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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지휘 · 러시아 백색운동 인물 17명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알렉세예프

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Алексеев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인 1857–1918 ○ 심부전

동부전선을 지휘하고 백군 의용군의 기초를 놓은 차르의 마지막 참모총장

1917년 3월 2일, 알렉세예프는 전 전선 사령관들의 퇴위 권고 전보를 한데 모아 차르에게 전송하며 '폐하께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옵니다… 왕위에서 물러나소서'라고 썼다.

러시아 제국군의 참모 장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1915년부터 1917년까지 최고사령부(스타프카) 참모총장을 맡아 동부전선 전체 작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다. 갈리치아 공세를 입안하고 1915년 대후퇴를 조직적으로 이끌어 러시아군을 붕괴에서 구한 전략가였으며, 2월 혁명 당시 전선 사령관들의 퇴위 요구 전보를 니콜라이 2세에게 전달해 퇴위를 이끌어냈다. 혁명 후 남러시아에서 의용군의 모체인 '알렉세예프 조직'을 창설해 백군 운동의 군사적·정치적 기반을 놓았으나,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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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6–189064 카잔 연대 장교, 러시아-튀르크 전쟁 참전, 니콜라이 참모아카데미 수석 졸업
  • 1890–1904참모본부 근무, 니콜라이 아카데미 교수
  • 1904–1905제3 만주군 병참총감 (러일전쟁)
  • 1908–1912키예프 군관구 참모장
  • 1912–1914제13 군단장
  • 1914–1915남서전선 참모장 (갈리치아 공세 입안)
  • 1915북서전선 총사령관, 대후퇴 조직적 지휘
  • 1915–1917최고사령부(스타프카) 참모총장 — 전 러시아군 실질적 총지휘
  • 1917 3–5월임시정부 최고사령관
  • 1917–1918의용군(알렉세예프 조직) 창설자·최고지도자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유데니치

Николай Николаевич Юденич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러시아 1862–1933 ○ 폐결핵

캅카스 전선을 승리로 이끌고 백군 페트로그라드 공세를 지휘한 제국 러시아의 마지막 명장

러시아 백위대에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 — 볼셰비키를 러시아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유일한 강령은 볼셰비키 타도뿐이다!

니콜라이 유데니치는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육군에서 가장 꾸준한 승리를 거둔 지휘관으로, 캅카스 전선에서 사르카미시·에르주룸·트레비존드 전투를 지휘하며 오스만 제3군을 궤멸시켰다. 2월 혁명 후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의해 해임되었고, 내전기에는 북서군을 이끌고 1919년 가을 페트로그라드 외곽 풀코보 고지까지 진격했으나 적군의 반격으로 에스토니아로 패주했다. 러시아 제국 최후의 성 게오르기 2급 훈장 수훈자로, 망명 후에는 백계 정치에서 물러나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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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1–87알렉산드롭스크 군사학교 졸업, 니콜라옙스크 참모본부 아카데미 수료
  • 1904–05제18소총연대장으로 러일전쟁 참전, 산데푸·무크덴 전투에서 부상
  • 1913–15캅카스 군관구 참모장 → 캅카스군 참모장 → 보병대장 진급 및 캅카스군 사령관
  • 1916에르주룸·트레비존드·에르진잔 점령, 러시아 제국 최후의 성 게오르기 2급 훈장 수훈
  • 1917.5캅카스 전선 총사령관에서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의해 '불복종'으로 해임
  • 1919.6–10북서군 총사령관으로 페트로그라드 공세, 풀코보 고지까지 진격 후 패퇴
  • 1920.1북서군 해산 명령, 에스토니아에서 체포 후 석방, 프랑스로 망명

블라디미르 제노노비치 마이-마옙스키

Владимир Зенонович Май-Маевский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러시아 1867–1920 ✕ 자살

의용군을 이끌고 모스크바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나, 무리한 전선과 알코올 의존으로 무너진 백군 장군

