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оммунист · 1924–1991

코무니스트

Kommunist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이론지. 1924년 《볼셰비크》로 창간되어 1952년 《코무니스트》로 개칭되었고, 당 노선의 이론적 해설과 논쟁의 공식 무대로서 1991년까지 발행되었다(이후 《스보보드나야 미슬》로 개칭). 루먄체프·콘스탄티노프 등이 주필을 지냈고,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에는 예고르 가이다르가 경제부를 이끌며 시장개혁론을 실었다. 같은 제호의 선행지로, 레닌이 부하린·퍄타코프와 민족자결 논쟁 끝에 결별한 제네바 망명지(1915)와 브레스트 강화에 반대한 좌익공산주의자 기관지(1918)가 있다.

상세

당 기관지의 형성

《코무니스트》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이론·정치 잡지로, 1924년부터 1991년까지 발행되었다. 전신은 1924년 4월 창간된 《볼셰비크》로, 창간 당시 편집부는 니콜라이 부하린, 바르딘, 카메네프로 구성되었고 격주(2주에 한 번) 체제로 나왔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 소련에서의 공산주의 사회 건설 문제를 다루었으며 철학·경제·문학·예술에 관한 글도 실렸다. 다만 《볼셰비크》의 부정적 평가가 곧 학자의 경력 종말을 뜻하지는 않았는데, 1945년 예브게니 타를레의 연구가 잡지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음에도 그는 소련 과학계의 높은 지위를 유지했다.

1952년 개칭과 이후의 활동

1952년 제19차 당대회에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이 소련공산당으로 개칭된 뒤, 그해 11월 잡지도 《코무니스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발행 간격이 20일로 좁혀졌고 발행부수는 60만 부에 이르렀다. 1974년 4월 16일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 칙령으로 당의 사상·이론 생활에 적극 참여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당 및 소비에트 국가의 대내외 정책을 선전한 공로로 레닌 훈장을 받았다. 1982년 제2호에는 작가 블라디미르 솔로우힌을 "하느님과의 밀회"라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실렸고, 당원 솔로우힌의 "종교-신비주의적 견해"에 반대하는 이 캠페인은 1982년 7월 애국 성향 작가들을 겨냥한 중앙위원회의 문학 관련 특별 결정으로 이어졌다.

창간 연도의 세 가지 제호

《코무니스트》라는 제호는 당 기관지보다 먼저 다른 두 출판물이 사용했다. 1915년 제네바 망명지 《코무니스트》는 레닌이 민족자결 문제를 둘러싸고 부하린·퍄타코프와 논쟁한 무대였다. 이어 1918년에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에 반대한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같은 제호를 기관지로 삼았다. 좌파 공산주의자는 1918년 1월에 형성된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내부의 당내 야당이었으며, 그 이름을 얻은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강화를 원칙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본 브레스트 강화 반대 투쟁에서였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의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로 혁명을 즉시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내 정책에서는 은행의 완전한 폐지와 화폐 폐지의 강행, 국가 및 경제 관리의 분권화, "부르주아" 전문가의 참여 거부를 요구했다.

조선·한국어권 출판물과의 구별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과 그 이론지 《근로자》는 코무니스트와 다른 계통의 당 출판물이다. 이들 출판물의 연원과 서지 정보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CC theoretical journal: 1924 founding as Bolshevik, 1952 renaming, 1991 renaming to Svobodnaya Mysl, editors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overview of the CPSU journal
  3. 위키백과 (러시아어) 1915 Geneva journal, Lenin—Bukharin/Pyatakov split over national self-determination
  4. 위키백과 (러시아어) Left Communists and their 1918 organ Kommunist, Brest-Litovsk opposition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위키백과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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