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оенный коммунизм · 1918–1921

전시 공산주의

War Communism

러시아 내전기(1918–1921) 소비에트 정권이 시행한 경제·정치 체제. 전면적 산업 국유화, 곡물 강제 징발(프로드라즈베르스트카), 사적 무역 금지, 화폐 폐지 시도, 전 계층 노동 의무화, 계급 배급제를 골자로 했다. 적군과 도시를 부양하기 위한 비상조치로 시작되었으나, 볼셰비키 내부에서는 이를 시장을 폐지하고 직접 공산주의로 진입하는 길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농민 봉기와 생산 붕괴를 초래하여 1921년 3월 네프로 대체되었다.

상세

형성

전시 공산주의는 하나의 계획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내전의 압력 속에서 포고령이 쌓여 만들어진 체제였다. 1918년 5월 13일 식량 독재 포고가 곡물의 국가 독점을 선언했고, 6월 28일 포고로 대공업이 국유화되었으며, 같은 해 말까지 사적 상업이 금지되었다. 1919년 1월 11일 인민위원회의 포고는 지역별 할당 방식의 곡물 징발, 즉 프로드라즈베르스트카를 제도화했다. 1920년 11월에는 종업원 다섯 명 이상의 소규모 기업까지 국유화 대상이 되었다.

노동과 분배도 같은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노동 의무가 보편화되고 노동군이 편성되었으며, 배급은 육체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계급별로 차등화되었다. 화폐는 폐지되지 않았으나 초인플레이션으로 기능을 잃어, 임금의 상당 부분이 현물로 지급되고 기업 간 거래도 현물 배정으로 이루어졌다.

두 가지 해석

당 내부에서 이 체제의 성격에 대한 평가는 갈렸다. 한편에는 전쟁이 강요한 임시 조치라는 해석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시장과 화폐의 소멸 자체를 공산주의로의 직접 이행으로 보는 해석이 있었다. 부하린의 「과도기 경제학」(1920)이 후자를 이론적으로 정리했고, 이 시기의 여러 강령 문헌이 화폐 없는 분배를 가까운 전망으로 서술했다.

레닌은 1921년 이후 이 논쟁을 사후적으로 정리했다. 전시 공산주의는 전쟁과 궁핍이 강요한 것이며 사회주의 경제 정책의 모델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네프를 정당화하는 그의 논거였다.

결과

1920년 대공업 생산은 1913년 수준의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곡물 파종 면적과 수확량도 함께 줄었다. 도시 인구는 식량을 구하러 농촌으로 흩어져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의 인구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도시 식량 공급의 상당 부분은 금지된 암거래, 이른바 자루꾼들이 담당했으며 연구에 따라 그 비중은 절반 이상으로 추산된다.

농민의 저항은 1920년부터 대규모 봉기로 번졌다. 탐보프 봉기, 서시베리아 봉기, 우크라이나의 농민 부대들이 잇따랐고,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이 정권의 사회적 기반 자체를 흔들었다. 같은 달 제10차 당대회에서 프로드라즈베르스트카가 현물세로 대체되면서 전시 공산주의는 종결되었다. 1921년에서 1922년에 걸친 볼가와 우랄의 대기근은 이 체제가 남긴 농업 붕괴 위에서 발생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full definition, policies, periodization, the relationship to NEP, and the debate over whether it was emergency response or ideological leap
  2.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confirming native terminology, key elements (национализация, продразвёрстка, трудовая повинность), and the March 1921 transition decision at the X Party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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