1919년 여름, 영국 사절단은 '하리코프 장군'에게 수여하라는 훈장을 들고 의용군 사령부에 도착했다. 하리코프는 도시의 이름일 뿐이었고, 세인트마이클·세인트조지 훈장은 하리코프 주둔 사령관인 마이-마옙스키에게 주어졌다.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제정 러시아 중장으로, 1918년 의용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뒤 빠르게 사단장으로 올랐고 1919년 5월 의용군 사령관이 되었다. 모스크바 공세에서 하리코프·쿠르스크·오룔을 연이어 점령하며 백군 중 가장 깊숙이 볼셰비키 수도 방면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늘어진 전선과 돈군과의 협조 실패, 후방의 마흐노 봉기로 공세는 붕괴했고, 악화된 알코올 의존 탓에 1919년 11월 데니킨브란겔로 교체했다. 1920년 11월 크림 철수 중 세바스토폴에서 사망했으며, 권총 자살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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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5–96제1사관학교·니콜라옙스크 공병학교 졸업, 참모본부 아카데미 수료
  • 1904–05러일전쟁 참전, 대령 진급
  • 1914–17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1근위군단 지휘, 중장 진급
  • 1918의용군 사병 입대, 드로즈돕스키 사후 제3소총사단장 취임
  • 1919.5의용군 사령관 임명, 하리코프 점령 후 지역 총사령관 겸임
  • 1919.6–10모스크바 공세 주도, 쿠르스크·오룔 점령
  • 1919.11공세 붕괴로 해임, 브란겔이 승계
  • 1920크림에서 후위부대 지휘, 세바스토폴 철수 중 사망

예브게니 카를로비치 밀레르

Евгений Карлович Миллер

북부 백군을 지휘하고 파리에서 NKVD에 납치된 발트 독일계 제정 러시아 장군

나는 그들에게 분노도 복수심도 없으며, 그저 무엇에든 선동될 수 있는 불쌍한 회색 무리일 뿐이다.

발트 독일계 귀족 가문 출신의 제정 러시아 장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단장까지 올랐다. 내전기에는 아르한겔스크 북부정부의 수반 겸 북부 백군 총사령관으로서 영국·미국 간섭군의 지원을 받으며 볼셰비키에 맞섰으나, 연합군 철수 후 홀로 싸우다 1920년 2월 노르웨이로 탈출했다. 망명 후 러시아 전군연합(ROVS) 의장으로 반소 활동을 이끌었으며, 1937년 파리에서 NKVD 요원 니콜라이 스코블린의 함정에 빠져 납치되어 모스크바로 끌려갔다. 1939년 5월 NKVD 내부 교도소에서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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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8브뤼셀·헤이그 주재 무관
  • 1901이탈리아 주재 무관
  • 1914–1916제5군·제12군 참모장 (제1차 세계대전)
  • 1917제26군단장, 루마니아 전선
  • 1919–1920북부정부 수반 겸 북부군 총사령관
  • 1920–1930프랑스 망명, 브란겔 장군 휘하 참모장
  • 1930–1937러시아 전군연합(ROVS) 의장
  • 1937파리에서 NKVD에 납치

라브르 게오르기예비치 코르닐로프

Лавр Георгиевич Корнилов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1870–1918 ✕ 전사

「강한 손」을 자처한 장군

1914년 11월 야간 전투에서 코르닐로프가 직접 이끈 기습으로 오스트리아군 포로 1,200명과 함께 사로잡힌 라프트 장군: 「코르닐로프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힘이오.」

카자크 병사의 아들로 태어나 총사령관까지 오른 입지전의 군인. 1917년 8월 소비에트를 부수러 수도로 군단을 보냈으나, 철도 노동자와 선동가들 앞에서 군대는 도착하기도 전에 녹았다. 내전 초기 백군 의용군을 이끌다 1918년 예카테리노다르 공격 중 포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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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16사단장, 오스트리아 포로가 되었다 탈출해 전국적 명성
  • 1917.3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황후의 연금을 집행
  • 1917.7총사령관 임명
  • 1917.8수도로 군단 이동, 실패, 비호프 수도원 연금
  • 1917.11–1918.4탈출, 백군 의용군 창설, 예카테리노다르에서 전사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한진

