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nnes infernales · 1794

지옥 종대

Infernal columns

1794년 1월부터 5월까지 공화국 서부군 사령관 루이 마리 튀로의 지휘 아래 방데의 반란 지역을 가로지르며 「도적」을 여자와 아이까지 죽이고 마을과 농장을 불태우고 가축과 곡식을 빼앗은 방화 종대. 1793년 8월 1일과 10월 1일 국민공회의 방데 파괴 법령을 근거로 삼았다. 2만~5만 명의 민간인이 죽었으나 봉기를 되살렸고, 튀로는 5월 13일 해임되었다.

상세

1793년 8월 1일 국민공회는 바레르의 보고에 따라 방데의 숲을 베고 반군의 소굴을 부수고 수확물을 거두고 가축을 빼앗되 여자·아이·노인은 내륙으로 옮겨 보호한다는 법령을 통과시켰고, 10월 1일 바레르는 「방데를 파괴하라」는 연설과 함께 두 번째 법령을 얻어 냈다. 11월 27일 서부군 사령관에 임명된 튀로는 12월 30일에야 부임했다. 12월 19일 그는 사면안을 공안위원회에 보냈으나 답이 없자 법령을 엄격히 적용하는 새 계획을 세웠다. 1794년 1월 7일 클레베르는 방데군이 6,200명에 불과하니 요새 야영지로 포위하고 주민의 신뢰를 얻어 반군 집결지만 치자고 제안했으나 거부되었고 1월 9일 전출되었다. 1월 16일 튀로는 파견의원들에게 여자와 아이를 「모두 칼로 베어야 한다면」 책임을 덮어 줄 결정이 필요하다고 썼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 1월 19일 그는 무기를 들었거나 들었던 것으로 확인된 모든 「도적」을 총검으로 찌르고 「그런 경우의 처녀·여자·아이」도 같이 처리하되 처형은 장군의 사전 명령으로만 하며, 「시민적 감정」이 인정되는 사람은 후방으로 보내라는 지침을 내렸다. 1월 21일 열두 개 종대가 동쪽 브리사크에서 남쪽 생맥상까지 나란히 서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했고, 서쪽에서는 악소의 여덟 개 종대가 마주 왔다. 보전 대상은 숄레·브레쉬르·퐁트네 등 열세 개 읍뿐이었다.

장군들은 명령을 제각기 해석했다. 악소와 물랭은 조직적 살육과 파괴를 하지 않고 공화파 주민의 소개를 지켰으나, 코르델리에·그리뇽·위셰·아메의 부대는 왕당파와 애국파를 가리지 않고 마을 전체를 몰살했다. 화약을 아끼려 칼로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살해했으며, 2월 28일 레뤼크쉬르불로뉴에서는 교구 주민이 학살되었다. 공안위원회는 2월 8일 카르노의 편지로 「조치는 좋고 의도는 순수해 보인다」고 했으나, 스토플레가 같은 날 숄레를 잠시 되찾자 2월 12일 바레르는 공회에서 「법령의 야만적이고 과장된 집행」을 비난했고 13일 카르노는 「도적을 죽여야지 농장을 불태우면 안 된다」고 썼다. 그러나 2월 10일 무제한 권한을 받고 파견된 프랑카스텔·앙츠·가로는 튀로의 계획을 승인했고, 3월 9일 「전쟁이 완전히 끝나면 방데에는 주민이 남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방데의 공화파 주민 대표단이 파리에서 충성 지역과 반란 지역의 구별을 요구했고, 르키니오와 라녤로 같은 파견의원이 튀로의 해임을 요구했다. 4월 12일 병력 일부가 국경으로 빠지자 튀로는 종대를 멈추고 요새 야영지를 지었고, 5월 13일 정직되었다. 희생자 수는 1953년 제라르 발테르의 2,000명에서 1994년 시몬 루아드로의 18만 명까지 벌어졌으나, 최근 연구는 클레네 4만 명, 뒤퓌 2만~4만 명, 위스네 「수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좁혀진다. 장클레망 마르탱은 튀로를 전쟁범죄자로 부를 수 있다고 보지만 「인도에 반한 범죄」라는 말은 거부하고, 파트리스 그니페는 인도에 반한 범죄로 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fr.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fr.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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