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논리
Dialectical logic
사유의 형식과 법칙을 다루는 논리학을 내용 없는 추론 규칙의 학문이 아니라, 현실의 발전과 모순을 개념 속에 재생산하는 사유 운동의 학문으로 세우려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기획. 헤겔의 『논리학』에서 출발해, 레닌이 1915년 메모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에는 “논리학, 변증법, 인식론(세 낱말이 필요 없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이 적용되어 있다고 쓴 데서 강령을 얻었다. 소련에서는 에발트 일리옌코프가 이를 가장 깊이 발전시켜 1974년 『변증법적 논리』를 냈고, 그 과정에서 형식논리학과의 관계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벌어졌다.
상세
왜 ‘논리’가 문제가 되었나?
학교에서 배우는 논리학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같은 추론이 내용과 상관없이 형식만으로 타당한지를 따진다. 이런 형식논리학은 생각을 정확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 때, 예컨대 마르크스가 상품이라는 단순한 관계에서 자본주의 전체를 설명해 낼 때 그 사유는 어떤 길을 밟았는가? 형식논리학은 이미 있는 개념들 사이의 추론을 점검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하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변증법적 논리는 바로 이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다. 현실의 사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내부의 모순 때문에 움직이고 변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파악하는 개념도 고정된 정의의 목록이 아니라, 대상의 발전을 따라 스스로 풍부해지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 생각은 헤겔에게서 시작되었고, 마르크스주의는 그것을 유물론의 토대 위에 놓으려 했다. 소련에서 이 문제는 철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형식논리학은 ‘부르주아 학문’인가 같은 정치적 논쟁과 얽혔다. 변증법 일반을 다루는 변증법 항목과 달리, 이 항목은 사유의 학문으로서의 변증법, 곧 논리학의 문제를 다룬다.
레닌은 무엇을 남겼나?
변증법적 논리의 강령은 레닌이 1914~1915년 스위스 베른의 도서관에서 헤겔을 읽으며 남긴 노트, 곧 『철학 노트』로 묶인 메모에서 나왔다. 1915년에 쓴 「헤겔 변증법(논리학)의 계획」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마르크스가 ‘논리학’(대문자로 된)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본』의 논리를 남겼다.” 그리고 『자본』에는 “하나의 과학에 유물론의 논리학, 변증법, 인식론(세 낱말이 필요 없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이 적용되어 있다.” 이 메모는 1930년에야 『레닌 문집』 제12권으로 처음 인쇄되었다.
применена к одной науке логика, диалектика и теория познания [не надо 3х слов: это одно и то же] материализма
같은 해의 단편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에서도 레닌은 “변증법이 바로 (헤겔과)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이라며, 플레하노프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점을 놓쳤다고 썼다. 레닌의 이 생각을 ‘논리학·변증법·인식론의 일치’ 테제라고 부른다. 논리학은 사유의 형식만이 아니라 사유가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 전체를 다루어야 하고, 그 과정의 법칙은 곧 세계 자체의 발전 법칙이라는 것이다.
Диалектика и есть теория познания (Гегеля и) марксизма
레닌은 1921년 노동조합 논쟁에서 부하린의 절충주의를 비판하며 이 논리를 쉬운 예로 풀어 보였다. 유리잔은 마시는 도구이기도, 원통형 물체이기도, 문진이기도 하다. 형식논리는 이 중 하나의 정의를 고르는 데서 멈추지만, 변증법적 논리는 더 나아간다. 첫째, 대상의 모든 측면과 연관, 매개를 연구해야 한다. 둘째, 대상을 그 발전과 “자기운동” 속에서 봐야 한다. 유리잔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특히 그 용도와 쓰임새, 주변 세계와의 연관이 변한다. 셋째, 인간의 실천 전체가 진리의 기준으로서 대상의 규정에 들어가야 한다. 넷째, “추상적 진리는 없으며,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
диалектическая логика требует, чтобы брать предмет в его развитии, «самодвижении» (как говорит иногда Гегель), изменении.
диалектическая логика учит, что «абстрактной истины нет, истина всегда конкретна»
일리옌코프는 왜 대학 강단에서 쫓겨났나?
1953년 철학연구소 변증법적 유물론 분과의 연구원이 된 젊은 철학자 에발트 일리옌코프는,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에서 『자본』의 논리를 다루는 특별 세미나를 열고 있었다. 1954년 4월 그는 동료 발렌틴 코로비코프와 함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철학과 자연·사회에 관한 지식의 상호 연관 문제에 대하여」라는 테제를 내놓았다. 핵심 주장은 철학이 개별 과학의 문제를 대신 풀어 주는 ‘과학의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의 본성을 연구하는 인식론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현으로 “철학은 과학적 사유와 그 법칙·형식에 관한 학문”이다.
이 테제는 당시 공식 철학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스탈린 시대의 교과서식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계 전체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을 다루는 존재론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1955년 2~3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학술·문화부 위원회가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를 점검했다. 위원회 보고서는 두 사람의 테제를 “오래전에 당이 분쇄하고 단죄한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의 재발”이라고 규정했고, 일부 학생들이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순수 사유’로 도피하며 “오랫동안 신문을 읽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1955년 3월 25일과 29일 철학부 학술위원회는 두 사람을 헤겔주의로 몰아 모스크바 대학 강의 자격을 빼앗았다. 코로비코프는 당 견책을 받고 대학에서 해고되어 철학 연구를 그만두고 《프라우다》 국제 기자가 되었다. 일리옌코프는 철학부 강의에서 밀려났지만 철학연구소 자리는 지켜 평생 그곳에서 일했다.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가 그를 옹호했고, 그의 첫 논문은 1955년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다. 이 사건은 1930~1931년의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 규탄이 스탈린 사후에도 철학 논쟁의 무기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 그의 입장은 이후 반대파에게서 ‘인식론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형식논리학과는 어떤 관계인가?
