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러시아 최고 통치자
Supreme Ruler of Russia
러시아 내전 중 백군 진영이 1918년 11월 18일 옴스크 쿠데타로 수립한 국가원수 직위. 우파 디렉토리(전러시아 임시정부)를 전복한 각료회의가 군사·민사 권력을 단일 인물에 집중하기 위해 채택했으며, '11월 18일 헌법'으로 불리는 임시 국가권력 조직 규정에 따라 입법 거부권과 군 최고통수권을 행사했다. 콜차크 제독이 유일한 정식 재임자였고 1920년 1월 데니킨에게 승계했으나 데니킨은 직함 수락을 거부했으며, 1920년 4월 브란겔이 '남러시아 통치자' 직함을 채택하며 공식 소멸했다.
상세
성립
전러시아 최고 통치자(러시아어: Верховный правитель России)는 러시아 내전기 백군 러시아 국가의 단독 국가원수이자 군 최고통수권자 직위였다. 1918년 9월 23일 우파 국가회의가 옴스크에 구성한 임시 전러시아 정부(우파 디렉토리)는 11월 4일 각료회의를 두었지만 실제 권력은 갖지 못했다. 가장 먼저 창설된 반볼셰비키 정부였던 사마라의 코무치와, 여러 전선에서의 패배로 군부의 신뢰를 잃은 디렉토리 사이의 분열 속에서 우파 군부와 입헌민주당 인사들이 쿠데타를 준비했다(P3, P46, P71, P72, P214, P215).
1918년 11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밤, 옴스크에 주둔한 카자크 부대 장교들이 디렉토리 좌파 인사인 니콜라이 아브크센티예프, 블라디미르 젠지노프, 안드레이 아르구노프와 내무부 차관 예프게니 로곱스키를 체포했고, 이들은 모두 사회혁명당(에스에르) 당원이었다(P5, P48). 긴급 소집된 각료회의는 디렉토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전권을 인수한 뒤 군·민사 권력을 단일 인물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P6, P49). 11월 18일 오전 옴스크에서 군사·해군 장관 알렉산드르 콜차크 부제독이 비밀 투표로 통치자로 선출되었고, 동시에 정식 제독으로 진급했다. 콜차크는 선출에 동의하고 첫 명령으로 군 최고통수권자 지위를 선포했으며, 11월 20일 발표된 대국민 호소문에서 “반동의 길도, 정파성의 파멸적 길도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P8, P9, P51, P95, P96, P98, P100).
권한과 구조
‘11월 18일 헌법’으로 불린 「러시아 국가권력 임시 조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입법권과 발의권은 최고 통치자와 각료회의가 ‘공동으로’ 행사했고, 모든 법률은 각료회의의 사전 심의와 승인을 거쳐야 했으며, 통치자는 ‘절대적 거부권’을 가졌다(P21, P55). 통치자는 군 최고통수권과 함께, “군대와 시민 질서 및 법치의 확립을 위해 비상조치에 이르기까지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P95, P114). 통치자가 직함을 반납하거나 장기 부재, ‘중병’에 처할 경우 그 직무는 각료회의가 집단으로 대행하도록 되어 있었다(P21). 최고 통치자의 상징(쌍두독수리가 들어간 기와 브레이드 페넌트)은 1919년 5월 9일 러시아 정부가 승인했다(P23, P57).
권력의 해체와 종식
각료회의는 콜차크의 승인 아래 1919년 6월 24일 남러시아 무장병력 총사령관 안톤 데니킨 중장을 최고통수권 부서(副署)에 임명해 사령부의 연속성을 보장하려 했다. 12월 22일에는 ‘최고 통치자의 중병이나 사망, 직함 포기, 장기 부재’의 경우 데니킨에게 최고 통치자 직무를 위임한다는 결정을 채택했다. 1920년 1월 4일 콜차크는 니즈네우딘스크에서 ‘전러시아 최고 권력의 이양 문제가 예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동시베리아 지역의 모든 군·민사 권한을 그리고리 세묘노프에게 넘기는 명령을 발표했고(P25, P26, P27, P59, P60, P61), 같은 1월 4일 ‘러시아 정부’가 해체되었다(P10, P52). 데니킨은 남러시아 무장병력의 참패와 정치적 위기 속에서 ‘해당 명칭과 기능의 수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최고 통치자 직함 수락을 거부했는데, 이유로 든 것은 ‘동부 정세에 관한 공식 정보의 부재’였다(P28, P62).
1920년 4월 4일 데니킨은 장군들의 압력으로 총사령관직을 남러시아 무장병력 총사령관 표트르 브란겔 남작 중장에게 넘기고 그날 영국으로 출국했다. 브란겔은 임명을 수용하고 취임 명령을 발표했으며, 1920년 4월 11일 ‘남러시아 통치자 겸 총사령관’ 칭호를 채택했다. 이로써 최고 통치자 직위는 실질적으로 소멸했다(P29, P63).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full article on the office, its establishment, powers, symbols, and termination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office description, constitutional framework, and succession
- cyberleninka.ru Смыкалин А.С., 'А.В. Колчак – Верховный правитель России в 1918 году,' Историко-правовые проблемы: новый ракурс (2013): legal status and constitutional position of the office
- 위키백과 (영문)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