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억압
Surplus-Repression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1955년 『에로스와 문명』에서 만든 개념. 인류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본능의 수정인 「기본 억압」과 달리, 사회적 지배가 덧붙이는 제한을 가리킨다. 마르쿠제는 그 지배가 현실 원칙의 지금 역사적 형태인 「업적 원칙」을 통해 작동한다고 보았고, 생산력이 높아진 사회에서 이 억압은 필요 없어질 수 있다고 했다.
상세
프로이트는 문명이 본능의 영구적 예속 위에 서 있고, 결핍과 생존 투쟁 때문에 쾌락 원칙이 현실 원칙에 굴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쿠제는 『에로스와 문명』 제1장에서 이 명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억압은 역사적 현상」이며 본능을 억압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읽었다. 생존 투쟁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생각은 문명만큼 오래된, 억압의 가장 효과적인 합리화이고, 프로이트의 이론도 상당 부분 이 합리화를 나눠 갖는다고 했다.
제2장에서 그는 두 개념을 새로 세워 본능이 겪는 생물학적 운명과 사회적 운명을 구별했다. 「기본 억압」은 문명 속에서 인류가 존속하는 데 필요한 본능의 수정이고, 과잉 억압은 사회적 지배가 요구하는 제한이다. 과잉 억압은 본능을 현재의 「업적 원칙」에 맞춰 빚으며, 업적 원칙은 현실 원칙이 지금 띠는 지배적 형태로서 끝없이 팽창하는 소유 지향적이고 적대적인 사회의 원칙이다. 마르쿠제는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만난다고 보았다. 노동자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을 넘어 남의 부를 위해 소외된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을 위해 리비도를 거기에 돌리도록 스스로를 억누른다.
마르쿠제는 프로이트의 메타심리학이 억제가 결핍 때문인지 결핍의 위계적 분배 때문인지, 생존 투쟁 때문인지 지배의 이해 때문인지를 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업적 원칙 아래 문명이 진보한 결과, 소외된 노동에 쓰이는 본능 에너지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만큼 생산력이 높아졌다. 그래서 그는 비억압적 문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해방된 에로스는 문명을 무너뜨리지 않고 성의 「자기 승화」를 거쳐 더 지속적인 노동 관계와 문화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예감은 예술에 있다고 했다. 독일어로는 「추가적 억압」(zusätzliche Unterdrückung)이라고도 한다.
같은 책의 후기 「신프로이트 수정주의 비판」에서 마르쿠제는 빌헬름 라이히의 초기 저작을 프로이트에 담긴 비판적 사회 이론을 발전시킨 가장 진지한 시도로 꼽았다. 그러나 라이히의 성 억압 개념은 구별 없이 뭉뚱그려져 있고 성 충동의 역사적 동학과 파괴 충동과의 융합을 놓쳤다고 비판했다. 그 때문에 라이히에게서는 성 해방 그 자체가 개인과 사회의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 되고, 억압적 승화와 비억압적 승화가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아 자유의 진보가 성의 방출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카렌 호나이, 해리 스택 설리번의 문화학파·대인관계학파에 대해서는 본능 이론을 훼손해 정신분석 이론을 이데올로기로 바꾸었다고 했다.
1966년판에 붙인 「정치적 서문」에서 마르쿠제는 남녀가 어느 때보다 큰 성적 자유를 누리는 사회에서 과잉 억압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고 쓰면서도, 그 자유와 충족이 지구를 지옥으로 바꾸고 있다고 반박했다. 풍요한 사회의 권력은 신민의 성적·공격적 에너지를 충족시키고, 사야 할 상품을 리비도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진단은 1964년 『일차원적 인간』의 「억압적 탈승화」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