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자격 규약 제1조 논쟁
Paragraph One controversy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누구를 당원으로 볼 것인지를 정한 규약 제1조를 두고 레닌과 마르토프가 벌인 논쟁. 레닌은 당 조직 하나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만 당원으로 보자고 했고, 마르토프는 당 조직의 지도 아래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사람까지 당원으로 넣자고 했다. 대회는 마르토프 안을 채택했지만, 이 논쟁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갈라서는 첫 공개 대립이 되었다.
상세
두 초안
두 초안은 앞부분이 같았다. 당원은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당을 물질적 수단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차이는 끝부분에 있었다. 레닌의 초안은 「당 조직 가운데 하나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라 했고, 마르토프의 안은 「당 조직 가운데 하나의 지도 아래 당에 정기적으로 개인적인 협력을 하는」 사람이라 했다. 레닌 안에서 당원은 어느 조직의 일원이어야 했지만, 마르토프 안에서는 조직 바깥에서 지도를 받으며 돕는 사람도 당원이 될 수 있었다.
대회에서의 논쟁
레닌은 일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을 가르고, 당원으로 이루어졌으나 당 조직은 아닌 조직이라는 혼란을 없애려면 당원 개념을 좁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레하노프는 마르토프 안이 「당 안에 있으면서 조직 밖에 있기」를 바라는 기회주의자들에게 문을 열어 준다며 레닌을 거들었다.
마르토프는 넓은 계급 운동에는 넓은 당 조직이 필요하며, 비밀 조직은 폭넓은 사회민주주의 노동자 정당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악셀로드는 당과 조직을 구별해야 한다며 교수처럼 조직에 들지 않고 당을 돕는 사람들을 예로 들었고, 트로츠키도 마르토프 편에 섰다. 레닌의 회고에 따르면 마르토프 지지자들은 레닌 자신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근거로 들었다.
표결
대회 의사록에 따르면 마르토프 안이 28대 22, 기권 1로 채택되었다. 레닌은 뒤에 「28대 23쯤」이라고 기억했다. 마르토프 쪽 표에는 악셀로드·자술리치·트로츠키 등 《이스크라》파 일부와 함께 분트 대의원 5명과 《라보체예 델로》파 대의원 2명의 표가 들어 있었다. 이 일곱 명이 대회를 떠난 뒤 중앙기관 선거에서는 레닌 쪽이 다수가 되었고, 이 때문에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라는 이름이 생겼다. 규약의 나머지 조항은 큰 다툼 없이 채택되었다.
논쟁의 확대
레닌은 1904년 『일보 전진, 이보 후퇴』에서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차이」였던 제1조가, 소수파가 기회주의와 무정부주의적 미사여구로 기울기 시작한 출발점이 되면서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썼다. 그는 마르토프 안이 실제로는 규율과 조직을 꺼리는 부르주아 지식인에게 이롭다고 보았다.
반대 쪽에서는 트로츠키가 『우리의 정치적 과제』에서 위원회가 노동계급을 대신하는 「대리」의 위험을 경고했고,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조직 문제」에서 레닌의 「초중앙집권주의」에 노동계급의 「자기 중앙집권」을 맞세웠다. 제1조 문구 하나가 당이란 무엇이며 당과 계급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물음으로 번진 것이다.
그 뒤의 운명
볼셰비키만 모인 1905년 런던 제3차 대회는 새 규약을 채택하면서 제1조를 레닌의 문구로 바꾸었다. 멘셰비키가 다수였던 1906년 스톡홀름 통합 대회에서도 볼셰비키는 마르토프의 문구를 레닌의 문구로 바꾸는 결정을 관철했다. 이후 소련공산당의 공식 당사는 이 논쟁을 확고한 《이스크라》파와 동요하는 《이스크라》파가 갈라진 순간으로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