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 1867–현재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다룬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 규정을 1867년 『자본』 1권 1장에서 이 이름으로 정식화했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Socially Necessary Labour Time

어떤 상품을 그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에서 평균적인 숙련도와 노동강도로 만드는 데 드는 노동시간. 마르크스는 『자본』 1권 1장에서 상품의 가치 크기를 정하는 것은 개별 생산자가 실제로 들인 시간이 아니라 이 사회적 평균 시간이라고 보았다. 게으르거나 서툰 사람이 오래 걸려 만든 물건이 더 비싸지 않은 까닭, 새 기계가 나오면 옛 방식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가 떨어지는 까닭, 시장의 수요를 넘어 만든 물건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까닭을 이 개념으로 설명한다.

상세

오래 걸려 만든 물건일수록 비싼가?

노동가치론은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만드는 데 든 노동의 양으로 정해진다고 본다. 그러면 곧바로 반문이 나온다. 게으른 사람이 사흘 걸려 만든 의자가 부지런한 사람이 하루 만에 만든 의자보다 세 배 비싸야 하는가? 마르크스는 『자본』 1권 첫 장에서 이 반문을 직접 꺼냈다. “상품의 가치가 그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으로 정해진다면, 사람이 게으르거나 서툴수록 그 상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더 걸리므로 그의 상품은 더 가치가 있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Es könnte scheinen, daß, wenn der Wert einer Ware durch das während ihrer Produktion verausgabte Arbeitsquantum bestimmt ist, je fauler oder ungeschickter ein Mann, desto wertvoller seine Ware, weil er desto mehr Zeit zu ihrer Verfertigung braucht.

그의 답은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이 개개인의 노동이 아니라 「같은 인간 노동」, 사회 전체의 노동력 가운데 평균적인 몫이라는 것이었다. 사회의 모든 노동력은 수많은 개인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치 속에서는 하나의 같은 인간 노동력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각 상품의 생산에는 평균적으로 필요한 시간, 곧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만이 셈에 들어간다.

무엇을 기준으로 평균을 내나?

마르크스의 정의는 이렇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현존하는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노동의 숙련도 및 강도의 사회적 평균 정도로 어떤 사용가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ist Arbeitszeit, erheischt, um irgendeinen Gebrauchswert mit den vorhandenen gesellschaftlich-normalen Produktionsbedingungen und dem gesellschaftlichen Durchschnittsgrad von Geschick und Intensität der Arbeit darzustellen.

정의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다. 그 사회에서 정상적인 도구와 설비, 평균적인 숙련, 평균적인 노동강도다. 예를 들어 보자(숫자는 가정이다). 의자를 만드는 공장 대부분이 의자 하나에 2시간을 쓰는데, 낡은 공구를 쓰는 작은 공방은 4시간,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은 1시간을 쓴다고 하자. 이때 의자 한 개의 가치는 2시간어치 노동이다. 낡은 공방이 4시간을 들여도 그 의자는 2시간어치로만 팔리고, 나머지 2시간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노동이 된다. 최신 공장은 1시간을 들이고 2시간어치에 팔아 다른 공장보다 큰 이익을 얻는다.

마르크스는 개별 상품이 「그 종류의 평균 견본」으로 여겨진다고 썼다. 같은 양의 노동을 담고 있거나 같은 노동시간에 만들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가치 크기를 지닌다.

기계가 바뀌면 왜 가치가 떨어지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고정된 수치가 아니다. 생산조건이 바뀌면 함께 바뀐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역직기 도입을 예로 들었다. “영국에 증기 직기가 도입된 뒤 일정량의 실을 천으로 바꾸는 데 아마 이전의 절반의 노동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영국의 수직공은 이 변환에 실제로 여전히 같은 노동시간을 썼지만, 그의 개별 노동 한 시간의 생산물은 이제 사회적 노동 반 시간만을 나타냈고, 따라서 이전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Der englische Handweber brauchte zu dieser Verwandlung in der Tat nach wie vor dieselbe Arbeitszeit, aber das Produkt seiner individuellen Arbeitsstunde stellte jetzt nur noch eine halbe gesellschaftliche Arbeitsstunde dar und fiel daher auf die Hälfte seines frühern Werts.

