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명 (소설)
Life and Fate (novel)
바실리 그로스만이 1950~1959년에 쓴 대하소설. 1942~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축으로, 한 가족의 운명을 통해 나치 수용소와 소련 수용소, 홀로코스트와 대숙청을 나란히 놓는다. 1961년 국가보안위원회가 원고를 압수했고, 빼돌린 사본으로 1980년 스위스에서 나왔다. 소련 출판은 1988년이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42년 9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가운데 있고, 수많은 인물이 사슬로 이어진다. 중심은 샤포시니코프 집안이다. 할머니 알렉산드라에게는 세 딸 류드밀라, 마루샤, 제냐와 아들 드미트리가 있었다. 드미트리 부부는 1937~1938년 테러에 잡혀갔고, 손자 세료자는 스탈린그라드에서 싸운다. 류드밀라의 아들은 전사한다. 마루샤는 전투에서 죽는다. 제냐는 당에 빠진 남편 크리모프를 떠나 탱크 장교 노비코프를 사랑하지만, 크리모프가 체포되자 루뱐카로 소포를 나른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인물은 류드밀라의 남편인 유대인 물리학자 빅토르 시트룸이다. 어머니는 베르디체프의 유대인 집단 총살 때 죽는데, 작가의 어머니도 고향 베르디체프에서 그렇게 죽었다. 그는 큰 발견을 하지만 연구소의 반유대주의 공격을 받고 반성문을 거부해 사직한다. 체포를 기다리던 중 스탈린이 직접 전화를 건다. 핵 연구의 군사적 쓸모 때문으로 보이는 이 한 통으로 운명이 뒤집힌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고한 두 사람을 비난하는 편지에 서명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른 줄기는 수용소들이다. 늙은 볼셰비키 모스톱스코이는 독일 수용소에서 친위대 장교 리스의 심문을 받는다. 리스는 히틀러가 스탈린에게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를 공포로 보는 자는 당신들도 공포로 본다.” 모스톱스코이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군의관 레빈톤은 유대인으로 가스실에 끌려간다. 톨스토이주의자 이코니코프는 가스실 건설 노동을 거부한다. 크리모프는 트로츠키를 안다는 밀고로 소련의 감옥에 갇힌다.
그로스만의 대답은 무엇일까? 이념의 증오에 맞서 작은 친절이 남는다는 것이다. 포탄 구덩이에 함께 숨은 소련 정찰병과 독일 병사는 서로 쏘지 않는다. 독일군 사령관은 굶어 죽어 가는 포로 세묘노프를 놓아준다. 파괴된 스탈린그라드의 여인은 게슈타포 건물 지하에서 시신을 끌어내는 독일 포로들을 찢어 죽일 듯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장교에게 빵 조각을 내민다.
왜 금지되었나?
그로스만은 처음에 소련 작가였다. 앞선 소설 『정의로운 대의를 위하여』(1952)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안에 있었다. 『삶과 운명』은 스탈린 사후 그 틀을 넘어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비교하는 데까지 갔다. 1960년 12월 19일 『신세계』 편집 회의가 이를 “반소”로 규정했고, 1961년 2월 14일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수색으로 원고와 타자본을 가져갔다. 누가 넘겼는지는 다툼이 있다. 흔히 잡지 『즈나먀』 편집장 바딤 코제브니코프가 넘겼다고 하지만 문서 증거는 없고 그의 딸은 부인한다. 솔제니친은 『신세계』의 금고에서 가져갔다고 기억했다.
그로스만은 흐루쇼프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 책이 “체포되었다”고 호소했다. 1962년 7월 23일 미하일 수슬로프는 그를 불러 출판은 없다고 말했고, 나오면 『닥터 지바고』보다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했다. 수슬로프가 “200년 동안은 출판될 수 없다”고 했다는 유명한 말은 최근 문서 연구로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로스만은 1964년 죽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나?
시인 세묜 립킨이 간직한 사본을 1974년 무렵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안드레이 사하로프, 불라트 오쿠자바,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가 도와 1970년대에 해외로 내보냈고, 1980년 스위스 라주돔 출판사에서 나왔다. 소련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1988년에 실렸다. 그해 10월 말로야로슬라베츠에서 친구 뱌체슬라프 로보다가 1960년부터 숨겨 둔 더 온전한 원고가 나왔다. 거기에는 “어머니 예카테리나 사벨리예브나 그로스만에게”라는 헌사가 있었다.
평가는 어떤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 비교가 반론의 씨앗이기도 하다. 드미트리 비코프는 톨스토이에게는 강물이 있지만 그로스만에게는 모래가 있다는 레프 안닌스키의 말을 들며 “그는 설교한다”고 했다. 솔제니친은 문학에 대한 공헌이라 인정하면서도 민중의 언어가 없고 독일 묘사가 설득력이 없다고 했고, 그가 “소비에트적 흐림”을 기어서 벗어난 길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발레리 슈빈스키는 가스실로 가는 여인을 톨스토이처럼 섬세하게 그리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어떻게 만날까?
2007년 레프 도딘의 연극, 2011년 BBC의 13부작 라디오 드라마(이 덕에 영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세르게이 우르술랴크가 2011~2012년에 찍은 드라마가 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2013) 자막에도 이 소설의 몇 장을 바탕으로 했다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