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로동당
Workers' Party of North Korea
1946년 8월 28~30일 창립대회에서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해 만든 38선 이북의 공산당. 조선신민당 출신 김두봉이 위원장, 김일성과 주영하가 부위원장이었으며,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주도했다. 1949년 6월 남조선로동당과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상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1946년 서울의 중앙에서 떨어져 나와 북조선공산당이 되었고, 7월 22일 소련 당국이 만든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이끌었다.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은 7월 말 합당을 결정했고, 8월 28~30일 창립대회에서 북조선로동당을 세웠다. 영어 출처는 창당 당시 당원을 약 36만 6천 명, 세포를 약 1만 2천 개로 추정하지만, 영어 「조선신민당」 문서는 북조선공산당 13만 4천 명과 신민당 3만 5천 명을 합쳐 17만 명이 넘었다고 적는다. 신민당은 지식인층, 공산당은 노동자·농민층이 주된 기반이었고, 김일성은 창립대회에서 당이 근로 대중의 전위이며 순결성과 규율을 지켜야 한다고 연설했다.
당 안에는 조선공산당에서 물려받은 네 파벌이 있었다. 허가이가 이끈 소련파, 일제 시기 국내에서 활동한 오기섭·주영하·김용범 등의 국내파, 김무정에 이어 김두봉과 최창익이 이끈 연안파, 그리고 김일성의 빨치산파였다. 빨치산파는 130~140명으로 처음에는 가장 약했으나 정부를 이끌던 김일성과 소련의 후원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첫 정치위원회는 연안파 6명, 소련파 3명, 국내파 2명, 빨치산파 2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은 북조선인민회의 의석의 36%를 차지했고 김두봉이 의장, 김일성이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47년 리·동 인민위원회 선거에서는 7만 454석 가운데 57.7%를 당원이 차지했다. 1947년 초 국내파를 겨냥한 숙청으로 4만~6만 명이 제명되었다. 1948년 3월 27~30일 제2차 대회에서 당은 당원 72만 5,762명, 세포 2만 9,762개를 내세웠고, 김일성은 오기섭 등 국내파를 비판했다. 기관지로 로동신문과 근로자를 냈다.
1948년 9월 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12명 가운데 102명이 당원이었고,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부위원장 김일성을 수상으로 세웠다. 1949년 6월 24일 당은 남조선로동당과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한국어 「조선로동당」 문서는 6월 24일 남로당을 흡수하고 6월 30일 이름을 바꾸었다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