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회주의
State Socialism
국가가 경제를 장악해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구상, 또는 그렇게 운영되는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1860년대 라살레가 국가를 사회주의 실현의 도구로 본 데서 비롯해, 1880년대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과 국유화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는 자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적이 없고 남의 오류를 지적할 때만 쓰였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이 모두 이를 공격했고,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1896년 이것을 국가자본주의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나치의 Nationalsozialismus를 민족사회주의로 갈라 부르면서 이 말의 자리가 정리되어 왔고, 오늘날 한국어에서 국가사회주의는 주로 소련형 체제를 가리킨다.
상세
국가가 쥐면 사회주의인가
'국가사회주의'는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으로 쓰인 적이 거의 없다. 대개는 남을 가리킬 때 쓴다. 이 말 안에 결론이 하나 미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라는 등식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반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다.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는가보다 그 국가가 누구의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마르크스는 『고타강령 비판』(1875)에서 "자유란 국가를 사회 위에 군림하는 기관에서 사회에 철저히 종속된 기관으로 바꾸는 데 있다"고 썼다. '국가사회주의'는 이 물음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이 말은 분석 도구가 되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남았다.
1. 라살레: 국가를 지렛대로 삼는다는 구상
원어는 Staatssozialismus이고, 계보의 출발점은 페르디난트 라살레(1825~1864)다.
라살레는 헤겔주의자였다. 그에게 국가는 계급 지배의 기구이기 이전에 "보편적 의지의 실현"이며, 인류를 자유로 교육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었다. 1862년 베를린 연설에서 그가 자유주의자들의 국가관을 '야경국가'(Nachtwächterstaat)라 조롱한 것이 이 국가관에서 나온다. 재산과 치안이나 지키며 밤에 순찰이나 도는 국가라면 무엇하러 두느냐는 것이다. 최소국가를 가리키는 오늘날의 표준 용어가 원래는 그의 야유였다.
경제 쪽 전제는 '임금철칙'(ehernes Lohngesetz)이다. 자본주의에서 평균임금은 언제나 생존에 필요한 최저선으로 끌려 내려간다는 명제다. 이것이 철칙이라면 노동조합의 임금 투쟁은 원리상 헛수고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굴레를 벗는 길은 하나뿐이다. 스스로 자기 고용주가 되는 것, 즉 생산자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에게는 자본이 없다. 그래서 국가가 신용을 대야 하고, 국가를 그렇게 움직이려면 보통·직접 선거권을 얻어야 한다. 보통선거권에서 국가 신용으로, 국가 신용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이 세 고리가 라살레 강령의 전부다. 그는 이 강령을 걸고 1863년 5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전독일노동자협회(ADAV)를 세웠다. 독일 최초의 노동자 정당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라살레가 말한 국가는 눈앞의 프로이센 국가가 아니라 보통선거로 노동자가 장악하게 될 국가였다. 그러므로 그의 오류는 흔히 말하는 '국가 맹신'이 아니다. 국가 기구를 그대로 둔 채 투표로 그 계급적 성격만 갈아 끼울 수 있다고 본 것, 그것이 오류다. 그리고 바로 그 전제 위에서 그는 1863년 5월부터 비스마르크와 비밀 회담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에 맞서 노동자와 보수 국가가 손잡고 보통선거권을 얻어내자는 거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노선을 깊이 의심한 것은 당연하다.
2. 비스마르크: 이름이 붙은 자리
라살레의 구상은 엉뚱한 손에서 절반만 실현됐다. 비스마르크는 1878년 사회주의자탄압법으로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를 내건 결사와 집회와 출판을 금지해 놓고,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재해보험, 1889년 노령·장애보험을 차례로 도입했으며 프로이센의 주요 철도를 국유화했다. 탄압과 사회입법은 한 정책의 양면이었다. 국가가 필요한 기구일 뿐 아니라 은혜로운 기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노동자를 사민당에서 떼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실패했다. 사민당의 세력은 그대로 자랐다.
