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 (1938년 초판)

PeopleJoseph Stalin, Vyacheslav Molotov, Andrei Zhdanov, Emelyan Yaroslavsky, Pyotr Pospelov, Vladimir Lenin, Karl Marx, Friedrich Engels TermsShort Course of the History of the All-Union Communist Party (Bolsheviks), Dialectical Materialism, Historical Materialism

결론

볼셰비키당이 걸어온 역사적 경로의 기본적 결과는 무엇인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1) 당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승리,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승리는 기회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타협주의자와 투항주의자에게 타협하지 않으며, 부르주아지와 그 국가권력에 대해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당의 역사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그러한 당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혁명적 지도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며, 혁명적 지도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사업을 실패로 돌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당의 역사는 그러한 당이 서유럽 유형의 평범한 사회민주당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시민적 평화의 조건에서 길러져 기회주의자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사회 개혁”을 꿈꾸고 사회 혁명을 두려워하는 당은 그러한 당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의 역사는 그러한 당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새로운 유형의 당, 즉 마르크스-레닌주의 당, 사회 혁명의 당뿐이며, 이 당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와의 결전에 대비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승리를 조직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소련에서 그러한 당은 볼셰비키당이다.

“혁명 전 시기에는, 스탈린 동지가 말하기를, 다소간 평화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이 노동운동에서 지배적인 세력이었고 의회 투쟁 형태가 기본 형태로 간주되던 때에는, 이러한 조건에서 당은 이후 공개적인 혁명적 결전의 조건에서 얻게 된 것과 같은 중대하고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지 못했으며 지닐 수도 없었다. 카우츠키는 제2인터내셔널을 공격으로부터 변호하면서,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도구이며, 바로 그 때문에 전쟁 중에,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나선 시기에 아무런 중대한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제2인터내셔널의 당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에 쓸모가 없으며, 노동자들을 권력으로 이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적 당이 아니라 의회 선거와 의회 투쟁에 맞추어진 선거 기구임을 뜻한다.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기본 정치 조직이 당이 아니라 의회 의원단이었던 사실도 바로 이것으로 설명된다. 이 시기에 당이 실제로는 의회 의원단의 부속물이자 시중드는 요소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한 조건에서, 그러한 당을 앞세우고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에 대비시키는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는 점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면서 사정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새로운 시기는 계급들이 공공연히 충돌하는 시기,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시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역량을 직접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모든 당 사업을 새로운 혁명적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 노동자들을 권력 쟁취를 위한 혁명적 투쟁 정신으로 교육하는 것, 예비대를 준비하고 끌어당기는 것, 이웃 나라 프롤레타리아들과 동맹하는 것, 식민지와 종속국의 해방운동과 견고한 연계를 맺는 것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과제를 의회주의의 평화로운 조건에서 길러진 낡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 없는 절망과 불가피한 패배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일이다. 이러한 과제를 짊어지고서 낡은 당들을 지도부로 두고 있는 것은 완전히 무장 해제된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런 상태와 타협할 수 없었다는 것은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새로운 당, 즉 전투적인 당, 혁명적인 당이 필요하게 된다. 이 당은 프롤레타리아들을 이끌고 권력 쟁취 투쟁에 나설 만큼 충분히 대담하고, 혁명적 정세의 복잡한 조건을 분별할 만큼 충분히 경험이 있으며, 목적에 이르는 길의 온갖 암초를 피해 갈 만큼 충분히 유연해야 한다.

그러한 당이 없이는 제국주의 타도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쟁취도 생각할 수 없다.

“이 새로운 당은 레닌주의의 당이다”(스탈린, 『레닌주의의 제문제』, 62~63쪽).

2) 당의 역사는 또한 노동계급의 당이 노동운동의 선진 이론, 곧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하지 못하면 자기 계급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직자이자 지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힘은 그 이론이 당으로 하여금 정세를 파악하고, 주위 사건들의 내적 연관을 이해하고, 사건의 진행을 예견하게 하며, 사건이 현재 어떻게 어디로 발전하고 있는가뿐만 아니라 장차 어떻게 어디로 발전해야 하는가까지 알아낼 수 있게 해 준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한 당만이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노동계급을 앞으로 이끌 수 있다.

