정렬 위치로 되돌려졌다.
논쟁과 구별
광범위 좌익정당을 둘러싼 논쟁에서 한 조류는 계급독립을 혁명적 강령과 사실상 동일시하며 DSA·광범위 정당 참여를 거부하고, 다른 조류는 계급독립의 획득이 계급 발전의 실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아 섹트적 조급함을 비판한다. 광범위 좌익정당은 노동조합·운동의 조직 해체와 기성 좌파의 붕괴라는 물질적 조건에서 등장하는 대응물이며, 계급조직화와 계급독립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지만 기회주의에 포획되거나 대중적 호소력을 잃을 수 있다. 민주당 경선 진입(엔트리즘)을 옹호하는 개량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운동을 자본가 민주당에 종속시킨다는 것이 계급독립을 강조하는 조류의 비판이다. 이 조류는 자본가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거짓말이 되며 그 정당이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허구라고 본다.
계급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 노동계급에게 ‘오직 자기 자신의 힘만을 믿으라’는 실행 가능한 메시지로 제시된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개념사에서 마르크스는 계급의식화된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의 능동적 주체로 보았으며, 이는 블랑키주의적 음모나 룸펜프롤레타리아트를 동력으로 보는 견해와 구별된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서 계급독립은 레닌·스탈린을 거쳐 제도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그 내부 분파(트로츠키주의 등)의 노선 논쟁 속에서 계급협조 노선과 갈라지는 지점으로 다루어진다.
관련 인물
출처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s 1871 London Conference speech: foundational formulation that the workers' party must be independent, not a tail of any bourgeois party
- communistusa.org Contemporary Marxist explanation: class independence defined as political, organizational, and ideological independence from the capitalist class
- tempestmag.org Debate between Tempest and Left Voice on class independence as the strategic dividing line in socialist strategy, including Lenin's approach to broad parties
- communistusa.org
- tempestmag.org
- 위키백과 (영문)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