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Ханжин
군사·지휘 러시아 백색운동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71–1961 ○ 수용소 10년, 사후 복권

콜차크군의 볼가 진격을 이끌고 프룬제에게 무너진 포병 장군

1915년 7월 7일, 후퇴하던 12보병사단의 전열에 균열이 생기자 한진은 직접 예비 대대를 이끌고 틈새로 달려가 후퇴하는 부대를 멈춰 세웠다.

오렌부르크 카자크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포병 장교로, 루소-일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포병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내전기에는 시베리아 백군의 우랄 군단을 창설하고 콜차크 휘하 서부군 사령관으로 1919년 3월 전략적 돌파를 이끌어 볼가 강 30km 앞까지 진격했으나, 과신장된 전선이 프룬제의 남부군집단 반격에 노출되어 부굴마·부구루슬란에서 결정적 패배를 겪었다. 실각 후 콜차크 정부의 마지막 군무장관을 지냈고, 중국 망명을 거쳐 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으며 사후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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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0–1893오렌부르크 사관학교 → 미하일롭스코예 포병학교 졸업, 코룬지 임관
  • 1899미하일롭스카야 포병 아카데미 수석 졸업
  • 1904–1905러일전쟁: 제3 동시베리아 포병여단 제4포대장, 4급 성 게오르기 훈장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 제19포병여단장 → 제12보병사단장 → 제8군 포병감, 브루실로프 공세 포병 기획 주도
  • 1918–1919우랄 군단장 → 콜차크 서부군 사령관, 볼가 진격 → 부구루슬란 패배 후 경질. 포병대장 진급
  • 1919–1920콜차크 정부 군무장관, '3인 위원회' 일원으로 옴스크 붕괴 수습
  • 1920–1945중국 망명 (다롄·상하이·창춘), ROVS 극동부장 역임
  • 1945–1961SMERSH 체포, 10년형 → 1955년 석방, 잠불에서 사망. 1992년 사후 복권

안톤 이바노비치 데니킨

Антон Иванович Деникин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러시아 1872–1947 ○ 심장마비

볼셰비키 정권을 모스크바 400km 앞까지 몰아붙인 백군 최대 규모 군대의 총사령관

1899년 참모본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부당하게 명단에서 제외되자 황제에게 탄원했다. 주변에서 청원을 취하하면 조용히 배려해 주겠다고 했을 때의 답: "나는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 내 권리인 것만을 요구할 뿐이다."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친 제국 육군 중장으로, '철의 여단'을 이끌며 브루실로프 공세의 선봉에 섰다. 1918년 코르닐로프 사후 의용군 사령관을 이어받아 남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 백위대 최대 병력을 지휘했고, 1919년 여름 모스크바 공세로 오룔까지 진격해 소비에트 정권을 가장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통일되고 불가분의 러시아'라는 경직된 구호로 민족·농민 문제에 실패했고, 통제 불능의 포그롬은 국제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망명 후 5권의 『러시아 혼란기 수기』를 집필해 혁명과 내전의 기초 사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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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05러일전쟁 참전, 참모 장교로 무공을 세워 대령 진급
  • 1914–16제4소총 '철의 여단'(후 사단) 지휘,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루츠크 2회 점령
  • 1917.4–5최고사령관 알렉세예프의 참모장, 군의 민주화에 반대
  • 1917.8–11코르닐로프 지지로 체포, 비호프 수도원에 수감
  • 1918.4코르닐로프 전사 후 의용군 사령관 승계
  • 1919.1남러시아군 총사령관, 백군 최대 병력 편성
  • 1919.7–10모스크바 공세, 오룔 점령 후 적군 반격으로 패퇴
  • 1920.4브란겔에게 지휘권 이양, 망명길에 오름
  • 1923–275권의 『러시아 혼란기 수기』 출간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콜차크