반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하지 못한 당은 더듬거리며 헤맬 수밖에 없고, 자기 행동에 대한 확신을 잃으며, 노동계급을 앞으로 이끌 능력이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저작에 있는 개별적 결론과 명제를 성실히 암기하고, 때에 맞게 인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만족해도 된다는 말처럼 보일 수 있다. 암기한 결론과 명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생활의 모든 경우에 쓸모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교리의 집합이나 교리문답, 신앙의 상징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마르크스주의자 자신을 자구에 매달리는 사람이나 글귀나 외우는 사람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은 사회 발전에 관한 학문이며, 노동운동에 관한 학문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학문이며,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관한 학문이다. 이 이론은 학문으로서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발전하고 완성되어 간다. 따라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 이론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지식으로 풍부해지지 않을 수 없고, 개별적 명제와 결론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지 않을 수 없으며,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조응하는 새로운 결론과 명제로 대체되지 않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결코 그 모든 공식과 결론을 암기하고 그 공식과 결론의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하려면 우선 그 자구와 본질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이 이론의 본질을 습득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여러 조건에서 혁명운동의 실천적 문제를 해결할 때 이 이론을 활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이 이론을 혁명운동의 새로운 경험으로 풍부하게 할 줄 알고, 새로운 명제와 결론으로 풍부하게 할 줄 알며, 이 이론을 발전시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이론의 본질에서 출발하여, 이미 낡아 버린 일부 명제와 결론을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조응하는 새로운 명제와 결론으로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은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제2차 러시아 혁명(1917년 2월) 이전까지 모든 나라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사회의 정치적 조직 형태로서 의회제 민주공화국이 가장 적합한 형태라는 데서 출발했다. 물론 마르크스는 1870년대에 의회제 공화국이 아니라 파리 코뮌 유형의 정치적 조직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르크스의 이 지적은 그의 저작에서 더 발전되지 못한 채 잊히고 말았다. 게다가 1891년 엥겔스가 에르푸르트 강령 초안을 비판하면서 “민주공화국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특수한 형태다”라고 한 권위 있는 발언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민주공화국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정치적 형태로 계속 간주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엥겔스의 이 명제는 그 뒤 레닌을 포함한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지도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1905년 러시아 혁명, 특히 1917년 2월 혁명은 사회의 정치적 조직의 새로운 형태, 즉 노동자·농민 대표 소비에트를 내놓았다. 레닌은 러시아에서 일어난 두 혁명의 경험을 연구한 데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입각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가장 좋은 정치적 형태는 의회제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레닌은 1917년 4월, 부르주아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가장 좋은 정치적 형태로서 소비에트 공화국을 조직하자는 구호를 내놓았다.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의회제 공화국에 매달리기 시작했으며,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체득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물론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레닌이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새로운 경험으로 풍부하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했지만, 기회주의자들은 그 이론을 뒤로 끌어당기고 그 명제 가운데 하나를 교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자구(字句) 앞에서 주춤하여, 엥겔스가 정식화한 마르크스주의의 낡은 명제 가운데 하나를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조응하는 소비에트 공화국에 관한 새로운 명제로 바꾸기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당은, 우리 혁명은,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당은 어둠 속을 헤맸을 것이고, 소비에트는 조직이 흐트러졌을 것이며, 우리는 소비에트 권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했을 것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들이 승리했을 것이다.

제국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를 연구하면서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따로 떨어진 한 나라에서는 승리할 수 없으며, 모든 문명국 또는 대다수 문명국에서 동시에 타격을 가할 때에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었다. 이 결론은 그 후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지도적 명제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제국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로 성장했고, 상승하는 자본주의는 사멸하는 자본주의로 변했다. 레닌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를 연구한 데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입각해서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낡은 공식은 이미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조응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혁명은 따로 떨어진 한 나라에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은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낡은 공식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이탈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체득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는 물론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레닌이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 새로운 경험으로 그것을 풍부하게 했고, 기회주의자들은 그것을 뒤로 끌어당겨 미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문구 앞에서 물러서서, 마르크스주의의 낡은 결론 가운데 하나를 버리고 그 대신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조응하는 새로운 결론, 곧 따로 떨어진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을 이론적 용기가 없었다면, 당은, 우리 혁명은, 마르크스주의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당은 어둠 속을 헤맸을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지도를 잃었을 것이며,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쇠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패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들이 승리했을 것이다.

기회주의가 언제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그 개별적 명제와 결론을 직접 부정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회주의는 때로는 이미 낡아버린 마르크스주의의 개별적 명제에 매달려 그것을 교조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마르크스주의의 더 나아간 발전을 저지하려는 시도,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운동의 발전도 저지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엥겔스가 죽은 뒤에는 가장 위대한 이론가 레닌이, 레닌 이후에는 스탈린과 레닌의 다른 제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으로 그것을 풍부하게 한 유일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과장 없이 말할 수 있다.

바로 레닌과 레닌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기 때문에,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더 나아간 발전이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이며,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이며, 지구의 6분의 1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이다.

