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체회의 (1949)
First Plenary Session of the CPPCC (1949)
1949년 9월 21~30일 베이핑 중난하이 화이런탕에서 열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준비한 회의. 공산당·민주당파·인민단체·지역·인민해방군·소수민족·화교 대표 662명이 모여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직권을 대행하며 정치협상회의 조직법, 중앙인민정부 조직법, 임시 헌법 구실의 공동강령을 채택하고, 수도·국기·국가·기년을 정하고,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하는 중앙인민정부위원회를 뽑았다.
상세
공산당이 1948년 5월 1일 제안한 「새 정치협상회의」는 1946년 1월 충칭의 정치협상회의와 구별해 그렇게 불렸고, 1949년 6월 15일 베이핑에서 준비회의를 열었다. 준비회의에서 장시뤄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제안했고, 9월 21일 첫 전체회의에서 이름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로 바뀌었다. 대표는 정당 165명, 지역 116명, 인민해방군 71명, 단체 235명, 특별 초청 75명이었다.
9월 21일 마오는 개막사에서 인류의 4분의 1인 중국 인민이 “이제 일어섰다”고 말했다. 27일 회의는 두 조직법과 함께 베이핑을 수도로 하여 베이징으로 고치고, 서력 기원을 쓰며, 「의용군 행진곡」을 대리 국가로, 오성홍기를 국기로 정했다. 29일 공동강령을 채택했고, 30일 마오를 주석으로, 주더·류사오치·쑹칭링·리지선·장란·가오강을 부주석으로 하는 중앙인민정부위원회를 뽑고 인민영웅기념비의 초석을 놓았다.
1954년 9월 보통선거에 의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면서 정치협상회의는 입법 직권을 넘기고 통일전선의 자문 기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