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상품교환 이론
Commodity Exchange Theory of Law
소련 법학자 예브게니 파슈카니스가 1924년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펼친 마르크스주의 법 이론.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상품의 형태를 분석한 방법을 법에 옮겨, 권리를 가진 ‘법적 주체’라는 형식은 상품 소유자들이 서로를 대등한 교환 당사자로 대하는 상품교환 관계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법’이라는 새로운 법 형식은 있을 수 없고 공산주의로 가면서 법 자체가 국가와 함께 사멸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소련 법학을 이끌었지만 1930년대에 공격받았고 파슈카니스는 1937년 처형되었으며, 1970년대 서독의 국가 도출 논쟁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상세
혁명 뒤 법은 무엇이 되어야 했나?
1917년 혁명으로 옛 제국의 법은 무너졌지만 새 사회에도 계약과 재산, 범죄와 재판은 남았다. 볼셰비키 법률가들은 곤란한 물음 앞에 섰다. 노동자 국가의 법은 부르주아 법과 무엇이 다른가? 마르크스는 법에 관해 체계적인 이론을 남기지 않았다. 흔한 답은 법이 지배계급의 의지와 이익을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권력을 잡으면 법의 내용만 바꾸어 ‘프롤레타리아 법’을 만들면 된다.
예브게니 파슈카니스(1891~1937)는 물음을 바꾸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혁명 운동 때문에 독일로 떠나 1914년 뮌헨 대학에서 법학 박사가 되었고, 혁명 뒤 1918년 모스크바에서 판사로 일했으며, 1922년 페테리스 스투치카와 함께 공산아카데미의 법학부를 세웠다. 그가 보기에 법이 계급 이익을 담는다는 말은 맞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진짜 물음은 이것이었다. “왜 계급 지배는 있는 그대로, 곧 주민 일부가 다른 일부를 사실상 굴복시키는 것으로 남지 않고 공식적인 국가 권력의 형태를 띠는가?” 왜 지배계급의 강제 기구는 그 계급의 사적 기구가 아니라 사회에서 떨어진 비인격적인 공적 권력의 모습을 하는가?
почему господство класса не остается тем, что оно есть, т. е. фактическим подчинением одной части населения другой, но принимает форму официальн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властвования
이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던진 물음과 같은 꼴이다. 마르크스가 노동이 왜 가치라는 형태를 띠는지 물었듯(이 사전의 ‘가치형태’ 항목), 파슈카니스는 사회관계가 왜 ‘법’이라는 형태를 띠는지 물었다.
파슈카니스는 무엇을 주장했나?
파슈카니스의 출발점은 법적 주체다. “모든 법적 관계는 주체들 사이의 관계다. 주체는 법 이론의 원자, 더는 쪼갤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요소다.”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을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요소에서 시작했듯 법 이론을 주체에서 시작했다.
다음 고리는 상품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보다 상품 소유자들의 사회다.” 사람들의 생산 관계는 노동 생산물의 가치라는 물적 형태를 띤다. 그런데 『자본』 2장에서 마르크스가 말했듯 상품은 제 발로 시장에 가서 서로 바뀔 수 없다. 상품은 물건이므로 사람 앞에 무방비하다.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상품의 보호자들이 서로를 그 물건에 의지를 둔 인격으로, 상대의 동의를 얻어서만 상대의 물건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파슈카니스의 중심 명제가 나온다. “노동 생산물이 상품의 성질을 얻어 가치의 담지자가 되는 것과 동시에, 사람은 법적 주체의 성질을 얻어 권리의 담지자가 된다.”