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Колчак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74–1920 ✕ 처형

북극에서 총살형장까지, 제정의 마지막 무장 방어자

"파리에 있는 내 아내에게 내가 아들을 축복한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소?" — 1920년 2월 7일, 총살 집행대 앞에서 사령관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북극 탐험가이자 해양학자로 이름을 떨친 제정 러시아 해군 제독.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발트함대와 흑해함대를 지휘했고 함대 사령관 중 유일하게 니콜라이 2세의 퇴위에 반대했으며, 1918년 11월 옴스크 쿠데타로 '전러시아 최고 통치자'에 추대되어 시베리아 백군을 이끌었으나 1920년 2월 볼셰비키에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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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4해군사관학교 졸업, 소위 임관
  • 1900–1902러시아 북극 탐험대 수문학자 겸 지도제작자
  • 1904–1905러일전쟁 참전, 구축함 세르디티 함장 → 뤼순 포대 지휘, 부상·포로
  • 1906콘스탄틴 메달 수상, 해군 참모본부 근무
  • 1914–1915발트함대 작전부장 → 기뢰부대 사령관, 4급 성 게오르기 훈장
  • 1916–1917흑해함대 사령관, 해군 중장
  • 1918–1919전러시아 최고 통치자 겸 러시아군 최고사령관 (옴스크)
  • 1920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넘겨져 이르쿠츠크에서 총살

파벨 베르몬트-아발로프

Павел Бермондт-Авалов

독일 자유군단을 이끌고 리가를 공격한 서러시아 의용군 사령관

유데니치의 나르바 합류 명령을 거부한 그는 1919년 10월 '러시아 국가권력의 대표자'를 자처하며 리가로 진격했다.

「아발로프 공」을 자칭한 러시아 기병 장교로 1919년 철수를 거부한 독일 자유군단 수만 명을 서러시아 의용군으로 묶어 10월 리가를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 망명 뒤 베를린에서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을 이끌었고 1973년 뉴욕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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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군악장으로 제1아르군 연대 입대
  • 1904–1905러일전쟁 참전,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 수훈
  • 1918키예프 주둔 남군 징병·방첩 책임자
  • 1919-04잘츠베델 포로수용소에서 의용 분견대 편성
  • 1919-07미타바에서 그라프 켈레르 부대 결성
  • 1919-09서러시아 의용군 총사령관 자처, 10월 리가 진격
  • 1925회고록「볼셰비즘과의 투쟁」간행
  • 1933러시아 민족사회주의 운동(론트) 창설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브란겔

Пётр Николаевич Врангель
군사·지휘 러시아 백색운동 러시아 제국 러시아 1878–1928 ○ 급사 · 독살 의혹

'흑남작', 이미 진 전쟁을 넘겨받아 개혁으로 돌파를 시도한 백군 최후의 총사령관

"주여, 군대를 구원하소서" — 1928년 4월 브뤼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며 남긴 마지막 말.

