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년 계획
Five-Year Plan
소련에서 국가경제 발전을 5년 단위로 계획한 중앙집권적 계획 체계.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가 공산당의 지침에 따라 전국 단위로 수립했으며, 1928년 제1차 계획부터 1991년까지 총 13차에 걸쳐 시행되었다. 1차 계획은 중공업 우선의 초고속 공업화를 제도화했고, 이후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이 방식을 채택했다.
상세
'통제 수치'에서 뺘딸레뜨까까지
1920년대 중반 고스플란은 1925/26 회계연도를 대상으로 '통제 수치'라는 이름의 연간 경제 프로그램을 처음 작성했다(P99). 이런 연간 계획은 폭과 식견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1927년에는 1926년 10월–1931년 9월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5개년 구상이 짜였다(P99). 급속한 공업화와 연간 계획의 5개년 계획 대체를 요구한 것은 트로츠키가 이끄는 반대파였고, 1926년 4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제출된 이 제안은 지도부 다수파에 의해 거부되고 스탈린의 조롱을 받았다(P30, P98). 1928년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이 시행되자 반대파의 '초공업화' 요구는 실질적으로 그 계획 안에 흡수되었다(P3, P30, P101).
고스플란과 당 지침
5개년 계획은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가 소련공산당의 지도 아래 전국적 규모로 중앙집권적으로 작성했다(P1). 고스플란은 1928년부터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그 이행을 감독하기 시작했다(P10). 계획은 자본재와 소비재, 농업, 운수, 통신, 보건, 교육, 복지 등 발전의 모든 측면을 다루었으며 지침과 최적안 두 가지 목표치를 두었고, 강조점은 시기마다 달라졌다(P32). 제3차 계획에서는 전쟁 대비를 위해 공업을 동쪽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다(P32).
배정 기간을 채우지 못한 주기들
1차 계획은 1928년 10월 1일에 시작되어 1932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되었다(P34). 1931년까지 소련의 국민경제 통계는 10월 1일에 시작하는 хозяйственный год 기준으로 집계되었고, 1929/30년이 지난 뒤에는 별도의 분기가 추가되었다(P4). 몇몇 계획은 배정된 기간을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 어떤 계획은 예정보다 일찍 완료되었다고 선언되었고, 어떤 계획은 훨씬 오래 걸렸으며, 또 어떤 계획은 실패하여 중단되었다(P6, P24). 1차 계획의 기간 표기는 사료마다 다르다. 1929년에 공식화된 최대안은 1928–1933년을 대상으로 서술되는 한편, 계획 기간은 1928–1932년으로도 제시된다(P3, P34, P101). 1959년 제21차 당대회에서는 1959–1965년 7개년 계획(세미례트까)이 채택되었고, 이는 1961년 제7차 5개년 계획에 통합되었다(P7, P57). 12차 계획(1986–1990)은 '가속화'를 기치로 시작했으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심각한 경제 위기와 생산 감소로 끝났다(P68). 마지막 13차 계획은 1991–1995년을 대상으로 했으나 1991년 소련 해체로 수행되지 못했다(P8, P24).
성취와 그 대가
초기 계획들은 급속한 공업화를 목표로 삼았고, 따라서 1차 계획에서는 중공업에 중점을 두었다. 1928–1940년 공업화 시기 산업 투자의 약 86%가 중공업에 집중되었다(P35). 1928년부터 1940년까지 공업·건설·운수 부문의 소련 노동자는 460만 명에서 1260만 명으로 늘었고 공장 생산량이 급증했다(P34). 공식적으로 1차 계획의 공업 부문은 4년 3개월 만에 93.7% 달성되었고, 생산수단 부문은 103.4%, 소비재 부문은 배정 할당의 84.9%까지 이르렀다(P35). 그러나 서부에 이루어진 많은 투자가 통계에서 제외되었고, 많은 공장이 세워지고 생산이 늘었음에도 목표 수치에는 이르지 못했다(P40). 공업화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어서 막대한 자원이 완공되지 못한 공사와 쓰이지 않은 장비에 투입되었고, 당시 생산된 소비재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낮은 경우가 많아 낭비되었다(P41).
계획은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차 계획은 사회의 모든 측면을 변혁하려는 혁명으로, '대전환'으로도 불렸으며 개인 농민 경영은 집단 농업으로 대체되었다(P37). 이에는 처음에 강한 저항이 있었고, 이 과정이 끝날 무렵 집단화는 농민의 전통적 생활방식에 대한 매우 유혈적인 군사 작전을 닮아갔다(P38). 1차 계획 기간의 주요 사건은 1932–1933년 기근으로, 32/33년 겨울에 절정에 달해 추산 330만~7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영구 장애를 입었다. 이 기근은 1차 5개년 계획이 시행한 공업화와 집단화의 직접적 결과였다(P42).
계획기구에 대한 탄압
이 시기의 최초 숙청은 고스플란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을 겨냥했다. 블라디미르 바자로프와, 블라디미르 그로만을 중심으로 한 1931년 멘셰비키 재판이 그 예이다(P34).
소련 밖으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유사한 계획 방식을 채택했다(P25, P71). 인도는 1951년부터 2017년까지 계획위원회를 통해 소련의 계획에서 영감을 받은 5개년 계획을 시행했고, 파키스탄(1956–1998), 부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레펠리타(1969–1998)도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P71, P72, P73).
사료와 수치 문제
1930년에 쓴 보리스 수바린은 소련 정부 부서가 선전을 목적으로 쏟아낸 화려한 수치로는 계획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기관의 자료가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수치는 핵심 과업의 이행 격차를 보여 주는, 언뜻 사소해 보이는 수치들이었다(P103, P104). 1988년 소련 정치사전은 5개년 계획을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경제 발전을 중앙집권적으로 계획하는 기본 형식으로 규정하고 1차 계획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계획적 사회주의 체제의 우위를 입증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부정적 현상으로 지시적 물량 지표의 직접 결정, 생산기금 사용에서 기업의 자율성 부족, 노동집단의 기술진보·생산성 향상에 대한 낮은 관심을 들었다(P113,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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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Soviet five-year plans overview, thirteen plans from 1928 to 1991, Gosplan role and first plan acceleration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origins, first plan 1928–1932 emphasis on heavy industry, adoption by other communist states
- ponjatija.ru Soviet political dictionary (1988): пятилетний план as the basic form of centralized socio-economic planning in the USSR and other socialist countries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Boris Souvarine (1930): origins of the five-year plan concept in Trotsky–Opposition industrialization proposals, Gosplan's initial annual 'control figures' evolving into the pyatiletka
- 위키백과 (러시아어)
- ponjatija.ru
- 위키백과 (영문)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