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단대전
Hundred Regiments Offensive
1940년 8월 20일부터 1941년 1월까지 펑더화이가 지휘한 팔로군 105개 연대가 화베이의 일본군 점령 철도·도로·탄광을 공격한 공세. 정타이 철도를 중심으로 교통망을 끊고 징싱 탄광을 반년 동안 멈추게 한, 공산군이 중일전쟁에서 벌인 가장 큰 공세였다. 일본군은 삼광 작전으로 보복했고, 마오는 뒤에 이 공세를 비판해 펑더화이 숙청의 한 구실로 삼았다.
상세
1939~1940년 일본군은 철도·도로·토치카로 근거지를 분할하는 「농성 정책」과 100차례가 넘는 소탕전으로 화베이 근거지를 압박했고, 국민당 안에서는 화평론이 일었다. 펑더화이는 처음 20개 연대로 공세를 계획했으나 115사단·129사단·120사단의 연대가 잇달아 합류해 8월 22일에는 80개가 넘었고, 결국 105개 연대가 참가했다. 공세는 철도 파괴, 거점 공격, 일본군 반격 저지의 세 단계로 이어졌다.
전과는 기록마다 다르다. 팔로군 보고는 일본군과 괴뢰군 2만여 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거점 수백~수천 곳을 점령했다고 하며, 서방 자료는 일본군 2만 900명, 괴뢰군 약 2만 명의 사상자를 든다. 중국 측은 철도 474킬로미터와 도로 1,502킬로미터를 파괴했다고 했고, 일본 측 기록은 교량 73개와 역 20곳의 피해를 적었다.
공세의 평가는 정치적으로 바뀌었다. 마오는 1940년 12월 장제스의 반공 공세에 맞선 선전을 위해 공세의 영향력을 활용하라고 했지만, 뒤에는 팔로군의 실력을 드러내 일본군의 보복을 불렀다고 보았다. 1959년 루산 회의와 문화대혁명 때 백단대전은 펑더화이가 중앙의 허락 없이 모험적 공세를 벌였다는 죄목이 되었고, 문혁 이후 중국에서는 다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