Поэтому одновременно с тем, как продукт труда приобретает свойство товара и становится носителем стоимости, человек приобретает свойство юридического субъекта и становится носителем права
이 대칭은 역설을 품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물건이 사람을 지배한다. 상품으로서 물건은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관계를 제 안에 사물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사람이 물건을 지배한다.” 법적 주체는 자유롭고 평등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 여겨지지만, 그 자유는 등 뒤에서 움직이는 가치 법칙에 경제적으로 매여 있는 대가로 얻은 것이다. 파슈카니스는 이를 상품물신성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상품물신성은 법적 물신성으로 보완된다.” 그의 유명한 정식으로는 “법적 주체란 하늘로 들어 올려진 추상적 상품 소유자”다.
Итак, юридический субъект — это вознесенный в небеса абстрактный товаровладелец.
그는 이 분석을 형법에도 적용했다. 복수가 관습으로 규제되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보복이 되는 것은 금전 배상 제도가 함께 자랄 때다. “등가의 관념, 이 최초의 순수한 법적 관념은 바로 상품의 형태에서 나온다.” 범죄는 계약 관계가 사후에 맺어지는 특수한 거래로, 형벌은 죄의 무게만큼 치르는 값으로 다뤄진다. 국가가 비인격적인 ‘일반 의지’나 ‘법의 지배’로 나타나는 것도 사회가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보았다.
같은 이유로 파슈카니스는 당시 유럽 법학을 이끌던 한스 켈젠의 순수법학을 비판했다. 켈젠은 법 규범과 그것이 규율하는 사회관계를 엄격히 나누었지만, 파슈카니스는 “관계가 규범보다 앞선다”고 보았다. 아무도 빚을 갚지 않는 사회라면 빚을 갚으라는 규범은 실제로는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왜 ‘프롤레타리아 법’은 없다고 했나?
이 이론의 정치적 결론은 대담했다. 파슈카니스가 책을 쓴 것은 시장 거래를 다시 허용한 신경제정책 시기였다. 그는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 첫 단계조차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에 갇혀 있다고 한 대목에 주목했다. 마르크스가 상정한 것은 생산수단이 사회 전체에 속하고 생산자들이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는 사회, 곧 “우리가 겪고 있는 신경제정책보다 높은 단계”인데도, 노동량에 따른 분배라는 등가 교환의 원리 때문에 거기서도 부르주아적 권리는 남는다.
그렇다면 새 계급을 위한 새 법 형식을 만들자는 주장은 혁명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 형식의 불멸을 선포”하는 것이다. 법 형식은 상품 교환과 함께 생겨났으므로, 교환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부르주아 법 범주의 사멸은 법 일반의 사멸, 곧 사람들의 관계에서 법적 계기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뜻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새로운 법 형식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법적 형식 일반의 사멸”로 그렸다는 것이 파슈카니스의 결론이었다(이 사전의 ‘국가의 사멸’ 항목).
Отмирание категорий буржуазного права в этих условиях будет означать отмирание права вообще, т. е. постепенное исчезновение юридического момента в отношениях людей.
1920년대 소련에서 이 이론은 주류였다. 미국에서 ‘상품교환 학파’로 알려진 파슈카니스의 학파는 1920년대 말까지 소련 법이론을 이끌었다. 그는 1925~27년 스투치카와 함께 『국가와 법 백과사전』을 엮고 잡지 《법의 혁명》을 냈다. 반론도 있었다. 법학자 I. P. 라주몹스키는 법적 형식을 분석할 때 주체 개념을 바탕에 두는 데 반대했다. 주체는 발달한 부르주아 사회의 범주라 너무 복잡하고 이전 시대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사실상의 점유에서 법적 소유로 발전하는 관계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슈카니스는 1929년 제3판 서문에서도 이 책을 “마르크스주의적 법 비판의 첫 시도”로 남겨 두겠다며 본질적인 내용을 고치지 않았다.
1930년대에 이 이론은 어떻게 무너졌나?
