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간파업위원회 (MKS)
Inter-Enterprise Strike Committee (MKS)
1980년 8월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결성된 공동 파업지도 기구로, 흩어진 공장 파업을 하나의 운동으로 묶고 통일된 요구를 이끌어냈다. 각 파업 사업장의 대표들이 대표단을 꾸려 의장 레흐 바웬사를 선출했고, 8월 17일 21개 요구를 발표했다. 8월 31일 정부와의 그단스크 협정으로 동구권 최초의 독립노조 '연대'의 모태가 되었으며, 슈체친과 야스트솅비에 등지의 파업위원회에 모델을 제공했다.
상세
구조와 운영
MKS는 1980년 8월 16일 밤 그단스크에서 시파업위원회(Miejski Komitet Strajkowy)가 확대 개편되면서 탄생했다. 애초 조선소 파업은 자체 요구의 상당 부분이 수용되자 종료될 뻔했으나, 인근 공장들이 연이어 파업에 가담하면서 조선소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으로 전환했고, 그단스크·소포트·그디니아 삼연시의 파업 사업장들을 하나로 묶는 기구가 필요해졌다.
운영의 핵심은 각 파업 사업장이 대표를 선출해 파견하고, 이들이 모여 전체 회의를 이루며, 그 가운데 상무기관인 대표단(Prezydium)을 뽑는다는 점이었다. 의장은 조선소 전기공 레흐 바웬사가 맡았고, 안제이 그비야즈다, 보그단 리스, 요안나 두다그비야즈다, 안나 발렌티노비치, 헨리카 크시보노스 등 약 17명이 대표단을 구성했다. 8월 중순까지 156개 사업장, 뒤이어 약 350개 사업장과 수백만 노동자를 대표했다.
이 구조는 1956년 포즈난과 1970년 연안 도시의 파업이 중앙의 조정 기구 없이 흩어져 소규모 양보로 무산되었던 교훈에서 나왔다. MKS는 사업장마다 제각각의 요구로 분산되는 대신 단일한 21개 요구를 공동으로 천명함으로써, 당국이 작은 양보로 파업을 하나씩 사들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같은 모델이 슈체친과 상실레지아 야스트솅비에-즈드루이의 탄광 MKS로 이어졌고, 그단스크 MKS는 8월 31일 협정 체결 직후 '연대'의 창립위원회로 전환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ormation on 16 Aug 1980 at the Lenin Shipyard, Wałęsa elected chair, the 21 Demands of 17 Aug, representation of 156 enterprises by 18 Aug, and transformation into Solidarity after the 31 Aug Gdańsk Agreement.
- pl.wikipedia.org full list of the MKS presidium, confirming the delegate structure and its origin in the City Strike Committee.
- encysol.pl Encyklopedia Solidarności (IPN): documents that the 31 Aug 1980 protocol was signed by the MKS presidium and that the Gdańsk MKS became the founding committee of the new independent un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