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노스트
Glasnost
글라스노스트는 '개방'을 뜻하는 러시아어로,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 축으로 내건 정보 공개·언론 자유 확대 정책이다. 검열을 완화하고 스탈린 시대의 억압된 역사를 공론화했으며, 특수서고에 격리된 금서를 해제하는 등 소비에트 체제 최초로 실질적 표현의 자유를 열었다. 1989년 이후에는 사실상 무제한적 언론 자유로 전환되어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공개 비판을 허용했고, 체제의 정당성에 균열을 내며 소련 해체의 조건을 형성했다.
상세
어디서 온 말인가?
글라스노스트는 공개성을 뜻하는 러시아어로, 고르바초프의 발명품이 아니라 오래된 말이다. 19세기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기에 재판과 행정의 공개를 요구하는 어휘로 쓰였고, 소비에트 시대에는 반체제 운동이 이 말을 이어받았다. 1965년 12월 작가 시냡스키와 다니엘의 재판을 앞두고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서 열린 시위의 구호가 바로 「재판의 글라스노스트를 요구한다」였다. 국가의 언어이자 그 국가를 비판하는 언어였던 이 말을, 1985년 이후 당의 서기장이 개혁의 기치로 집어 든 것이다.
무엇을 위한 도구였나?
도입 초기의 글라스노스트는 통치의 도구였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관료 기구의 저항을 넘어설 수 없고 대중적 지지도 조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경제 부실과 관료 부패, 환경 문제를 언론이 다루도록 허용해 개혁에 대한 압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검열의 폐지가 아니라 검열의 방향 전환에 가까웠던 셈이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참사가 전환점이 되었다. 초기의 정보 통제가 국내외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경험은, 은폐가 더 이상 통치 기술이 될 수 없음을 지도부에 각인시켰다. 야코블레프가 주요 신문·잡지의 편집인들을 개혁파로 갈아 끼우면서, 오고뇨크와 모스크바 뉴스 같은 매체가 공개성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어떻게 봇물이 되었나?
가장 큰 파장은 역사에서 왔다. 1987년 이후 대숙청과 집단화, 기아에 관한 자료와 증언이 공개되고, 특수 보관고에 묶여 있던 금서들이 풀려났으며, 부하린을 비롯한 옛 반대파의 복권이 진행되었다. 아불라제의 영화 「참회」가 스탈린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문예지들은 「닥터 지바고」와 「레퀴엠」,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처럼 수십 년 묶여 있던 작품들을 잇따라 실었다. 두꺼운 문예지의 구독 부수가 수백만씩 뛰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이 금기를 하나씩 허물었다.
경계선을 둘러싼 전투도 있었다. 1988년 3월 니나 안드레예바의 투고를 앞세운 보수파의 반격이 3주간 나라를 얼어붙게 했지만, 프라우다의 반박으로 공개 노선이 승리하면서 글라스노스트는 오히려 가속되었다. 1989년 인민대의원대회의 생중계는 결정판이었다. 온 나라가 일을 멈추고, 권력자들이 공개적으로 추궁당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디까지 갔는가?
비판은 스탈린 시대에서 멈추지 않았다. 체제 성립 과정 자체가 질문의 대상이 되면서 레닌 시기와 10월 혁명의 성격까지 공개 논쟁에 올랐고,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와 카틴 학살처럼 국가가 수십 년 부인해 온 사실들이 공식 인정되었다. 외국 방송 전파 방해가 중단되었고, 1990년 6월 언론법은 검열 폐지를 명문화했다. 개혁을 위한 도구로 도입된 정책이 사실상 무제한의 언론 자유로, 나아가 1991년 이후의 문서고 공개로 이어지는 길을 연 것이다.
어떻게 평가되는가?
글라스노스트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여러 갈래 가운데 가장 철저히 실현된 개혁으로 꼽힌다. 브라운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를 고르바초프의 가장 확실한 성공으로 평가한다. 반대편의 평가는 대가를 강조한다. 경제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조건에서 진실의 공개는 체제의 정당성 서사만을 잠식했고, 사람들이 서로의 불만을 확인하게 되면서 동원과 이탈이 한꺼번에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도구로 도입된 정책이 주인을 삼킨 역설이다.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글라스노스트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레닌 시기의 공개 논쟁 전통으로 돌아간다는 논리였고, 고르바초프는 끝까지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확실한 것은 이 정책이 남긴 자료와 논쟁의 기록이 소련사 연구의 조건 자체를 바꾸었다는 점, 그리고 이후 러시아 언론사에서 1990년대 자유 언론의 기원이자 2000년대 재통제와의 대조점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Joseph Gibbs, Gorbachev's Glasnost: The Soviet Media in the First Phase of Perestroika (1999)
- Alec Nove, Glasnost' in Action: Cultural Renaissance in Russia (1989)
- Archie Brown, The Gorbachev Factor (1996)
- William Taubman, Gorbachev: His Life and Times (2017)
- Stephen Kotkin, Armageddon Averted: The Soviet Collapse, 1970–2000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