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보관고
Spetskhran
소비에트 도서관·기록보관소 내에 설치된 제한열람 부서로, 이념적으로 '유해'하다고 판단된 출판물을 일반 이용자의 접근으로부터 격리했다. 트로츠키·부하린 등 '금지된 이름'이 등장하는 소비에트 초기 문헌, 망명 작가의 저작, 반소련 외국 출판물 등이 보관 대상이었다. 열람에는 당 기관이나 KGB가 발급한 특별 허가가 필요했으며, 1987년 글라스노스트와 함께 단계적 해제가 시작되어 1990년 검열 기구 폐지와 동시에 완전히 소멸했다.
상세
소비에트 특별보관고는 단일 법령으로 갑자기 생겨난 기구가 아니었다. 그 기원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확한 설치 시점은 사료에 따라 다르게 전해진다. 1920년 6월 30일 인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도서원판소(Книжная палата)가 붉은군대·혁명군사평의회·전러시아특별위원회의 간행물을 비밀 문헌으로 납본받기 시작했고, 1921년에는 이곳에 망명자 신문과 잡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서관 내 특별보관고는 1921년 12월 12일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 인민위원회 결정을 근거로 설치되었으며, 1922년 1월 12일 전러시아중앙집행위원회 법령과 교육인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검열 허가 없이 발행된 압수 도서가 비밀 부서로 흘러들었다. 그해 12월 14일 결정으로 루먄체프 박물관 도서관과 페트로그라드 공공도서관에도 비밀 간행물을 공급하도록 했고, 교육인민위원회와 전러시아특별위원회가 공동으로 비밀 문헌의 보관·이용 규정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비밀 문헌 열람은 인민위원회 의장, 교육인민위원과 그 부관,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위원, 전러시아특별위원회 간부회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했다. 허가장에는 매번 열람할 문헌과 허가받은 사람의 이름·부칭·성까지 정확히 기재해야 했다. 1923년 특별보관고는 글라블리트와 정치교육총국 관할로 넘어갔고, 도서관 '정화' 작업의 결과로 역사·철학 분야 문헌이 거의 전부에 가깝게 특별보관고로 밀려들었다. 1925년 인민위원회의 '국가 서고에 비밀 간행물을 공급하는 절차에 관한' 결정은 비밀 간행물을 모스크바의 레닌 공공도서관, 10월혁명 문서보관소, 레닌그라드의 국가공공도서관,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공산주의 아카데미 도서관 등 네 곳에만 보낼 수 있다고 규정했다.
특별보관고가 무엇을 가두었는지는 체제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준다. 내전 시기 비공산주의 간행물, 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부하린 같은 인물이나 그 저작이 언급된 1918~1936년의 소비에트 도서, 내용과 무관하게 망명 출판사나 서방 출판사가 낸 러시아어 서적·잡지·신문, 그리고 외국어 간행물이 여기에 들어갔다. 외국 문헌은 일반 공개용과 제한용으로 나뉘었고, 제한용은 다시 1с·2с·3с·4с 네 등급으로 세분되었다. 1с 목록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국가보안위원회, 레닌 도서관, 사회과학정보연구소만 받았고, 4с 등급(예컨대 소련 과학아카데미 특별보관고)에는 국내로 들어온 제한 문헌의 4분의 1만 배정되었다. 1930년대 숙청기에는 '인민의 적'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기만 한 책, 심지어 '트로츠키의 인쇄소'에서 찍혔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보관고행이 되었다. 글라블리트가 작성한 651명의 저자 명단에 오른 인물의 저작은 공개 서가에서 전면 제거되었다. 이런 강제 수용이 결과적으로 파괴를 막아낸 측면도 있었다. 러시아국립도서관의 특별보관고 덕분에 수천 종의 간행물이 물리적 파괴를 면했다. 규모는 1987년 무렵 주요 도서관 특별보관고에 최대 50만 점이 쌓여 있었고, 레닌 국립도서관 특별보관고만 해도 소비에트 도서 약 2만 7000권, 외국 도서 25만 권, 외국 잡지 57만 2000호, 외국 신문 연간제본 약 8500질을 보유했다. 1985년 초 중앙문학예술문서보관소 특별보관고는 전체 자료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15만 점을 보관하고 있었다.
용어 자체가 검열의 산물이었다. 특별보관고는 러시아어 'отдел специального хранения'(특별보관부)의 준말인 'спецхран'으로, 'спецфонд'(특별기금)와 함께 쓰였다. 두 단어를 비밀 취급이 아닌 공개 문서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비밀이 아닌 나머지 장서를 구분해 '기본보관기금'이라 불렀다. 출간 직후 특별보관고로 보내져 일반 독자를 상정하지 않은 소비에트 문헌에는 '과학도서관용'이라는 표기를 달았고, '명단에 따라 배포'라는 표기도 쓰였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부서였다. 도서관 이용 안내에도, 전화번호부에도, 열람실 목록에도 이름이 없었고 사서 대상 출판물에도 실리지 않았다. 러시아국립도서관은 특별보관고를 '도서관 속의 도서관'이라 불렀다.
1987년 3월 글라스노스트가 선언되면서 장서의 개방 서가 반환이 시작되었고, 명단을 재검토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88년 10월까지 7930종이 개방 기금으로 옮겨졌으나, 레닌과 당과 소비에트 국가를 비방한다고 규정된 462종은 '명백히 반소비에트적인 성격'의 문헌으로 남겨졌다. 옛 소비에트 망명 작가의 작품은 포르노·파시스트 문헌, 폭발물·마약 관련 문헌과 함께 가장 오래 특별보관고에 남았다. 1988년 이념비서 바딤 메드베데프는 KGB를 통해 솔제니친의 작품을 입수했고, 특별보관고를 열어 솔제니친의 기출판 저작을 일반 서가로 되돌렸다. 1990년 7월 9일 소련 출판비밀보호총국이 '특별보관고 폐지에 관한' 명령을 내려 모든 도서를 일반 장서로 이관하도록 했고, 특별보관고는 검열 제도와 함께 사라졌다. 오늘날 옛 특별보관고는 대개 러시아 국외 문학 부서로 바뀌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Russian Wikipedia: Спецхран — full history of creation (1921), structure, categories, and liquidation (1987–1990). Confirms 1987 total of ~500,000 items, Lenin Library holdings of ~27,000 Soviet + 250,000 foreign books.
- Nadezhda Ryzhak, Russian State Library — "Censorship in the USSR and the Russian State Library": detailed account of the 1922 Glavlit circulars establishing the spetskhran, including the top-secret Inotdel list of forbidden foreign literature categories.
- M.V. Zelenov, OpenText — "Спецхран и историческая наука в Советской России в 1920–1930-е годы": academic analysis of spetskhran as an instrument of party-state information control, tracing its origins and ideological function.
- Vadim Medvedev card, CommuLingo: as ideology secretary (1988), he obtained Solzhenitsyn's complete works via the KGB, opened the spetskhran, and returned all previously published Solzhenitsyn titles to open shelves. Source material for this run.
- 위키백과 (러시아어)
- bibalex.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