이름은 여기서 붙었다.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 진영이 이 정책 묶음을 비꼬아 '국가사회주의'라 불렀고, 비스마르크는 자기가 사민당 사람들보다 더 실천적인 사회주의자라고 응수했다. 학계에도 이 이름을 내건 흐름이 있었다. 1872년 아이제나흐에서 창립된 사회정책학회(Verein für Socialpolitik)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와 자유방임 사이의 중간 길을 찾던 이른바 강단사회주의자들이며, 그중 아돌프 바그너는 Staatssozialismus를 아예 자기 학파의 이름으로 삼았다. '강단사회주의'라는 말 자체도 자유주의 논객이 조롱조로 붙인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라살레가 전제한 국가는 노동자가 선거로 장악할 국가였고, 비스마르크가 운영한 국가는 융커-부르주아 국가였다. 소유의 형태는 같고 국가의 계급적 성격은 정반대다. 이 말이 이후 언제나 고발의 언어로만 쓰이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3. 마르크스주의의 반박
라살레파(ADAV)와 아이제나흐파(1869년 창립, 베벨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1875년 고타에서 합당했다. 마르크스가 그 합당 강령을 조목조목 부순 것이 『고타강령 비판』이고, 표적은 대부분 라살레의 유산이었다.
임금철칙에 대해서는, "철"이라는 수식어는 신도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표지일 뿐이며 그 명제의 근거는 결국 맬서스 인구론이라고 지적했다. 임금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의 교리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국가 융자로 새 사회를 지을 수 있다면 철도도 그렇게 지으면 되겠다고 비꼬았다. 협동조합은 노동자 자신의 독립적 창조물일 때만 값이 있지 정부가 돌보는 피후견물이어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인민국가'라는 구호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목적은 국가를 자유롭게 하는 데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앞에 인용한 문장이 그 대답이다.
엥겔스는 더 직설적이다. 『공상에서 과학으로』(1880)의 각주에서 그는 비스마르크식 국유화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풍조를 "사이비 사회주의"라 못박았다. 국가가 담배 전매를 한 것이 사회주의라면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도 사회주의의 창시자에 넣어야 한다. 벨기에가 철도를 깔고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철도를 사들인 것은 전시에 다루기 편하자는 계산이지 사회주의와 무관하며, 그 논리대로라면 왕립 도자기 공장과 군대의 연대 재봉사까지 사회주의 기관이 된다는 것이다.
고타에서 라살레파와 맞섰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는 1896년에 이 논쟁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국가사회주의를 가장 앞장서 반대해 온 것이 바로 우리 독일 사회주의자들이며, 국가사회주의가 실은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을 누구보다 분명히 보인 사람이 나다." 이 말에 쓸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국가자본주의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레닌도 같은 선에 선다. 『국가와 혁명』(1917)에서 그는 독점자본주의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이제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사회주의'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을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그릇된 단언"이라고 잘랐다.
4. 오늘 남은 뜻
동구권이 무너진 뒤 서구 학계는 소련형 체제를 통칭하는 분류 이름으로 'state socialism'을 쓰기 시작했다. "국가사회주의는 왜 붕괴했는가" 같은 제목이 그 용법이다. 짚어둘 것이 있다. 소련과 동구 국가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바깥에서 사후에 붙인 이름이고,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판단을 이미 전제한 채 사례들을 묶는 범주로 기능한다. 학술 문헌에서 이 표현을 만나면 서술자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어에는 번역 문제가 하나 더 얹힌다. 나치의 이념은 Nationalsozialismus로, 이 항목이 다루는 Staatssozialismus와 처음부터 다른 단어다. 계급 대신 민족을 앞세워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과 국제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이념이니 내용에서도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치는 민족사회주의로, 소련형 체제는 국가사회주의로 갈라 부르는 관행이 자리잡아 왔다. 다만 나치당의 명칭은 아직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고, 민족사회주의로 통일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바로 이 충돌이다.
