Шоковая терапия · 1970년대–1990년대

충격요법

Shock Therapy

가격 자유화, 대규모 사유화, 무역 자유화, 긴축 통화·재정 정책을 동시에 단행하여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급진 전환하는 경제 개혁의 묶음이다. 가격 통제의 폐지와 보조금 중단, 국유산업 매각, 긴축 예산을 핵심으로 하며 곧 가격 자유화와 강한 긴축의 결합이다. 제프리 삭스가 이론화했다는 서술이 널리 퍼져 있으나 삭스 본인은 명칭을 만든 적이 없다고 말하며, 용어를 대중화한 것은 나오미 클라인의 2007년 저서다. 1975년 피노체트 치하 칠레가 현대적 의미의 첫 사례로 꼽히며, 1990년대 동유럽과 구소련권에서 가장 널리 적용되어 생산 붕괴와 빈곤 급증을 낳았다.

상세

정의와 정책 묶음

충격요법은 라이자페르와 자유시장 원리에 기초한 급진적 경제 개혁의 묶음을 가리킨다. 러시아어 자료는 이를 가격의 신속하고 전면적인 자유화, 통화량의 엄격한 통제, 국유기업의 광범위한 사유화, 대부분의 보조금 폐지, 경제 부문 국가기구의 축소와 지출 통제 강화로 정리한다. 영어권 서술도 모든 가격의 자유화, 사유화, 무역 자유화, 긴축 통화·재정 정책이라는 동시적 처방으로 설명하며, 가격 통제의 폐지와 보조금 중단, 국유산업 매각, 세율 인상과 지출 삭감을 핵심 요소로 든다. 지지자들은 이 개혁이 경제를 위기에서 끌어내려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칭과 계보

제프리 삭스는 이 용어를 만든 사람으로 흔히 거론되지만, 삭스 본인은 자기가 그 표현을 택한 적이 없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며 "언론과 공론에 덧씌워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발상은 통화·경제 위기의 역사적 국면을 연구하면서 단호한 일격이 통화 혼란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점을 관찰한 데서 나왔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은 2007년 저서에서 신자유주의 자유시장 정책이 군사 쿠데타, 국가 테러, 급격한 실업과 노동력 착취 같은 정치·사회적 충격과 함께 '충격요법' 전략을 통해 세계적 지위에 올랐다고 주장하며 용어를 널리 퍼뜨렸다.

사례

서독에서는 1948년 6월 20일 통화 개혁으로 도이치마르크가 라이히스마르크를 대체했다. 6월 27일 민간 비은행 신용 잔액은 10 RM 대 1 DM로 전환되고 절반이 동결되었으며, 10월 4일 군정 당국이 동결 잔액의 70%를 소멸시켜(실효 비율 10대 0.65) 많은 소액 예금자를 몰락시켰다. 같은 날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연합국의 우려에도 배급을 크게 완화하고 가격 통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단기적으로는 초인플레이션이 끝나고 상점에 물건이 다시 채워졌으나 임대료와 필수품을 제외한 가격 자유화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총파업을 불러왔고, 이후 사회적 시장경제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 경우에도 아래로부터 위로의 재분배가 일어나 비화폐 자산 보유자들이 이익을 보았고, 1948년 말 독일의 전환은 계획 핵심부와 시장 조정 주변부가 공존하는 이중 트랙 양상을 띠었다.

칠레에서는 1975년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고 보호무역 장벽을 철폐해 칠레 기업들이 수입품과 경쟁하게 만들었다. 주요 구리 기업 코델코는 알렌데 시기의 구리 국유화 때문에 국영으로 남았고 민간 기업은 새 광산을 탐사·개발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 개혁은 경제를 안정시켰으나, 장기적으로 칠레는 이웃 국가보다 높은 GDP 성장률과 함께 소득 불평등의 뚜렷한 증가를 보였다.

볼리비아에서는 정치적 불안정 끝에 에르난 실레스 수아소 집권기에 급격한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1985년 8월 6일 빅토르 파스 에스텐소로가 당선되었고, 8월 29일 그의 당선 3주 뒤 기획장관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가 설계한 제21060호 법령이 통과되었다. 이 법령은 페소의 변동 환율 허용, 가격 통제 종료, 공공 부문 보조금 폐지, 국영 석유·주석 회사 직원의 3분의 2 해고와 잔여 공공 부문 임금 동결, 20% 단일 관세의 수입 관세 자유화, IMF 협상에 따른 대외 채무 지급 중단을 담았다. 데 로사다는 그 논리를 "중병 환자를 죽기 전에 수술해야 한다"는 비유로 설명하며 "인플레이션은 호랑이와 같아서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고 말했다. 삭스는 당시 볼리비아 정부의 경제 고문으로 이 계획에 참여했고, 인플레이션은 1985년 2만% 이상에서 1989년 15%로 떨어졌다.

