Харьковская операция (24 ноября — 12 декабря 1919) · 1919.11.24–12.12

하리코프 작전 (1919)

Kharkov operation (1919)

1919년 11월 24일부터 12월 12일까지 예고로프가 이끈 붉은 군대 남부전선이 물러나는 데니킨의 의용군을 쫓아 하리코프를 되찾은 작전. 오룔-크로미 작전과 보로네시-카스토르노예 작전에 이은 추격전으로, 우보레비치의 제14군이 주공을 맡고 제13군과 부됸니의 제1기병군이 동쪽에서 쿠퍈스크로 돌아 들어갔다. 12월 12일 하리코프의 백군이 항복하면서 의용군과 돈군 사이가 갈라지고 돈바스로 가는 길이 열렸다.

상세

하리코프는 1919년 6월 25일 의용군에게 떨어져 데니킨의 모스크바 진격 기지가 되었다. 11월 24일 남부전선은 수미, 오보얀, 스타리오스콜 북쪽에 이르렀고, 러시아어 출처는 붉은 군대를 소총 5만 8천, 기병 1만 3천, 백군을 소총 4만 7천, 기병 2만 3천으로 센다. 제1기병군은 25일 노비오스콜을, 제14군은 28일 수미를 차지했다. 12월 3일 마몬토프와 울라가이의 기병군단이 제13군과 제1기병군의 이음매를 반격했지만 7일까지 이어진 기병전에서 밀렸다. 제14군은 아흐티르카, 크라스노쿠츠크, 벨고로드, 발키를 거쳐 11일 메레파를 차지해 백군의 남쪽 퇴로를 끊었고, 12일 라트비아 사단과 제8기병사단이 하리코프에 들어갔다. 하리코프를 잃은 뒤 의용군의 퇴각은 무질서한 도주로 바뀌었고 퇴각하는 대열에 발진티푸스가 퍼졌다. 영어 출처는 6월에 백군을 반겼던 주민, 특히 노동자들이 백군 통치에 실망해 붉은 군대의 입성을 비교적 호의적으로 맞았다고 적는다.

남부전선의 주공을 어디로 둘지는 1919년 내내 당 지도부의 논쟁거리였다. 총사령부는 볼가에서 돈 초원을 거쳐 쿠반으로 치는 계획을 고수했다. 트로츠키는 『나의 생애』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볼가에서 쿠반으로가 아니라 보로네시에서 하리코프와 도네츠 분지로” 주공을 돌려 의용군을 카자크와 떼어 놓자고 했고, 노동자와 농민이 붉은 군대 편인 그 지대로는 “버터에 칼이 들어가듯” 나아갔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 계획이 데니킨이 툴라를 위협한 뒤에야 받아들여져 몇 달을 잃었다고 회고했다. 10월 15일 날짜가 붙은 스탈린의 레닌 앞 편지도 “보로네시 지역에서 하리코프와 도네츠 분지를 거쳐 로스토프로” 주공을 옮기자고 했는데, 같은 편지는 바꾸려는 옛 계획이 “실제로는 이미 폐기되었다”고 스스로 적었다. 하리코프 작전은 이 방향의 진격이 낳은 첫 큰 성과였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