발트 독일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광산 기사로 출발했으나, 러일전쟁에 지원 입대하며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카우셴 전투의 기병 돌격을 이끌어 전쟁 최초의 성 게오르기 훈장 수훈자 중 한 명이 되었고, 1917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1920년 데니킨의 뒤를 이어 남러시아 백군 총사령관이 되어 '러시아군'으로 재편하고, 농민의 토지 점유를 인정하는 급진적 토지개혁을 포함한 일련의 개혁을 시도했다. 적군에 패배한 뒤 14만 5천 명 이상을 크림반도에서 철수시키는 대규모 대피 작전을 조직했으며, 망명 후 러시아 전군연합(ROVS)을 창설해 백군 운동의 상징적 지도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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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광산기사 졸업, 기마친위대 지원입대
  • 1904–1905러일전쟁 참전, 아르군 코사크 연대 복무, 훈장 수훈
  • 1910–1914니콜라예프 참모대학 졸업, 기마친위대 중대장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
  • 1914카우셴 전투에서 기병 돌격 지휘, 4급 성 게오르기 훈장 수훈
  • 1915–1917제1네르친스크 코사크 연대장 → 소장, 제7기병사단장 → 통합기병군단장
  • 1918–1919의용군 입대, 제1기병사단장 → 캅카스 의용군 사령관, 차리친 점령
  • 1920남러시아군 총사령관, '러시아군'으로 재편, 크림 철수 작전
  • 1924–1928러시아 전군연합(ROVS) 창설, 망명 백군 운동 지도

알렉산드르 일리치 두토프

Александр Ильич Дутов

오렌부르크 카자크를 이끌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투르키스탄 사이를 차단한 백군 아타만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마지막 숨결을 지켜보고 있다.

오렌부르크 카자크 아타만이자 백군 중장. 1917년 11월 소비에트 권력을 불인정한 최초의 군사 지도자로서 오렌부르크-타슈켄트 철도를 차단해 소비에트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20개월간 갈라놓았다. 콜차크 휘하에서 오렌부르크 독립군을 지휘했고, 패배 후 '기아 행군'을 거쳐 중국으로 탈출했으나 1921년 체카 요원에게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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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9니콜라이 기병학교 졸업, 제1오렌부르크 카자크 연대 배속
  • 1908총참모부 아카데미 졸업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참전, 제1오렌부르크 카자크 연대 지휘
  • 1917.09오렌부르크 카자크군 아타만에 선출
  • 1917.11볼셰비키 권력 불인정, 무장봉기 주도
  • 1918–1919콜차크 휘하 오렌부르크 독립군 사령관
  • 1919–1920악토베 패배 후 '기아 행군', 중국 망명

블라디미르 오스카로비치 카펠

Владимир Оскарович Каппель
군사·지휘 러시아 백색운동 러시아 제국 러시아인 (스웨덴계) 1883–1920 ○ 동상 · 폐렴

백군 최고의 '병사들의 장군', 얼음 행군을 이끌다 사라진 카잔의 정복자

“병사들에게 전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들 가운데서 죽는 것이 그 증거라고.”

스웨덴계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장교로 복무하며 브루실로프 공세 계획에 참여했다. 1918년 볼셰비키에 맞서 코무치 인민군 소규모 의용대를 이끌고 기동전으로 카잔을 점령, 적군의 동부전선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으며 '작은 나폴레옹'이라 불렸다. 콜차크 휘하에서 동부전선 총사령관이 된 후, 붕괴하는 전선을 수습하며 바이칼까지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을 이끌었고, 도중 동상과 폐렴으로 사망했으나 그의 관은 부하들의 손에 끝까지 운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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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3니콜라옙스크 기병학교 졸업, 제54용기병연대 코르네트
  • 1913니콜라옙스크 참모아카데미 1등 졸업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참모 장교, 브루실로프 공세 계획 참여, 중령
  • 1918.6코무치 인민군 제1의용대 지휘관
  • 1918.7–8시즈란·심비르스크·카잔 점령, 대령 진급
  • 1918.11소장 진급
  • 1919제1볼가군단장 → 볼가집단사령관 → 제3군사령관 (콜차크군)
  • 1919.12–1920.1동부전선 총사령관,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 지휘

스타니스와프 부와크-바와호비치

Stanisław Bułak-Bałachowicz
군사·지휘 러시아 제국 폴란드 벨로루시·폴란드계 1883–1940 ✕ 살해

에스토니아에서 벨로루시까지 진영을 옮겨 다닌 반소비에트 유격 지휘관

필수드스키는 그를 '도둑이지만 도둑만은 아니고, 오늘은 러시아인, 내일은 폴란드인, 모레는 벨로루시인'이라고 평했다.