변증법적 논리를 둘러싼 또 하나의 큰 논쟁은 형식논리학과의 관계였다. 스탈린 시대 소련에서는 학문의 계급성·당파성이 강조되면서 전통 논리학이 ‘형식적’, ‘낡은’,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배척당했다. 변증법적 논리의 지지자들은 세계가 끊임없이 운동하고 모순을 통해 발전하는데, 형식논리는 그것을 굳은 형태로만 붙잡는다고 보았다. 모순을 허용하지 않는 형식논리의 원리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유효하며, 그래서 형식논리는 ‘초보적인’, ‘낮은’ 논리이고 변증법적 논리는 보편적이고 ‘높은’ 논리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전후에는 이런 배척이 멈추고 두 논리의 양립이 강조되었다. 1954년 『소련 대백과사전』 제2판의 「논리학」 항목은 논리 법칙 자체에는 계급성이 없다고 정리했다. 1950년대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와 《철학의 문제들》 지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변증법적 논리 쪽에는 비탈리 체르케소프, 마르크 로젠탈, 일리옌코프가, 형식논리를 옹호하는 쪽에는 발렌틴 아스무스, 소피야 야놉스카야, 예브게니 보이시빌로 등이 섰다. 로젠탈은 1960년 두 논리 사이의 “가짜 충돌”을 말하며 엥겔스가 『반뒤링론』에서 형식논리와 변증법을 함께 인정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련의 수리논리학과 그 기술적 응용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일리옌코프의 입장은 단순히 형식논리를 낮추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형식논리의 규칙은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데 쓰이지만, 이론적 사유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 곧 대상 속의 실제 모순을 개념 속에서 붙잡고 그 해결을 따라가는 과정은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모순을 단순한 사고의 오류로 보지 않고 이론 발전의 원동력으로 다뤘다.
『변증법적 논리』(1974)는 무엇을 말했나?
일리옌코프는 1974년 『변증법적 논리: 역사와 이론에 관한 시론』을 냈다. 연구자들은 이 책을 그의 대표적인 철학사 저작으로 꼽는다. 서문은 레닌이 남긴 과제에서 시작한다. “대문자로 된 논리학, 곧 현대 유물론의 논리학이자 인식론으로 이해된 변증법을 체계적으로 펼쳐 서술하는 과제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으로, 오늘날 특별히 절실해졌다.”
Задача создания Логики (с большой буквы), т.е. систематически развернутого изложения диалектики, понимаемой как логика и теория познания современного материализма, завещанная нам Владимиром Ильичем Лениным, приобрела в наши дни особую остроту.
책은 논리학의 대상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출발해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피히테,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와 레닌에 이르는 사유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특히 스피노자를 다룬 「실체의 속성으로서의 사유」 장은 사유를 정신이라는 별도 실체가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가 다른 몸들의 형태에 맞춰 움직이는 능력으로 보는 그의 유물론적 사유론을 담았다. 뒷부분은 「논리학과 변증법과 인식론의 일치」, 「변증법적 논리의 범주로서의 모순」, 「변증법에서 보편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레닌에게서 “논리학(인식론)과 변증법은 대상과 범주 구성 모두에서 완전히 동일하다”고 정리했다.
Так что логика (теория познания) и диалектика находятся, по Ленину, в отношении полного тождества, полного совпадения по предмету и по составу категорий.
이 책은 1977년 모스크바 진보출판사에서 영어로 옮겨졌다. 국내 번역본은 확인되지 않는다.
소련 안팎에서 어떻게 평가되나?
변증법적 논리는 사회주의 나라들, 특히 소련에서 가장 널리 연구되었다. 그러나 정치 체제가 경직될수록 그것은 정해진 결론을 증명하는 교조와 인용 경쟁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일리옌코프 자신도 변증법을 미리 받아들인 테제를 증명하는 도구로 쓰는 태도를 경계했다. 소련 해체 뒤 러시아에서는 그것이 정말 독립된 논리학인가를 묻는 비판도 나왔다.
사회주의권 밖에서는 주로 좌파 지식인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의 앙리 르페브르가 『형식논리와 변증법적 논리』를 썼고, 반대편에서는 칼 포퍼가 「변증법이란 무엇인가?」에서 모순을 받아들이면 무엇이든 증명할 수 있게 된다며 변증법적 논리를 비판했다. 이 논쟁은 오늘날 모순을 다루는 비고전 논리학(초일관 논리) 연구와 마르크스의 방법을 해석하는 연구에서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변증법적 논리의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일은 기계도 잘하지만, 대상 속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 가며 개념을 발전시키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사유에 맡겨진 과제처럼 보인다. 레닌이 유리잔의 예로 보여 준 네 가지 요구, 곧 모든 연관을 보고, 발전 속에서 보고, 실천으로 검증하고, 진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라는 요구는 정치 분석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