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omme révolté · 1951

반항하는 인간

The Rebel

알베르 카뮈가 1951년 갈리마르에서 펴낸 장편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라는 물음과 답에서 출발해, 부당한 질서에 맞서는 「반항」이 동시에 함께 지켜야 할 한계와 연대를 만든다고 보고, 그 한계를 잊고 역사의 완성을 위해 살인을 정당화하는 「혁명」을 비판했다. 사드와 니체에서 헤겔, 마르크스, 볼셰비키에 이르는 근대 반항의 역사를 허무주의의 역사로 읽었다. 공산주의를 정면으로 겨눈 이 책은 1952년 사르트르의 잡지 『현대』와의 논쟁을 불러 사르트르와 카뮈의 결별로 이어졌다. 국내 번역 제목도 『반항하는 인간』이다.

상세

왜 이 책이 냉전기 좌파를 갈라놓았나?

『반항하는 인간』은 카뮈가 「부정」을 다룬 첫 연작(『이방인』,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 다음에 「긍정」을 다룬 두 번째 연작의 사상편이다. 카뮈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소설 『페스트』, 희곡 『계엄령』과 『정의의 사람들』이 같은 연작에 속한다. 『시지프 신화』가 부조리한 세계에서 왜 자살하지 않는가를 물었다면, 이 책은 왜 살인하지 않는가를 묻는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가 인용하는 서문의 말처럼 이 책의 목적은 “논리적 범죄”라는 현재의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꼼꼼히 따지는 것이었다. 50년 동안 7천만 명을 뿌리 뽑고 노예로 만들고 죽인 시대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 물음은 곧장 정치였다. 전후 프랑스에서 공산당은 가장 큰 정당 가운데 하나였고 지식인 다수가 소련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카뮈는 수용소와 숙청을 역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영어 위키백과의 정리대로 이 책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명시적으로 단죄했고, 마르크스주의자와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의 반감을 샀으며, 많은 유럽 공산주의자는 카뮈의 생각을 반동적이라고 여겼다. 이 계보도에서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은 니체의 허무주의 진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살인의 정당화로 넘어가는 길을 막으려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주장하나? 반항과 혁명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첫 몸짓부터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주인에게 「더는 안 된다」고 말하는 노예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 선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엄에 걸려 있다. 그래서 카뮈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바꾸어 이렇게 썼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Qu'est-ce qu'un homme révolté ? Un homme qui dit non. Mais s'il refuse, il ne renonce pas : c'est aussi un homme qui dit oui, dès son premier mouvement.
Je me révolte, donc nous sommes.

책은 다섯 부분(반항하는 인간, 형이상학적 반항, 역사적 반항, 반항과 예술, 정오의 사상)으로 되어 있다. 「형이상학적 반항」은 신과 창조 전체에 맞선 반항의 역사로 사드, 낭만주의와 댄디, 도스토옙스키의 이반 카라마조프, 슈티르너, 니체, 로트레아몽, 랭보, 초현실주의를 다룬다. 「역사적 반항」은 그 반항이 정치로 옮겨 간 역사로 루이 16세의 처형, 루소와 생쥐스트, 헤겔, 러시아의 테러리스트, 마르크스와 레닌, 그리고 국가 테러를 다룬다. 카뮈의 결론은 반항이 출발점의 한계를 잊고 절대적 정의와 역사의 종말을 목표로 삼는 순간 「혁명」이 되고, 혁명은 미래의 해방을 위해 오늘의 노예화와 살인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1905년 대공 암살 때 마차에 아이들이 타 있자 폭탄을 던지지 않았고 뒤에 목숨으로 대가를 치른 이반 칼랴예프 같은 「섬세한 살인자들」을, 남에게 살인을 허가하는 혁명가와 대비했다.

마지막 부 「정오의 사상」에서 카뮈는 「절도(mesure)」, 곧 한계 안에서의 반항을 지중해적 사유라고 부르며, 프랑스와 스페인의 혁명적 생디칼리슴을 국가 사회주의의 대안으로 높이 샀다. 영어 위키백과가 정리하듯 카뮈는 이 무렵 아나키스트·생디칼리스트 지면에 글을 쓰며 아나코생디칼리슴에 기울었다.

니체는 어떻게 다뤄지나?

「형이상학적 반항」의 한 장은 「니체와 허무주의」다. 카뮈에게 니체는 허무주의를 가장 정직하게 진단한 사람이다. 신이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인 뒤에도 니체는 체념하지 않고, 운명을 사랑하라는 「절대적 긍정」으로 허무주의를 넘으려 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카뮈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판도라 상자 대목을 따라 희망을 악으로 보는 니체의 독해를 이어받았다고 지적한다. 카뮈 자신도 자기 철학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 니체, 17세기 모럴리스트에서 찾았다.

그러나 카뮈는 니체의 긍정이 모든 것을 긍정하는 순간 살인까지 긍정할 수 있다는 위험도 보았다. 그는 니체를 나치의 선구자로 단정하지 않았고, 나치가 니체를 왜곡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한계를 모르는 긍정이 역사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물었다. 니체를 존경하면서도 그를 넘어서려 한 이 양가성이 이 책의 니체 읽기다.

사르트르와의 논쟁은 어떻게 벌어졌나?

책은 1951년 가을에 나왔다. 사르트르가 이끌던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는 1952년 5월호에 프랑시스 장송의 서평 「알베르 카뮈 또는 반항하는 영혼」을 실어, 이 책이 역사를 외면한 도덕주의이며 결국 반공 우파에 봉사한다고 비판했다. 카뮈는 같은 해 8월호에 「『현대』 편집장에게」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 장송이 아닌 사르트르를 상대로 답했고, 사르트르는 같은 호에 「알베르 카뮈에게 답함」을 실어 우정의 끝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이 논쟁이 냉전기 정치·지성의 큰 분열을 일으켜, 카뮈와 사르트르가 각각 반공 좌파와 친공 좌파의 대표 인물이 되었다고 평한다.

같은 해 초현실주의자들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로트레아몽과 랭보를 다룬 대목을 문제 삼아 카뮈를 공격했다. 프랑스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벵자맹 페레는 이 책과 쥘 모네로의 『공산주의의 사회학』 사이의 「놀라운 일치」를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쪽의 비판은 지금도 이어진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카뮈가 공산주의의 폭력만 따로 떼어 내 나치의 학살, 히로시마, 프랑스 식민주의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카뮈 자신이 1930년대 중반 알제리 공산당원이었다가 식민 문제를 둘러싼 인민전선 노선을 따르지 않아 쫓겨난 이력이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하다. 반대로 이 책은 소련식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본 반권위주의 좌파에게는 중요한 고전이 되었다. 사르트르는 1960년 카뮈가 교통사고로 죽자 그의 “완강한 휴머니즘”에 경의를 표하는 추도문을 썼다.

관련 인물

출처

  1. fr.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plato.stanford.edu
  5. plato.stanfo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