수직공은 예전과 똑같이 일했다. 그런데 그의 천의 가치는 반으로 떨어졌다. 그의 노동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회의 평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수직공들이 역직기에 밀려 몰락한 과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너무 많이 만들면 어떻게 되나?

『자본』 1권 3장에서 마르크스는 이 개념의 다른 면을 보여 준다. 그는 시장에 천을 팔러 나온 직조공의 이야기를 이어 간다. 직조공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간만 들여 천을 짰다고 해도, 사회가 그 천을 다 사들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시장의 위가 1엘레당 2실링이라는 정상 가격으로 천 전체를 흡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총노동시간 가운데 너무 큰 부분이 직조의 형태로 지출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결과는 개개의 직조공이 저마다 자기 생산물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은 노동시간을 들인 것과 같다.”

Vermag der Marktmagen das Gesamtquantum Leinwand, zum Normalpreis von 2 sh. per Elle, nicht zu absorbieren, so beweist das, daß ein zu großer Teil der gesellschaftlichen Gesamtarbeitszeit in der Form der Leinweberei verausgabt wurde.

마르크스는 여기에 “함께 잡히면 함께 매달린다(Mitgefangen, mitgehangen)”는 독일 속담을 붙였다. 시장의 모든 천은 한 덩어리 상품으로 취급되고, 각 조각은 그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에는 두 층이 있다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하나는 한 상품을 만드는 데 기술적으로 필요한 평균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총노동 가운데 그 생산 부문에 돌아갈 몫, 곧 화폐로 뒷받침된 수요가 그 상품에 허락하는 양이다. 앞의 것은 상품 하나의 가치를 정하고, 뒤의 것은 실제 공급과 수요의 어긋남, 따라서 시장가격과 가치의 어긋남을 설명한다.

개별 기업에게 이 기준은 무엇을 뜻하나?

이 개념은 자본주의 경쟁의 원동력을 설명한다. 사회 평균보다 적은 노동비용으로 생산하는 기업은 지배적인 시장가격에 팔아 초과이윤을 얻고, 평균보다 많이 드는 기업은 그만큼 손해를 본다. 그래서 기업들은 끊임없이 노동비용을 줄이려 하며, 장기적으로 상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시간은 계속 줄어든다. 앞서 나간 기업이 얻는 초과이윤은 새 방법이 퍼져 사회적 평균이 바뀌면 사라지고, 경쟁은 다시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가치법칙의 작동으로, 또 노동생산성을 높여 얻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분석했다.

고전파의 노동시간과는 무엇이 다른가?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도 상품의 가치를 노동량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교환가치는 개별 노동시간이 아니라 사회 전체 노동시간의 일정한 몫(aliquot part)으로 생각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실제로 일한 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의 관계 속에서 평가된 노동시간이며, 그래서 가치는 상품의 순수하게 사회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신도 독자들이 자기의 범주를 리카도의 것과 같은 것으로 읽을까 봐 『자본』 2판 후기 등에서 그 차이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마르크스는 비판자들에게 답한 한 편지에서 이 생각을 이렇게 풀었다. 서로 다른 필요에 맞는 생산물의 양에는 사회 총노동의 양적으로 정해진 양이 필요하며, 역사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이 법칙이 관철되는 형태뿐이다. 사적 생산자들이 생산물을 교환해서만 서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노동의 비례적 배분이 관철되는 형태가 바로 생산물의 교환가치라는 것이다.

어떤 논쟁이 있나?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해석의 폭이 넓다. 자유지상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이라는 단서가 이론에 정당한 근거 없이 덧붙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사상사가 필립 미로스키는 마르크스가 현재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가치를 보는 「장(場) 이론」과 상품에 체현된 노동시간으로 보는 「실체 이론」 사이를 오갔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안에서도 상품의 가치가 과거에 생산수단을 만드는 데 든 간접 노동까지 포함한 체현 노동량인지, 아니면 그 상품을 지금 다시 만드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마르크스를 장 이론으로 읽는 쪽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 끊임없이 바뀌는 현재의 양이며, 가치는 특정 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실현될 때에만 수치로 정해질 수 있다고 본다. 숙련노동을 단순노동 몇 시간으로 환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이 개념과 이어져 있으며, 이는 노동의 이중성 항목에서 다룬다.

관련 인물

출처

  1. web.archive.org
  2. web.archive.org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