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Deal · 1933.03.04–1938 (1933~1935년의 「첫 번째 뉴딜」과 1935~1938년의 「두 번째 뉴딜」로 나눈다. 1938년 선거 뒤 공화당과 보수파 민주당 의원들이 새 입법을 막았다.)

뉴딜

New Deal

대공황에 맞서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정부가 1933년부터 추진한 경제·사회·정치 개혁의 묶음. 연방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직접 개입해 실업자 구제, 경기 회복, 금융 개혁을 꾀했다. 은행 휴업과 예금보험, 금본위 정지, 산업·농업 통제, 대규모 공공사업,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 사회보장 연금과 실업보험이 그 내용이었다. 미국 자본주의를 바꾸었는지 구했는지를 두고 평가가 갈린다.

상세

「뉴딜」이라는 말은 루스벨트가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며 처음 썼다. 그는 공황의 원인을 시장의 본래적 불안정과 부족한 총수요에서 찾고, 경제를 안정시키려면 연방정부가 대대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선거에서 현직 후버를 크게 이겼다.

1933년 3월 취임 뒤 「첫 100일」부터 1935년까지의 「첫 번째 뉴딜」은 실업자와 빈민 구제(relief), 경제 회복(recovery), 금융 개혁(reform)의 「세 R」을 내걸었다. 긴급은행법과 1933년 은행법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세웠고, 증권거래위원회가 주식 시장을 감독하게 되었다. 전국부흥청(NRA)은 업종별 「공정 경쟁 규약」을 만들게 했고, 농업조정청(AAA)은 생산을 줄이는 농민에게 돈을 주어 농가 소득을 올렸다. 루스벨트가 취임했을 때 노동력의 25%가 실업자였고, 민간자원보존단(CCC)이 젊은이들을 공공 토지의 노동에,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가 발전과 지역 개발에 동원했다.

첫 번째 뉴딜 뒤에도 1935년 실업률은 20%를 넘었다. 1935~1938년의 「두 번째 뉴딜」은 일자리 창출과 노인·노동자·빈민의 처지 개선에 집중했다. 공공사업진흥국(WPA)은 다리와 도서관, 공원을 짓고 예술에도 투자했으며 850만 명 넘게 고용했다.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은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보장했고, 사회보장법은 노령연금과 장애인·빈곤 아동 급여, 실업보험을 만들었다. 공정노동기준법은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주 40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을 정했다.

뉴딜은 미국 정치를 다시 짰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노동조합, 도시 노동자, 흑인을 포함한 소수자, 남부 백인, 지식인을 묶은 「뉴딜 연합」이 되었고, 이 연합은 1960년대까지 대통령 선거를 지배했다. 반면 혜택은 고르지 않았다. 농업조정법은 대부분 백인인 지주를 도우면서 흑인 소작농과 분익농을 밀어냈고, 흑인 청년들은 민간자원보존단의 분리된 부대에서 일했으며, 연방 주택 정책은 인종 분리를 요구했다.

뉴딜이 공황을 끝냈는지는 지금도 논쟁이다. 1937~1938년 경기가 다시 꺾였고, 역사가 대부분은 완전고용이 2차 세계대전 참전 뒤에야 이루어졌다고 본다. 보수파와 수정주의 경제학자들은 뉴딜이 자유 기업을 침해하고 공황을 늘였다고 비판한다. 신좌파 역사가들은 은행과 철도, 기간산업을 국유화할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자본주의를 구출했다고 비판한다. 역사가들은 노동조합을 키운 것 말고는 뉴딜이 미국 자본주의 안의 권력 배분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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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