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투 조약 (핀란드–소비에트 러시아)
Treaty of Tartu (Finland–Soviet Russia)
1920년 10월 14일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핀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가 거의 다섯 달의 협상 끝에 맺은 강화 조약. 국경을 옛 핀란드 대공국과 러시아 제국의 경계로 확정하고, 페차모를 핀란드에 넘기는 대신 레폴라·포라얘르비와 북잉그리아를 러시아에 돌려주었다. 12월 31일 발효했으며, 같은 해 2월 같은 도시에서 맺어진 에스토니아–소비에트 러시아 조약과는 별개다.
상세
핀란드 내전이 터지자 두 나라의 외교 관계는 끊겼고, 소브나르콤은 적색 인민대표위원회를 핀란드 정부로 인정했다. 핀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핀란드는 1918년부터 두 나라가 전쟁 상태에 있었다고 보았다. 1920년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자 이웃 나라들은 관계 정상화에 나섰고, 에스토니아(2월, 타르투)·라트비아(6월, 리가)·리투아니아(7월, 모스크바)가 먼저 조약을 맺었다. 협상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과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핀란드 대표단은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가 이끌었고 유호 벤놀라, 알렉산데르 프레이, 루돌프 발덴, 배이뇌 탄네르, 배이뇌 보이온마, 배이뇌 키빌린나가 참여했다. 소비에트 대표단에는 얀 안토노비치 베르진, 플라톤 케르젠체프, 니콜라이 티흐메네프, 알렉산드르 사모일로, 예브게니 베렌스가 있었다. 조약은 타르투의 에스토니아 학생회 건물에서 서명되었다.
핀란드는 북극해의 얼지 않는 항구가 있는 페차모를 얻었다. 1864년 알렉산드르 2세가 카렐리야 지협의 땅과 맞바꾸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곳이다. 대신 비에나·아우누스 원정 때 합병해 점령했던 레폴라와 포라얘르비에서 물러나고, 북잉그리아를 넘겨 북잉그리아 공화국을 해체했다. 소비에트는 라도가 호수의 핀란드 항구에서 네바강을 거쳐 핀란드만으로 가는 상선의 자유 항행을, 핀란드는 페차모를 거쳐 노르웨이로 가는 육상 통과를 보장했다. 핀란드는 크론시타트 맞은편 이노 요새의 무장을 풀고 핀란드만 바깥 섬들을 비무장화했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가 10월 23일, 핀란드 의회가 12월 1일 조약을 승인했고 스톨베리 대통령이 12월 11일 비준했으며, 비준서는 12월 31일 모스크바에서 교환되었다. 의회의 민족주의 우파는 대핀란드의 이상을 버린 조약을 수치스럽다고 했고, 친족 활동가들은 「수치의 강화」라 불렀다. 1921~1922년 동카렐리야 봉기에 핀란드 의용병이 가담하면서 첫 논란이 일었고, 조약은 1939년 소련이 겨울전쟁을 일으켜 깨뜨렸으며 1940년 모스크바 강화 조약으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