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一三事件 · 1971.09.13

린뱌오 사건 (1971)

Lin Biao incident (1971)

1971년 9월 13일 중국공산당 부주석이자 마오쩌둥의 공식 후계자인 린뱌오가 부인 예췬, 아들 린리궈와 함께 탄 공군 트라이던트기가 몽골 운두르한 부근에 추락해 9명 전원이 죽은 사건. 중국에서는 「9·13 사건」이라 부른다. 당은 린뱌오가 「571 공정」 정변으로 마오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소련으로 도망쳤다고 발표했으나, 그의 관여와 비행 경위에는 지금도 의문이 남아 있다.

상세

1970년 루산 회의에서 국가주석직 부활 문제로 마오와 린뱌오 쪽이 부딪쳤고, 마오는 천보다를 실각시키고 린뱌오의 장군들을 압박했다. 공식 서술에 따르면 1971년 3월 공군사령부 판공실 부주임 린리궈가 상하이에서 「571 공정 기요」를 만들었고, 8~9월 남방 순시 중인 마오를 열차에서 습격하려 했으나 마오가 일정을 바꿔 12일 저녁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베이다이허의 린뱌오 일가는 13일 0시 30분께 산하이관 비행장에서 이륙했고, 딸 린리헝은 앞서 경호부대에 아버지가 끌려갈 수 있다고 알렸다. 마오는 격추하자는 물음에 “가게 두라”고 했다고 전한다.

몽골 측 목격자에 따르면 비행기는 소련 국경 가까이 갔다가 남쪽으로 돌아오던 중 오전 2시 30분께 추락했다. 소련 조사단은 1972년 유골 감식으로 린뱌오와 예췬을 확인했고 연료가 이르쿠츠크나 치타까지 갈 만큼 있었다고 보았다. 관련 기록 상당수는 화궈펑 시기에 폐기되었다. 사건 뒤 군 수뇌부와 고위 장교 1천여 명이 숙청되었고, 대중에게는 1972년 6월 알려졌다. 「가장 가까운 전우」의 배신은 마오의 무오류 신화를 무너뜨렸고, 마오는 저우언라이에게 원로 복권과 미국과의 화해를 맡겼다. 1981년 특별법정은 린뱌오를 장칭과 함께 두 「반혁명 집단」의 우두머리로 판정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