붉은 군대에서 백군으로 넘어가 1919년 프스코프를 점령하고 유데니치와 갈라져 에스토니아 편에 섰다가 1920년 폴란드로 옮겨 벨로루시 원정을 벌였다. 부대의 반유대인 폭력이 기록되어 있으며 1940년 독일 점령 바르샤바에서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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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차르 군대에 징집되어 게오르기 십자훈장·성 게오르기 훈장 수훈
  • 1918붉은 군대에 입대, 트로츠키의 승인으로 루가 기병연대 편성
  • 1918-11약 4백 명을 이끌고 백군으로 전향
  • 1919대령에서 소장으로 승진, 유데니치 공세에서 프스코프 점령
  • 1920-01유데니치를 체포하고 에스토니아 편에 섬
  • 1920폴란드 군에서 핀스크 점령, 러시아 인민의용군 편성
  • 1920-11소비에트 벨로루시로 침입해 스스로 벨로루시 국가 수반이라 선언, 패배 후 폴란드로 도피
  • 1939바르샤바 방어에 참가, 1940년 5월 살해

야코프 알렉산드로비치 슬라시초프

Яков Александрович Слащёв

페레코프를 지킨 백군 장군

1921년 귀환을 호소하며 말했다. “소련 정권은 러시아와 그 인민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권이다.”

야코프 슬라시초프는 러시아 제국군 출신의 백군 장군으로, 남러시아 내전에서 크림 방어를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1919년 말 페레코프 지협의 방어선을 장악하고 1920년 초 붉은 군대의 거듭된 공격을 막아, 열세한 병력으로 브랑겔의 크림 거점을 지탱했다. 그러나 그의 지휘 아래 벌어진 가혹한 진압과 약탈 의혹은 군사적 역량과 함께 백군 통치의 폭력성을 드러냈다. 망명 뒤 소련으로 돌아가 전술을 가르치며, 패배한 진영의 군사 지식이 새 국가에 흡수되는 역설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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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파블롭스크 군사학교 졸업, 근위 핀란드 연대 소위
  • 1911–1917니콜라이 군사참모 아카데미 수학, 파제스 군단에서 전술 교육
  • 1917모스크바 근위연대 지휘관
  • 1918의용군 합류, 슈쿠로 유격대 참모장 및 쿠반 부대 지휘
  • 1919제4보병사단장, 남러시아군 제3군단장
  • 1919–1920크림 방어 지휘관, 페레코프 지협 방어선 운용
  • 1922–1929소련 군사학교 ‘비스트렐’ 전술 강사

로만 표도로비치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Роман Фёдорович фон Унгерн-Штернберг

몽골을 해방하고 칭기즈 칸 제국의 부활을 꿈꾼 백군의 광신적 군벌

나의 이름은 증오와 공포에 둘러싸여 있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신화인지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러시아 제국의 발트 독일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스스로 칭기즈 칸의 후예임을 믿은 백군 장군. 시베리아에서 그리고리 세묘노프 휘하의 아시아 기병사단을 이끌며 붉은 군대와 싸우다 1920년 몽골로 넘어갔다. 1921년 2월 중국 점령군을 몰아내고 복드 칸의 신정 군주제를 복원시켜 '다르한 호쇼이 친 왕'의 작위를 받았으나, 유대인과 볼셰비키 동조자에 대한 잔혹한 숙청으로 공포 통치를 펼쳤다. 같은 해 8월 몽골인 부대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넘겨진 뒤 노보니콜라옙스크에서 6시간의 재판 끝에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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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아르군 코사크 연대 호룬지 임관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 참전, 5회 부상, 성 게오르기 훈장 수훈
  • 1917–1918그리고리 세묘노프와 함께 특별만주부대 결성
  • 1918.11소장 진급, 다우리아에 아시아 기병사단 창설
  • 1921.02우르가 점령, 중국군 축출, 복드 칸 복위
  • 1921.02복드 칸으로부터 '다르한 호쇼이 친 왕' 작위 수여
  • 1921.08몽골인 부대에 체포되어 붉은 군대에 인도됨
  • 1921.09.15노보니콜라옙스크에서 공개 재판 후 총살형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세묘노프

