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осстание форта «Красная Горка» и батареи «Серая Лошадь» · 1919.06.13–16

크라스나야 고르카 반란

Krasnaya Gorka mutiny

1919년 6월 13일 페트로그라드 서쪽 핀란드만 남쪽 해안의 크라스나야 고르카 요새에서 사령관 니콜라이 네클류도프 등 옛 장교들이 일으킨 반소비에트 반란. 이웃한 세라야 로샤디 포대도 가담했고, 반란군은 요새의 12인치 포로 크론시타트와 발트 함대를 포격하며 유데니치의 백군과 영국 함대에 도움을 청했다. 발트 함대의 함포 사격과 제7군의 진격으로 15~16일 요새가 탈환되었다.

상세

1919년 5월 백군 북부군단이 에스토니아에서 진격해 오자 요새들은 전선 가까이에 놓였고, 6월 12일 요새 앞을 지키던 크론시타트 제1·2연대와 제105소총연대가 백군 쪽으로 넘어갔다. 13일 새벽 네클류도프는 요새의 공산당원들을 체포했다. 소비에트 쪽은 반란을 지하조직 「국민 센터」와 영국 정보기관이 꾸민 것으로 보았고, 소비에트 붕괴 뒤의 연구는 사회혁명당 계열 수병들의 역할도 든다. 맞은편 오브루체프 요새는 수비대가 지휘관들을 도로 가두어 반란이 번지지 않았다.

전함 페트로파블롭스크와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가 요새를 포격했고, 해안을 따라 수병과 붉은 군대 부대가 다가갔다. 영국 코완 제독의 함대는 상륙 명령이 없어 움직이지 않았고, 유데니치 쪽은 반란이 끝날 무렵에야 소식을 들었다. 15일 밤 장갑열차가 먼저 요새에 들어갔고 반란군은 포로로 잡은 공산당원 다수를 쏘고 물러났다. 처형된 반란 가담자 수는 러시아어 출처가 약 90명, 영어 출처가 약 600명으로 크게 다르다. 1920년대 말부터 소련 역사 서술은 페트로그라드에 와 있던 스탈린에게 진압의 공을 돌렸고, 오늘날 연구는 발트 함대 지휘부와 지노비예프의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몫을 더 크게 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