구소련권의 적용과 결과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충격요법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서 채택되어 유지되었고 러시아,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채택되었다가 결국 중단되었다. 거의 모든 구소련 국가가 깊고 장기적인 침체를 겪었고 빈곤은 열 배 이상 늘었다. 러시아에서는 1992년 1월 예고르 가이다르가 가격 규제 철폐, 사적 거래의 법적 장벽 제거, 국영산업 보조금 삭감, 수입 허용으로 충격요법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즉각적인 결과는 초인플레이션과 러시아 산업 상당 부분의 파산 위기였다. 가이다르와 개혁론자들은 고통스러운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옛 소련 체제를 깨기 위한 '경제 자살특공대'라 불렀다. 러시아어 자료는 러시아의 급진 개혁을 1992년부터 1998년까지로 다루며, 고전적 충격요법 시나리오의 핵심 조건 하나인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축소가 실패했다고 본다. 1991년 연평균 인플레이션은 301.5%였고 두 자릿수(21.5%)는 1996년에야 도달했다. 반면 시장 개혁의 성과도 이르게 나타나 1992년 초 수입을 통해 물자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1998년 인플레이션은 83%로 내려갔으며 1997년 처음으로 GDP가 성장했다.

충격요법은 사회주의 아래에서 개인이 모은 소박한 재산의 가치를 떨어뜨렸고, 비화폐 자산을 보유한 엘리트에게 유리한 역진적 부의 재분배였다.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의 급속한 시장 이행은 부패를 완화하기는커녕 키웠다. 인적 비용도 컸다. 러시아는 어느 산업화 국가보다 심한 평시 사망률 증가를 겪었고, 1987~1988년 인구의 약 2%가 하루 4달러 미만의 빈곤층이었으나 1993~1995년에는 50%에 달했다. 크리스틴 고드시와 미첼 오렌스타인이 인용한 연구들은 급속 사유화가 구동유럽 국가들의 건강 지표를 악화시켰다고 보며, 세계보건기구도 IMF 경제 개혁 프로그램이 구공산권 유럽과 구소련 국가들의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 악화와 관련된다고 밝혔다.

원인을 둘러싼 논쟁도 있다. 악화된 결과가 1989년 이전에 시작된 소련 경제의 일반적 붕괴 때문인지, 이후 시행된 정책 때문인지, 아니면 그 결합 때문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삭스는 자신의 조언이 무시되었고 권고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고문직을 사임했고, 미국과 IMF가 러시아에 대규모 금융 지원을 제공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국제 금융기관의 조언은 과대평가되고 결정을 내린 국가들의 국내 정치가 과소평가된다는 지적도 있다. 소련 붕괴 이전 소련 정부는 국유 재산 개혁에 점진적 접근을 견지했지만, 1992년 해체 이후 새 러시아 정부는 공산주의 회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1990년에는 검토되지 않았던 급속 대량 바우처 사유화를 채택해 옐친을 지지하는 자본가 계급을 만들려 했다. 이런 정치적 동기가 없었던 폴란드에서는 사유화가 훨씬 덜 급하고 무모하고 불평등했으며, 불평등 증가도 훨씬 작고 성장은 더 컸다. 소련의 해체로 이전에 같은 경제권에 속했던 지역 간 교역이 크게 위축된 점도 붕괴의 요인으로 꼽힌다.

평가와 구분

충격요법은 논쟁적인 정책이었다. 지지자들은 경제 위기를 끝내고 경제를 안정시켜 성장의 길을 열었다고 주장했고,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비판자들은 불필요하게 위기를 심화시키고 사회적 고통을 낳았다고 보았다. 경제 자유주의는 1960년대 이후 부상했고 자유주의적 충격요법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점점 더 사용되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IMF의 처방으로도 등장했다. 독일 역사학자 필리프 테어는 충격요법의 강제가 유럽의 장래 경제 성장과 거의 관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충격요법을 옹호해 온 삭스는 충격요법이 채무 탕감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충격요법은 점진주의와 대비된다. 점진적 접근은 제도와 완충 장치를 먼저 구축한 뒤 단계적으로 시장화를 추진하는 반면, 충격요법은 모든 처방을 동시에 주입한다. 이러한 처방은 '빅뱅' 접근법으로도 불린다. 러시아식 실행을 비판하는 연구자들은 경제 활동의 최대한의 자유화, 국유 재산의 임의적 분배, 총수요의 강한 제약을 통한 금융 안정이 열악한 준시장 체계를 낳았다고 본다. 학술원 회원 A. D. 네키펠로프는 경제 활동의 전례 없는 자연화, 실물 부문 수익률을 초과하는 지속적 금리, 만성적 재정 위기, 금융·무역 투기와 기존 부의 약탈로의 지향을 그 특징으로 들었다. 한편 '환상요법(illusion therapy)'은 충격의 강도가 사회에 체감되지 않는 방식으로 충격적 정책을 부과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별개의 개념으로, 영어권 자료는 그 첫 사례로 보조금 개혁을 시행한 이란을 든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overview of shock therapy as an economic doctrine: simultaneous liberalization, privatization, stabilization; origins in post-war Germany, Chile 1975, Bolivia 1985, and post-Communist states including Russia under Gaidar.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defines shock therapy as radical economic reforms based on laissez-faire, with the Russian case (1992–1998) detailed as non-classical due to failure to control inflation.
  3. theguardian.com The Guardian obituary: Gaidar launched shock therapy programme in January 1992 by deregulating prices, removing barriers to private trade, cutting subsidies; dubbed himself part of an 'economic kamikaze team'.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러시아어)
  6. theguardian.com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