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불가침조약
Molotov–Ribbentrop Pact
1939년 8월 23일 밤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나치 독일이 맺은 불가침조약. 서명자의 이름을 따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고도 한다. 10년 기한의 상호 불가침과 중립을 약속한 공개 조문 뒤에는 동유럽을 두 나라의 이익권역으로 가르는 비밀의정서가 붙어 있었다. 조약 일주일 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소련은 의정서에 따라 폴란드 동부와 발트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파기되었다.
상세
어떻게 성사되었나?
1939년 여름 유럽 외교는 삼중의 교섭전이었다. 소련은 영국·프랑스와 대독 동맹 교섭을 이어 가면서 동시에 독일의 타진에 문을 닫지 않았다. 뮌헨 협정 이후 서방에 대한 불신은 깊었고, 5월 집단안보의 상징 리트비노프가 몰로토프로 교체된 것은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신호로 읽혔다. 영불과의 군사 교섭이 폴란드 통과 문제 등에서 표류하는 사이 독일은 시한에 쫓기고 있었다. 폴란드 침공 예정일 전에 소련의 중립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8월 23일 리벤트로프가 모스크바로 날아왔고, 조약은 그날 밤으로 서명되었다. 반파시즘의 기수를 자임하던 나라와 반볼셰비즘의 기수를 자임하던 나라의 악수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조약과 의정서에는 무엇이 담겼나?
공개된 조문은 단순했다. 상호 불가침, 제3국이 어느 한쪽을 공격할 경우의 중립, 분쟁의 평화적 해결, 유효 기간 10년. 그러나 실질은 부속 비밀의정서에 있었다.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베사라비아를 소련의, 리투아니아를 독일의 이익권역으로 하고 폴란드를 분할선으로 가르는 내용이었다(상세는 하위 항목 비밀의정서 참조). 9월 28일의 후속 우호·국경 조약은 분할선을 조정해 리투아니아를 소련 권역으로 옮겼다. 조약과 나란히 대규모 통상협정이 맺어져, 소련의 곡물과 원유가 독일로, 독일의 기계와 군사 기술이 소련으로 흘렀다.
무엇이 뒤따랐나?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17일에는 소련군이 동쪽에서 진입해 폴란드는 네 번째로 분할되었다. 소련은 이어 발트 3국에 기지 조약을 강요한 끝에 1940년 여름 이를 병합했고, 핀란드와는 겨울전쟁을 치렀으며, 루마니아에서 베사라비아를 회수했다.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하루아침에 노선을 뒤집어야 했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외치던 각국 공산당은 「제국주의 전쟁」 반대로 선회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서방의 많은 당원과 동조자들이 환멸 속에 당을 떠났다.
소련은 왜 맺었는가, 어떻게 평가되는가?
소련의 공식 논리는 시간이었다. 뮌헨이 보여 주듯 서방은 믿을 수 없고, 준비되지 않은 나라가 단독으로 독일과 싸우는 최악을 피하려면 시간을 사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약은 소련에 22개월의 유예를 주었다. 비판은 두 갈래다. 하나는 그 유예가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1941년 6월의 기습 앞에서 소련군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스탈린은 침공 경보들을 끝까지 불신했다. 다른 하나는 조약이 단순한 시간 벌기가 아니라 영토 거래였다는 것이다. 비밀의정서는 그 증거로, 소련이 반세기 동안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한 이유이기도 했다.
역사학은 조약을 집단안보 파산의 귀결로 보는 맥락적 해석과, 두 전체주의 국가의 공모로 보는 해석 사이에서 논쟁해 왔다. 1989년 소련 인민대의원대회는 야코블레프 위원회의 조사를 받아 비밀의정서를 공식 인정하고 무효를 선언했다. 이 인정은 발트 독립운동에 결정적 근거를 주었고, 오늘날까지 조약은 유럽 기억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원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부와
독일 정부는
소련과 독일 간의 평화 증진에 대한 열망에 따라, 그리고 1926년 4월 소련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중립 조약의 기본 규정들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하였다.
제1조
양 체약 당사국은 단독으로든 다른 열강들과 공동으로든,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폭력 행위, 어떠한 공격적 행동 및 어떠한 공격도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체약 당사국 중 일방이 제3국의 군사 행동 대상이 될 경우, 다른 체약 당사국은 해당 제3국을 어떠한 형태로도 지원하지 않는다.
제3조
양 체약 당사국 정부는 앞으로도 공동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해 서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상호 접촉하여 협의한다.
제4조
어느 체약 당사국도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겨냥하는 어떠한 열강 집단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제5조
체약 당사국 간에 어떤 종류의 문제로 분쟁이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양측은 오로지 평화적 방식으로, 우호적 의견 교환을 통하거나 또는 필요한 경우 충돌 조정 위원회를 설치하여 이러한 분쟁이나 충돌을 해결한다.
제6조
본 조약은 10년의 기간으로 체결되며, 체약 당사국 중 일방이 기간 만료 1년 전에 폐기 통보를 하지 않는 한, 조약의 유효 기간은 자동으로 다시 5년간 연장된 것으로 간주한다.
제7조
본 조약은 가능한 한 짧은 기간 내에 비준되어야 한다. 비준서 교환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조약은 서명한 직후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독일어 및 러시아어로 작성된 두 통의 원본으로 작성되었다.
| 소련 정부의 위임에 따라 V. 몰로토프 | 독일 정부를 대표하여 I. 리벤트로프 |
조약 비준: 1939년 8월 31일 소련 최고회의 및 독일 제국의회.
비준서 교환은 1939년 9월 24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다.
하위 항목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Roger Moorhouse, The Devils' Alliance: Hitler's Pact with Stalin, 1939–1941 (2014)
- Geoffrey Roberts, Stalin's Wars: From World War to Cold War, 1939–1953 (2006)
- Michael Jabara Carley, 1939: The Alliance That Never Was and the Coming of World War II (1999)
- Jonathan Haslam, The Soviet Union and the Struggle for Collective Security in Europe, 1933–39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