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hington Consensus / Consenso de Washington · 1989 (용어는 1989년 존 윌리엄슨이 처음 썼다. 넓은 뜻의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0년 무렵 시작되어 1990년대에 가장 강했고, 2000년 무렵 영향력을 잃었다는 견해와 2008년 금융위기까지 이어졌다는 견해가 갈린다.)

워싱턴 컨센서스

Washington Consensus

1980~1990년대 외채위기에 빠진 개발도상국에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미국 재무부가 「표준」 개혁 묶음으로 권한 열 가지 경제정책 처방. 1989년 영국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이름을 붙였다.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재정·통화 정책과 함께 무역 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같은 시장 지향 정책을 담았다. 윌리엄슨의 반대에도 이 말은 곧 시장 근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일반을 가리키는 넓은 뜻으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상세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워싱턴의 국제경제연구소(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만든 말이다.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으로 시작된 외채위기 뒤로, 외채 문제 해법을 말하는 글에는 언제나 채무국이 「집안을 정리하고」 「정책을 개혁하고」 「강한 조건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문이 붙었다. 윌리엄슨은 그 말이 워싱턴에서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정리해, 라틴아메리카 각국이 그 개혁을 얼마나 했는지 재는 연구의 기준선으로 삼으려 했다. 이 글은 1990년 4월 『라틴아메리카의 조정: 얼마나 이루어졌나?』의 한 장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서 「워싱턴」은 두 겹이다. 하나는 의회와 행정부 고위직의 정치적 워싱턴이고, 다른 하나는 IMF·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 미국 정부의 경제 기관, 연방준비제도, 싱크탱크로 이루어진 기술관료의 워싱턴이다. 윌리엄슨은 워싱턴이 남에게 권하는 것을 늘 스스로 실천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슨이 꼽은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재정 규율: 국내총생산에 견주어 큰 재정 적자를 피한다. ② 공공 지출 재배분: 무차별적 보조금에서 초등 교육·기초 보건·기반 시설처럼 성장과 빈곤층에 도움이 되는 지출로 돌린다. ③ 조세 개혁: 과세 기반을 넓히고 한계 세율은 적당히 둔다. ④ 금리: 시장이 정하고 실질로 양(+)이되 지나치지 않게 한다. ⑤ 경쟁력 있는 환율. ⑥ 무역 자유화: 수입 허가 같은 수량 제한을 없애고 보호는 낮고 고른 관세로만 한다. ⑦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화. ⑧ 국영기업 민영화. ⑨ 규제 완화: 시장 진입과 경쟁을 막는 규제를 없애되 안전·환경·소비자 보호와 금융 건전성 감독은 남긴다. ⑩ 재산권의 법적 보장.

이 목록을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1970년대 석유 가격 폭등, 불어난 외채, 미국과 국제 금리의 상승이 겹치며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새 외국 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수입대체 공업화를 해 온 경제는 수출을 빨리 늘릴 수 없었다. 빚을 더 낼 수도 수출로 벌 수도 없는 나라들에게 남은 길은 재정 긴축으로 국내 수요를 줄이고, 보호를 낮추어 수출 쪽으로 경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여러 나라가 이 묶음의 일부를 시행했고, 그 시행은 IMF·세계은행 대출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1989년 시작된 브레이디 플랜에서도 채무국이 빚을 줄이려면 사실상 워싱턴 컨센서스의 지침을 따라야 했다. 구조조정 대출의 조건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는 구조조정 항목이 다룬다.

처방의 출처를 두고도 논쟁이 있다. 이름은 워싱턴 기구들의 역할에 눈길을 끌지만, 여러 논자는 라틴아메리카 정책 결정자들이 자기 나라 사정을 스스로 분석해 비슷한 개혁에 이르렀다고 강조한다. 2011년 한 연구는 열 가지가 대체로 라틴아메리카 정치인과 기술관료의 산물이고 윌리엄슨은 그것을 처음 한곳에 모았을 뿐이라고 보았다. 윌리엄슨 자신도 「워싱턴」이라는 말이 정책이 워싱턴에서 나와 바깥에서 강요된 것처럼 들리게 했다며 이 이름을 후회했다. 반면 그는 1990년 글에서, 1980년대 워싱턴이 라틴아메리카의 긴축을 지지한 데에는 미국이 외채 원리금을 계속 받으려는 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었다.

이 말은 곧 두 가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좁은 뜻은 윌리엄슨의 열 가지이고, 넓은 뜻은 1970년대 케인스주의가 밀려난 뒤의 자유시장 정책 전반, 곧 시장 근본주의나 신자유주의를 가리킨다. 윌리엄슨은 넓은 뜻에 반대했다. 그는 자본 계정 자유화를 일부러 뺐고, 통화주의·공급 측 경제학·최소 국가(복지와 소득 재분배에서 국가가 물러나는 것)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이지 자신이 말한 컨센서스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1990년 글에서도 외국 금융 흐름의 자유화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고 적었다. 그래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와 바꿔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쓰임에서는 둘이 자주 겹친다.

성과의 평가는 갈린다. 2020년 한 연구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관련된 정책이 5~10년에 걸쳐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을 크게 높였다고 보았다. 2021년 연구들은 브라질·칠레·멕시코에서 거시경제 안정은 크게 나아졌으나 성장은 고르지 않고 대체로 실망스러웠다고 보았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1980~1990년대 1인당 성장이 처음에 떨어졌다가 2000년 이후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보았다. 윌리엄슨도 여러 나라의 성장·고용·빈곤 감소 성과를 「아무리 좋게 말해도 실망스럽다」고 요약하고, 위기를 막는 장치의 부재, 불완전한 개혁, 소득 분배 개선에 대한 관심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비판은 여러 방향에서 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대니 로드릭은 IMF와 미국 재무부의 「근본주의적」 정책이 모든 경제에 같은 처방을 내린다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그 처방은 「안정화하고, 자유화하고, 민영화하라」를 한꺼번에 빠르게 투여하며 순서나 부작용을 살피지 않는다. 그는 한국과 대만처럼 정부가 산업 정책과 저축 증대에 큰 역할을 한 동아시아의 경우를 대비시켰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잃어버린 10년」과 연결되어 논의되었고, 사회적 배제와 노동조합의 약화, 중간층의 축소를 낳아 1990년대 말 좌파와 민중주의 지도자로의 선회를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의 쪽에서는 더 근본적인 비판이 나왔다. 조반니 아리기는 1982년 멕시코의 채무불이행이 알린 자본 부족이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가 주창한 「개발 사상과 실천의 반혁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컨센서스의 기구들이 저소득·중소득 국가의 재정 곤경을 이용해 「구조조정」을 떠안겼고, 그것이 이 나라들의 세계 부의 위계 속 위치를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한 채 자본 흐름을 미국의 부와 권력의 부활 쪽으로 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뒤 각국 정부가 케인스주의 정책으로 돌아서자, 여러 언론인·정치인·세계은행 고위 관리가 워싱턴 컨센서스가 죽었다고 말했다.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은 2009년 런던 G20 정상회의 뒤 「낡은 워싱턴 컨센서스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윌리엄슨은 2009년 그 말에 대해, 자신의 열 가지를 뜻한다면 틀렸고 스티글리츠 등이 덧씌운 신자유주의 강령이라는 해석을 뜻한다면 맞다고 답했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가 「서울 개발 컨센서스」를 내놓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것이 오래전에 죽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관에 못을 하나 더 박을 뿐이라고 논평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piie.com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5. es.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