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주의
Liquidationism
1905년 혁명 패배 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 내 멘셰비키 우파에서 등장한 노선으로, 불법 지하당을 해체('청산')하고 합법적인 노동자 정당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포트레소프 등이 중심이 되어 잡지 『나샤 자랴』를 거점으로 활동했으며, 레닌은 이를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의 포기로 간주해 격렬히 공격했다. 1912년 프라하 전당대회에서 청산파는 RSDLP에서 공식 축출되어 볼셰비키-멘셰비키의 조직적 분리가 완결되었다.
상세
1905년 이후의 조건
1905년 혁명의 패배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조직 위기에 빠졌다. 스톨리핀의 반동 아래에서 비합법 조직이 파괴되고 당원 수가 급감했으나, 동시에 국가두마와 합법 노동조합, 보험 기구, 협동조합, 합법 신문이라는 새로운 활동 공간이 존재했다. 이 두 조건이 조직 노선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멘셰비키 우파는 비합법 조직의 유지가 비현실적이며 합법 활동을 중심으로 당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잡지 「나샤 자랴」를 중심으로 포트레소프 등이 이 입장을 전개했고, 유럽형 개방적 노동자 정당으로의 전환을 전망했다.
논쟁
레닌은 이 입장을 청산주의로 규정하고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의 논거는 비합법 조직의 해체가 혁명적 목표의 포기와 같다는 것이었다. 차르 체제 아래에서 합법 활동만으로는 정치적 요구를 제기할 수 없으므로, 합법 공간의 활용은 비합법 조직을 전제로 해야만 혁명적 성격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논쟁에는 세 번째 입장도 있었다. 플레하노프를 포함한 일부 멘셰비키는 청산주의에 반대해 비합법 조직의 필요를 인정했고, 이들은 당 멘셰비키로 불렸다. 트로츠키는 조직적 통합을 유지하려 시도했으나 양측 모두에게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조직적 분리
1912년 1월 프라하 협의회가 청산주의자를 당에서 제적했다. 이 회의는 볼셰비키가 주도했고 참가 범위의 정당성 자체가 쟁점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조직적 분리를 완성했다. 이후 두 조류는 별개의 신문과 두마 분파, 노동조합 조직을 운영했다.
청산주의 논쟁이 남긴 문제는 조직 형태와 정치적 목표의 관계였다. 합법 활동의 확대가 목표의 수정을 요구하는가, 아니면 목표를 유지하면서 활동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후 각국 사회주의 운동에서 반복되었다. 이 점에서 청산주의 논쟁은 같은 시기 서유럽의 수정주의 논쟁과 같은 문제의 다른 형태로 다루어진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definition, Lenin's 1909 characterisation, Rozhkov, distinction between Left and Right Liquidationism
- 위키백과 (러시아어) origin in 1907–1910 reaction period, Potresov as key figure, Nasha Zarya as centre, 1912 Prague Conference expulsion, August Bloc 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