그러니 이 말은 규정이 아니라 고발로만 살아남았다. 어떤 체제의 성격을 실제로 규정하려면 국가 소유의 형태가 아니라 국가와 노동계급의 관계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물음을 정면으로 다루려고 마련된 짝이 국가자본주의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한국어) 한국어 위키백과. Staatssozialismus를 '국가가 경제를 간섭하고 주도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사상'으로 정의하고, 나치즘을 뜻하는 민족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와 '다른 개념'임을 명시한다. 라살레가 1862년 국가를 사회주의 달성의 도구로 본 것이 사상적 기초이며 비스마르크의 1883~1889년 사회복지제도가 이 이름으로 불렸다는 서술도 여기서 확인된다
- 위키백과 (영문) Bismarck's 1883-1889 welfare programmes were 'informally referred to as State Socialism by liberal and conservative opponents'; Bismarck's claim to be a more practical socialist than the Social Democrats; and the note that classical and orthodox Marxists treated the term as an oxymoron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 (1875): the attack on the Lassallean demand for state aid to producers' co-operatives, 'with state loans one can build a new society just as well as a new railway', and the insistence that co-operatives count only as the independent creations of the workers. Marx does not use the term 'state socialism' itself here; the target is the programme the label later attached to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Engels,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 (1880), footnote: Bismarckian state ownership declared socialist is 'a kind of spurious Socialism', with the tobacco monopoly, Napoleon and Metternich, the Belgian railways, the royal porcelain manufacture and the regimental tailor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Wilhelm Liebknecht, 'Our Recent Congress', Paris, 10 August 1896: 'Nobody has combatted State Socialism more than we German Socialists, nobody has shown more distinctively than I, that State Socialism is really State capitalism!' This is Wilhelm, Marx's associate, not his son Karl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Lenin, The State and Revolution (1917), ch. 4: the only appearance of the phrase in the work, rejecting as an 'erroneous bourgeois reformist assertion' the claim that state-monopoly capitalism is no longer capitalism and may be called 'state socialism'
- 위키백과 (영문) the party's full name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Hitler's redefinition of socialism as 'an ancient Aryan, Germanic institution', and Nazism's rejection of Marxist class conflict and internationalism, which is what separates Nationalsozialismus from Staatssozialismus
- 위키백과 (한국어) 한국어 위키백과가 Nationalsozialismus의 번역어로 민족사회주의를 표제로 삼고 국민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를 병기하는 현황. 한국에서 나치는 민족사회주의, 소련형 체제는 국가사회주의로 갈라 부르는 관행이 자리잡아 왔음을 보여준다
- 위키백과 (한국어) 그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 한국어 위키백과의 나치당 문서 표제는 여전히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며, 이 표기가 라살레 계열 Staatssozialismus와 충돌하는 것이 민족사회주의로 부르자는 주장의 근거다
- 위키백과 (영문) Lassalle's Hegelianism (the state as 'the realisation of the universal actual Will'), the iron law of wages, the programme of universal direct suffrage plus state-funded producers' co-operatives, the founding of the ADAV in Leipzig on 23 May 1863, and the secret meetings and correspondence with Bismarck from May 1863 that Marx and other socialists viewed with deep suspicion
- 위키백과 (영문) the term Nachtwächterstaat was coined by Lassalle in an 1862 Berlin speech mocking the bourgeois-liberal limited-government state by comparing it to a night watchman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 on the Lassallean 'iron law of wages': "The word 'iron' is a label by which the true believers recognize one another", the law's Malthusian substantiation, and the charge that the programme returned to the dogma of a man who 'did not know what wages were'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 on the 'free state': 'Free state — what is this? It is by no means the aim of the workers … to set the state free', and 'Freedom consists in converting the state from an organ superimposed upon society into one completely subordinate to it'
- 위키백과 (영문) the Eisenach party (SDAP) founded at Eisenach in August 1869 under Wilhelm Liebknecht and August Bebel, its Marxist orientation against the ADAV's closeness to Prussia, and the 1875 Gotha merger of the two into the Socialist Workers' Party of Germany
- 위키백과 (영문) the law of 19 October 1878 banning societies, meetings and publications aiming at social-democratic, socialist or communist ends; and Bismarck's complementary social legislation (health 1883, accident 1884, old-age and disability 1889) meant to win workers over by showing that 'the state is not merely a necessary institution but also a benevolent one', which 'did little to slow the growing strength of the social democrats'
- 위키백과 (영문) founded at Eisenach in 1872 by Schmoller, Brentano and Adolph Wagner among others, seeking a middle path between socialist and laissez-faire policy; 'Kathedersozialisten' was a pejorative coined by the liberal critic Heinrich Bernhard Oppenheim
- 위키백과 (영문) 'Wagner is the main protagonist of a specific school of economics and social policy, called "State Socialism" (Staatssozialismus), which is a specific form of Kathedersozialis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