Григорий Михайлович Семёнов

일본군에 기대어 자바이칼을 지배하고 콜차크와 맞선 백군 아타만

「…태동하는 내전의 조건에서, 모든 온정과 인간애는 버려져야 한다」: 회고록 『나 자신에 대하여』에서 자신의 백색 테러 정책을 정당화한 말.

자바이칼 코사크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은 유능한 기병 장교였다. 1917년 말 특별만주부대(OMO)를 조직해 시베리아 내전의 첫 전선을 열었고, 일본군의 군사·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자바이칼 지역을 장악해 '동부 변경' 정부를 수립했다. 콜차크의 권위를 거부하며 독자 세력화했고, 그의 통치 아래 자행된 대규모 백색 테러는 미군 정보 당국의 조사 대상이 될 정도로 잔혹했다. 1920년 패주 후에도 일본의 후원 아래 만주에서 반소 활동을 이어가다 1945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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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8–1911오렌부르크 코사크 사관학교 졸업, 호룬지 임관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 참전, 성 게오르기 훈장 4급·게오르기 무기 수훈, 에사울 진급
  • 1917.12–1918특별만주부대(OMO) 조직, 자바이칼에서 반볼셰비키 봉기 주도
  • 1918–1919치타 점령, 자바이칼 코사크 군 아타만 선출, 콜차크와 충돌 후 화해
  • 1920.1–10러시아 동부 변경 전권 통치자, 극동군 편성 → 10월 패주, 비행기로 만주 도피
  • 1921–1945일본·만주 망명, 일본군과 협력, BREM 의장(1943–1945)
  • 1945.8–1946.8소련군에 체포, 모스크바에서 재판 후 교수형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 페펠랴예프

Анатолий Николаевич Пепеляев

27세에 장군이 된 백군 지휘관, 야쿠티야 원정으로 내전을 끝내다

「나는 내 정치적 신념을 모른다. 나는 당파적이지 않다. 나는 인민에게 선과 행복을, 러시아 인민이 친절하고 평화로우며 강하고 위대한 인민이 되길 바란다」: 야쿠티야 원정 중 일기에서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의 최연소 장군 중 하나로, 27세에 소장 계급을 받고 '시베리아의 수보로프'로 불렸다. 1918년 12월 페름을 함락시켜 2만 명의 붉은군대 포로를 석방했으며, 콜차크 휘하에서 제1시베리아군을 지휘했다. 내전이 패배로 기운 후에도 하얼빈에서 목수와 마부로 생계를 이어가다 1922년 9월 자원대를 이끌고 야쿠티야 원정에 나섰으며, 1923년 6월 아얀에서의 항복으로 끝난 이 원정은 러시아 내전의 마지막 군사 작전이었다. 사형 선고 후 10년형으로 감형되었으나, 대숙청기인 1938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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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파블롭스크 군사학교 졸업, 소위 임관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령 진급, 성 게오르기 훈장 4등급 수훈
  • 1918.05–08톰스크 반볼셰비키 봉기 주도, 제1중앙시베리아군단 지휘
  • 1918.09–12소장 진급(27세), 페름 함락, '시베리아의 수보로프' 별칭
  • 1919중장 진급, 제1시베리아군 사령관
  • 1920–1922하얼빈 망명, 목수·마부로 생계
  • 1922.09–1923.06시베리아 의용대 이끌고 야쿠티야 원정, 아얀에서 항복
  • 1924–1938사형 선고 후 10년형 감형, 1936년 석방, 1938년 대숙청으로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