볼셰비키당은 그 선진 간부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체득하지 못했더라면, 이 이론을 행동의 지침으로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새로운 경험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풍부하게 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1917년 10월에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노동운동의 지도를 떠맡은 미국의 독일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독일인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미국 대중을 움직일 지렛대로 만들 줄 몰랐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 이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교조적이고 독단적으로 대한다. 이론은 외워 두기만 하면 그것으로 인생의 모든 경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교리이지 행동의 지침이 아니다.”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 제27권, 606쪽)

1917년 4월, 혁명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라는 낡은 공식에 매달린 카메네프와 일부 옛 볼셰비키를 비판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학설은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늘 이렇게 말했으며, ‘공식’을 외우고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을 당연히 비웃었다. 그런 공식은 기껏해야 일반적 과제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고, 이 과제는 역사 과정의 각 특수한 시기의 구체적인 경제적·정치적 정세에 따라 반드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살아 있는 현실과 현실의 정확한 사실을 고려해야 하며, 어제의 이론에 계속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이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레닌, 제20권, 100 — 101쪽).

3) 당의 역사는 또한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친다. 노동계급의 대열에서 활동하면서 노동계급의 후진적 층을 부르주아지의 품으로 밀어 넣고, 그리하여 노동계급의 통일을 깨뜨리는 소부르주아 정당들을 격파하지 않고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당의 역사는 소부르주아 정당들, 즉 사회혁명당원, 멘셰비키, 아나키스트, 민족주의자들과 투쟁하고 그들을 격파한 역사다. 이런 정당들을 극복하고 노동계급의 대열에서 몰아내지 않고서는 노동계급의 통일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며, 노동계급의 통일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를 실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보존을, 나중에 10월 혁명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복원을 내세웠던 이 정당들을 격파하지 않고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유지하고, 외국의 군사 간섭을 물리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민을 속이려고 스스로를 ‘혁명적’ 정당, ‘사회주의적’ 정당이라고 불러 온 모든 소부르주아 정당 — 사회혁명당원, 멘셰비키, 아나키스트, 민족주의자 — 이 이미 10월 사회주의 혁명 직전에 반혁명 정당이 되었고, 그 뒤에는 외국 부르주아 정보기관의 앞잡이, 곧 간첩·파괴분자·파괴 공작원·살인자·조국 반역자의 무리로 변해 버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 혁명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은 마르크스주의의 극히 혁명적인 정당에 의해서만, 다른 모든 정당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레닌은 말한다 (레닌, 제26권, 50쪽).

4) 당의 역사는 또한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친다. 자기 대열 안의 기회주의자들과 타협 없이 투쟁하지 않고서는, 자기 내부의 투항주의자들을 격파하지 않고서는 노동계급의 당이 대열의 통일과 규율을 유지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직자이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며,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당 내부 생활 발전의 역사는 당 안의 기회주의 집단 — ‘경제주의자’, 멘셰비키, 트로츠키주의자, 부하린파, 민족 편향주의자 — 과 투쟁하고 그들을 격파한 역사다.

당의 역사는 이 모든 투항주의 집단이 사실상 우리 당 안의 멘셰비즘의 앞잡이이자 그 추종자, 그 연장이었음을 가르친다. 이들은 멘셰비즘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과 당 안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당 안에서 이 집단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은 멘셰비즘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의 연장이었다.

‘경제주의자’와 멘셰비키를 격파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당을 건설하고 노동계급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다.

트로츠키주의자와 부하린파를 격파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조건을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온갖 색깔의 민족주의적 편향자들을 격파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인민을 국제주의 정신으로 교육할 수 없었을 것이며, 소련 인민의 위대한 우호의 기치를 지켜낼 수 없었을 것이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볼셰비키가 당 안의 기회주의적 요소들과 싸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으며 그 의의를 과대평가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옳지 않다. 건강한 유기체 안의 궤양을 참을 수 없듯이, 자기 대열 안의 기회주의를 참을 수는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지도 부대이며, 그 선봉 요새이며, 그 전투 사령부이다. 노동계급의 지도 사령부에 회의주의자, 기회주의자, 항복주의자, 배신자가 앉아 있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자기 사령부, 자기 요새 안에 항복주의자와 배신자를 둔 채 부르주아지와 사활을 건 투쟁을 한다면, 전선과 후방 양쪽에서 포격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투쟁이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요새는 안에서부터 가장 쉽게 함락된다. 승리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먼저 노동계급의 당, 그 지도 사령부, 그 선봉 요새에서 항복주의자, 탈주병, 파업 파괴자, 배신자를 몰아내야 한다.