스탈린 체제가 굳어지면서 법이 사라진다는 이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1930년 파슈카니스는 ‘프롤레타리아 법’ 또는 ‘사회주의적 권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공격받았고, 국가 이론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는 공산주의에서 국가가 사멸한다는 명제와 프롤레타리아 법 또는 사회주의 법이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철회해야 했다. 그 대가로 1931년 소비에트 건설·법 연구소 소장이 되었고, 1936년 소련 법무인민위원 대리가 되어 1936년 헌법을 만드는 위원회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1937년 1월 20일 그는 체포되었고, 그 연구소 자리는 안드레이 비신스키가 이어받았다. 파슈카니스는 1937년 9월 4일 반혁명 테러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참의회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같은 날 총살되었다. 그는 1956년 3월 31일 복권되었다.
비신스키는 1938년 7월 첫 전연방 법학자 협의회 보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학의 기본 과제」에서 “비마르크스주의” 법학의 분쇄를 결산하고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적” 법 이해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사전의 ‘사회주의적 합법성’ 항목이 다루는, 국가가 제정한 법을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강조하는 노선이다. 10년 뒤인 1948년 보고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Около 15-20 лет назад мы пережили болезнь правового нигилизма, когда советское право объявлялось “юридическим барахлом”.
“15~20년 전 우리는 법 허무주의라는 병을 앓았다. 그때 소비에트 법은 ‘법률 잡동사니’로 선언되었다.” 그는 소비에트 법이 “어떤 식으로 뒤집어 고친 부르주아 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민법 대신 ‘경제법’을 내세운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 붉은 스페란스키들은 있는데 법을 불태우는 붉은 볼테르들은 언제 나오는가?”라고 외쳤다며 스투치카를 이름으로 조롱했다.
평가는 엇갈린다. 비신스키 자신은 소비에트 법을 부정한 1920년대를 ‘병’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제정한 법의 권위를 내세웠으며, 그의 이해는 이후 소련 법학의 정설이 되었다. 러시아 법사학자 세르게이 코단은 비신스키 시대의 입법이 당과 스탈린의 정치적·이념적 방침을 사회에 규범으로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본다. 러시아 법철학자 블라디크 네르세샨츠는 비신스키의 법 정의를 비판하며, 그 진짜 목적이 “법이 있을 수 없는 곳에 법이 있는 듯한 외관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미국 법철학자 론 풀러는 1949년 논문 「파슈카니스와 비신스키」에서 두 사람의 대립을 마르크스주의 법 이론 발전의 갈림길로 분석했다.
소련 밖에서는 어떻게 읽혔나?
파슈카니스의 책은 1929년 빈에서 독일어로 나왔고, 카를 코르슈가 서평을 썼다. 1966년 서독에서 코르슈의 서평을 붙여 다시 나왔고, 1970년대 독일어권의 ‘국가 도출 논쟁’에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국가를 지배계급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구조적으로 필요한, 계급들과 상대적으로 떨어진 형태로 보려는 이 논쟁에 파슈카니스의 물음, 곧 계급 지배가 왜 비인격적 공권력의 형태를 띠는가가 그대로 이어졌다. 서독의 신마르크스 독해도 1920년대의 파슈카니스와 루빈을 출발점으로 꼽는다(이 사전의 ‘가치형태’ 항목).
이 이론은 지금도 마르크스주의 법학의 고전으로 읽힌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는 2017년 「파슈카니스 다시 읽기」를 발표했다. 한국에는 2008년 『법의 일반이론과 맑스주의』(박대원 옮김)로 번역되었다.
오늘날 왜 읽는가?
법의 상품교환 이론은 법을 중립적인 도구로도, 지배계급의 명령으로만도 보지 않는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노동자와 고용주는 법 앞에서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지만, 그 평등은 노동력을 사고파는 교환의 평등이다. 파슈카니스는 이 형식적 평등이 어디서 오는지 물었고, 그 물음은 권리와 법치를 둘러싼 오늘의 논쟁에서도 되풀이된다. 법이 사멸한다는 결론이 소련 국가 건설의 현실과 충돌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사실은, 이론과 국가 권력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로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