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ермидор

테르미도르

Thermidor

프랑스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반동에 빗대어, 혁명이 관료적 반동으로 후퇴하는 국면을 가리키는 말. 트로츠키는 스탈린 체제를 '소비에트 테르미도르'로 규정하며, 재산 형태는 유지된 채 권력이 관료층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상세

유추의 출처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력의 월 이름으로,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한 테르미도르 9일의 사건에서 유래한다. 이 사건은 혁명의 급진적 국면을 종결시켰으나 왕정을 복원하지는 않았다. 재산 관계의 변혁은 유지된 채 정치 권력이 혁명적 대중 운동에서 이탈해 새로운 지배층으로 옮겨 간 것이 이 국면의 특징이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이 유추를 일찍부터 의식했다. 혁명이 자기 안에서 반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프랑스 혁명사의 어휘로 논의되었고, 테르미도르는 그 전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트로츠키의 규정

트로츠키는 1930년대에 이 개념으로 스탈린 체제를 규정했다. 그의 분석에서 소련은 자본주의로 복귀하지 않았고, 국유화된 생산수단과 계획 경제라는 10월 혁명의 사회적 성과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은 노동계급의 소비에트에서 관료층으로 넘어갔고, 이 관료층은 특권과 위계를 통해 자기를 재생산했다.

「배반당한 혁명」(1936)에서 그는 이 상태를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규정했다. 사회적 기초는 프롤레타리아적이지만 정치 체제는 관료적 카스트의 지배라는 이중 규정이며,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사회 혁명이 아니라 정치 혁명이라는 결론이 뒤따랐다. 그는 이 진단에 보나파르티즘 개념도 병용해, 계급 세력의 균형 위에 올라선 경찰-관료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논쟁

이 규정은 좌파 내부에서 오래 논쟁되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관료층이 사실상 지배 계급으로 성립했으므로 소련을 노동자 국가로 부를 수 없다고 보았고, 관료적 집산주의론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새로운 착취 사회라는 규정을 제시했다. 반대로 소련 측 정통 서술은 이러한 규정 자체를 반소비에트 이론으로 배격했다.

테르미도르 유추의 유효성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프랑스의 테르미도르가 몇 달 사이의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과 달리 소련의 관료화는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과정이었으므로, 유추가 사태의 성격을 오히려 가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개념은 혁명 이후의 반동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어휘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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