트로츠키주의자, 부하린파, 민족주의적 편향자들이 레닌과 싸우고 당과 싸우다가 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이 끝난 것과 똑같은 종말을 맞은 것—파시스트 정보기관의 앞잡이가 되고, 간첩, 파괴분자, 살인자, 파괴공작원, 조국의 반역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혁주의자, 멘셰비키를 자기 대열에 둔 채로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그것을 지켜낼 수도 없다고 레닌은 말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명백하다. 이것은 러시아와 헝가리의 경험이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러시아에서는 멘셰비키, 개혁주의자,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우리 당 안에 남아 있었다면 소비에트 체제가 틀림없이 전복되었을 어려운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레닌, 제25권, 462 — 463쪽). “우리 당이 자기 안에 내부 통일과 전례 없는 대열의 단결을 이룩할 수 있었다면, 스탈린 동지는 말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이 제때 기회주의의 오물을 씻어낼 수 있었고, 청산파와 멘셰비키를 당에서 쫓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당들이 발전하고 강화되는 길은 기회주의자와 개혁주의자, 사회제국주의자와 사회쇼비니스트, 사회애국주의자와 사회평화주의자를 몰아내는 것을 거쳐 간다. 당은 기회주의적 요소들을 자기에게서 몰아냄으로써 강화된다” (스탈린, 『레닌주의의 제문제』, 72쪽).

5) 당의 역사는 또한, 당이 성공에 취해 우쭐대기 시작하면, 자기 일의 결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면, 자기 오류를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그것을 제때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바로잡기를 두려워하면, 노동계급의 지도자라는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당은 비판과 자기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자기 일의 오류와 결함을 덮어 감추지 않으면, 당 사업의 오류를 통해 간부를 가르치고 키우면, 자기 오류를 제때 바로잡을 줄 알면 무적이다.

당은 자기 오류를 숨기고, 곪은 문제들을 얼버무리고, 자기 결함을 태평무사하다는 거짓 행진으로 덮고, 비판과 자기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젖고, 자기도취에 빠져 월계관 위에서 쉬기 시작하면 멸망한다.

“정당이 자기 오류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레닌이 말하듯이, 그 정당이 얼마나 진지한지, 그리고 자기 계급과 근로 대중에 대한 의무를 실제로 이행하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그 원인을 밝히고, 그 오류를 낳은 정세를 분석하고, 오류를 바로잡을 수단을 주의 깊게 토의하는 것 — 이것이 진지한 정당의 표지이며, 이것이 정당이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계급을, 나아가 대중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다”(레닌, 제25권, 200쪽).

그리고 이어서:

“지금까지 몰락한 모든 혁명 정당은 자만에 빠져 자기 힘이 어디에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자기 약점을 말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몰락했다. 그러나 우리는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약점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약점을 극복하는 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레닌, 제27권, 260~261쪽).

6) 끝으로, 당의 역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대중과 폭넓게 연계하지 않고, 이 연계를 끊임없이 강화하지 않고,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중의 절박한 요구를 이해할 줄 모르고, 대중을 가르칠 뿐 아니라 대중에게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노동계급의 당은 노동계급과 모든 근로 대중 수백만을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대중적 정당이 될 수 없다.

당은, 레닌이 말하듯이, “가장 폭넓은 근로 대중, 우선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그리고 비(非)프롤레타리아 근로 대중과도 연계하고, 접근하고, 원한다면 어느 정도 융합할” 줄 알면 무적이다(레닌, 제25권, 174쪽).

당은 좁은 당 조직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고,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오고, 관료주의의 녹이 슬면 멸망한다.

“볼셰비키가 민중의 폭넓은 대중과 연계를 유지하는 한, 그들은 무적일 것이라고 하나의 규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스탈린 동지는 말한다. 반대로 볼셰비키가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들과의 연계를 잃고 관료주의의 녹이 슬기만 하면, 그들은 모든 힘을 잃고 빈 껍데기로 변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 체계에는 안타이오스라는 유명한 영웅이 하나 있었다. 신화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를 낳고 젖 먹여 기르고 키워 준 어머니에게 각별한 애착을 품고 있었다. 이 안타이오스가 이기지 못한 영웅은 없었다. 그는 무적의 영웅으로 여겨졌다. 그의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적과 싸우다 힘겨워질 때마다 땅에, 자기를 낳고 길러 준 어머니에게 몸을 대고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땅에서 떨어질 위험이 그것이었다. 적들은 그의 이 약점을 헤아리고 그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내 이 약점을 이용해 그를 이긴 적이 나타났다. 그가 헤라클레스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그를 이겼는가? 그를 땅에서 떼어 공중으로 들어 올려 땅에 닿을 수 없게 만들고, 그렇게 공중에서 목 졸라 죽였다. 나는 볼셰비키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안타이오스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안타이오스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낳고 기르고 키워 준 어머니, 곧 대중과 연계를 유지하기에 강하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 곧 민중과 연계를 유지하는 한, 그들은 무적으로 남을 모든 가능성을 지닌다. 볼셰비키 지도가 무적인 비결이 여기에 있다”(스탈린, 「당 사업의 결함에 대하여」).

이상이 볼셰비키당이 걸어온 역사적 길의 기본 교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