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헌법
Soviet constitutions
소비에트 국가가 채택한 헌법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1918년 헌법에서 시작해, 연방 결성을 담은 1924년 헌법, '승리한 사회주의'를 선언한 1936년 헌법, '발전된 사회주의'를 선언한 1977년 헌법으로 이어졌다.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에 속한다는 원칙은 네 헌법에 공통되지만, 누가 투표하는가, 당이 헌법 어디에 적히는가, 국가를 무엇이라 부르는가는 시기마다 달라졌다.
상세
헌법이 네 번 바뀐 까닭은 무엇인가
소비에트 헌법은 통치 기구의 규칙만 적은 문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헌법이 주로 권력 기관의 구성과 권한, 그리고 국가가 개인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일을 정한다면, 소비에트 헌법은 거기에 더해 사회 구조와 경제 제도를 함께 규정하고, 서문에서 사회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선언했다.
그래서 새 헌법은 대개 통치 규칙을 손보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다음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때 나왔다. 소비에트 법학은 헌법을 이미 이룬 것의 기록이자 앞으로 이룰 것의 강령으로 보았고, 두 성격이 한 문서에 겹쳐 있다는 점이 소비에트 헌법을 읽을 때의 출발점이 된다.
1. 1918년 헌법: 권력은 소비에트에 있다
10월혁명 이듬해 제5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채택한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첫 헌법이다. 소련은 아직 없었다. 연방은 1922년에 결성되므로, 이 헌법이 규율한 것은 러시아 공화국 하나였다.
첫머리에는 「근로 피착취 인민의 권리 선언」이 통째로 실렸다. 토지의 사적 소유 폐지, 은행과 공장의 이전, 일반 노동 의무처럼 혁명이 이미 취한 조치들이 그대로 헌법 조문이 되었다.
뒤의 헌법들과 가장 크게 다른 대목은 선거권이다. 선거는 평등하지 않았다.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의 대의원은 도시 소비에트에서 유권자 2만 5천 명당 1인, 농촌의 현 대회에서 주민 12만 5천 명당 1인의 비율로 뽑혔다(제25조). 노동자의 한 표가 농민의 한 표보다 무거웠다는 뜻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남을 고용하는 사람,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 상인, 성직자, 구 경찰과 헌병, 로마노프 황가 사람은 아예 선거권이 없었다(제65조).
당대의 논리는 이러했다. 지금은 계급 투쟁이 끝나지 않은 이행기이고 헌법은 그 이행기의 노동자·빈농 독재를 문서로 옮긴 것이므로(제9조), 막 무너진 착취계급에게 정치적 권리를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23조는 아예 혁명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권리를 쓰는 개인과 집단에게서 그 권리를 박탈한다고 명시했다.
2. 1924년 헌법: 연방을 만든 문서
1922년의 소련 결성 조약을 헌법으로 옮긴 것이 1924년 헌법이다. 여기에는 공민의 권리 조항이 거의 없다. 연방과 공화국이 무엇을 나누어 맡는지, 탈퇴권을 포함한 공화국의 지위가 어떠한지가 주된 내용이었고, 권리는 각 공화국 헌법의 몫으로 남았다. 소비에트 헌법사에서 이 문서는 새로운 사회를 선언한 헌법이 아니라 연방이라는 형식을 만든 헌법으로 읽힌다. 참고 문헌 서가에는 아직 이 헌법의 번역이 없다.
3. 1936년 헌법: 선거권이 넓어지고 당이 헌법에 들어오다
'스탈린 헌법'으로 불린다. 두 가지가 크게 바뀌었다.
하나는 선거다. 차등 선거와 선거권 박탈이 사라지고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가 도입되었다. 소비에트 대회는 폐지되고 연방회의와 민족회의 양원으로 이루어진 최고소비에트가 들어섰다. 내재적 논리는 앞 절과 이어진다. 착취계급이 이미 소멸했다고 선언한 이상, 그들을 겨냥한 정치적 권리 제한을 유지할 근거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권리의 명문화다. 노동권, 휴식권, 교육권, 노령과 질병 때 부양받을 권리가 조문이 되었고, 각 권리 옆에는 그것을 무엇으로 보장하는지가 함께 적혔다(제118~121조). 권리를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장 수단을 나란히 적는 이 서술 방식은 이후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헌법이 따랐다.
그리고 제126조에서 소련공산당이 처음으로 헌법에 등장한다. 당은 근로자 단체들의 '지도적 핵심'으로 규정되었다.
이 헌법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조문과 실제의 간극이다. 채택 이듬해에 대숙청이 정점에 이르렀고, 헌법이 보장한 인신의 불가침(제127조)과 공개 재판은 특별 트로이카의 약식 처리 앞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서구 학계가 이 헌법을 명목뿐인 헌법의 사례로 다루는 논의는 여기서 출발한다. 반면 조문의 상당 부분, 곧 무상 교육과 의료, 여성의 동등한 권리는 실제로 집행되었으며 이 헌법은 소비에트 사회의 자기 인식을 정확히 기록한 문서라는 반론도 함께 있다. 두 평가는 같은 문서의 다른 면을 보고 있다.
4. 1977년 헌법: 발전된 사회주의와 제6조
브레즈네프 시기에 채택되어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효력을 지녔다. 서문은 소련에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었다고 선언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과업을 완수한 국가를 전인민국가로 규정한다. 계급의 독재를 수행하는 국가에서 전 인민의 국가로 성격 규정이 바뀐 것인데, 이 변경은 채택 당시부터 논쟁거리였다. 중국공산당과 알바니아 노동당은 이를 수정주의의 증거로 비판했고, 소련의 정통 해석은 적대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귀결이라고 답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조항은 제6조다. 소련공산당을 '소비에트 사회의 지도적·향도적 역량이며 그 정치 제도와 국가 기관·사회단체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1936년 헌법이 당을 여러 단체의 지도적 핵심으로 적었다면, 이 조항은 당을 국가 기관 위에 놓았다.
1988년부터 1990년 사이의 개헌은 이 구조를 되돌렸다. 인민대의원대회가 신설되고 대통령제가 도입되었으며, 1990년 3월 제6조가 개정되어 당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졌다.
조문은 아무 힘도 없었는가
소비에트 헌법에는 흔히 문서일 뿐이었다는 평가가 붙는다. 조문이 정치 현실을 구속하지 못한 국면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문이 뒤늦게 실효를 발휘한 대목도 있다. 1977년 헌법 제72조는 각 연방공화국에 '소련에서 자유로이 탈퇴할 권리'를 유보해 두었다. 1990년과 1991년에 발트 삼국과 그루지야를 비롯한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근거로 든 것이 바로 이 조항이었다. 연방의 형식을 갖추려고 넣어 둔 문구가 연방을 푸는 절차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1918·1936·1977년 헌법 영역 전문
- ru.wikisource.org 1918년 헌법 러시아어 원문
- ru.wikisource.org 1924년 연방 헌법 러시아어 원문
- ru.wikisource.org 1977년 헌법 러시아어 원문과 1988~1990년 개정 판본
- 위키백과 (영문) 제정 경과, 51.5백만 명이 참여한 전 인민 토의, 제126조
- 위키백과 (영문) 전인민국가 규정, 제6조와 1990년 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