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강좌』 편찬과 보급 사료 (1937~1939)
인물이오시프 스탈린, 빌헬름 크노린, 예멜리얀 야로슬랍스키, 표트르 포스펠로프, 안드레이 즈다노프, 알렉산드르 포스크료비셰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용어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
1. 정치국 결정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에 대하여」 (1937년 4월 16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정치국. 1937년 4월 16일. 의사록 제48호.
III.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에 대하여(스탈린).
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그룹, 곧 크노린·야로슬랍스키·포스펠로프 동지들에게 스탈린 동지의 지시[1]와 그가 제안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사건의 시기 구분 도식을 작업의 토대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나) 이 과제를 4개월 안에 수행할 수 있도록 크노린·야로슬랍스키·포스펠로프 동지들을 4개월 동안 다른 모든 업무에서 면제한다.
다) [판독 불가 한 단어] 크노린·야로슬랍스키·포스펠로프 동지들의 교과서는 「레닌 강습」(지구위원회 서기용)[2]에 쓰도록 한다.
라) 크노린·야로슬랍스키 동지들에게 스탈린 동지의 지시와 의견 교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대중용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를 「당 강습」(당위원회 서기용)에 맞게 고쳐 쓰고, 더 대중적인 성격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2. 스탈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에 대하여: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937년 5월)
나는 우리의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교과서들이 세 가지 주된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교과서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사를 나라의 역사와 연관 짓지 않고 서술하기 때문이거나, 필요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이야기, 곧 사건과 조류 사이 투쟁의 사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거나, 구성이 잘못되고 사건의 시기 구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함을 없애려면 저자들은 몇 가지 고려 사항을 감안해야 한다.
교과서의 각 장(또는 절) 앞에 나라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에 관한 짧은 역사적 개관을 붙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지나간 일에 관한 가볍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다.
둘째로, 소련의 자본주의 시기에 당과 노동계급 안에 수많은 조류와 분파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실들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 사실들에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주어야 한다. 곧 a) 혁명 전 러시아에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새롭고 근대적인 계급들과 함께 낡은 전(前)자본주의적 계급들이 존재했다는 것, b) 나라가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띠었다는 것, c) 노동계급의 구성이 이질적이었다는 것을 당과 노동계급 안에 수많은 조류와 분파가 존재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지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분파와 조류가 그토록 많았던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셋째로, 조류와 분파 사이의 격렬한 투쟁의 사실들을 단순한 이야기의 어조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 사실들에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주어야 한다. 곧 반볼셰비키 조류·분파에 맞선 볼셰비키의 투쟁은 레닌주의를 위한 원칙적 투쟁이었다는 것, 자본주의 아래에서, 또 일반적으로 적대 계급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당내의 모순과 의견 차이는 피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발전과 강화는 이 모순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반레닌주의 조류·그룹과의 원칙적 투쟁 없이, 그것들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 당이 그러한 투쟁을 받아들이지 않은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당들이 변질했듯이 피할 수 없이 변질했으리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때 엥겔스가 1882년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잘 알려진 편지[3]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편지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7차 확대전원회의에서 내가 한 보고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내의 사회민주주의적 편향에 대하여」[4]의 제1장에 인용되어 있고, 거기에 붙인 내 해설도 있다. 이런 설명이 없으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에서 분파와 조류의 투쟁은 영문 모를 다툼처럼 보이고, 볼셰비키는 구제할 길 없고 지칠 줄 모르는 싸움꾼, 말썽꾼처럼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의 사건들을 시기 구분하는 일에 어떻게든 질서를 세워야 한다.
나는 아래에 드는 도식이나 그와 비슷한 도식이 그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도식:
I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
(1883년 플레하노프의 「노동해방단」 결성부터 1900~1901년 『이스크라』 첫 호들의 출간까지.)
II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결성과 당내 볼셰비키·멘셰비키 분파의 출현.
(1901~1904년.)
III 러일전쟁과 제1차 러시아 혁명 시기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1904~1907년.)
IV 스톨리핀 반동 시기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그리고 볼셰비키의 독자적 사회민주노동당으로의 결집.
(1908~1912년.)
V 제1차 제국주의 전쟁 전 노동계급 고양기의 볼셰비키당.
(1912~1914년.)
VI 제국주의 전쟁과 제2차 러시아 혁명, 곧 2월 혁명 시기의 볼셰비키당.
(1914년~1917년 2~3월.)
VII 10월 사회주의 혁명의 준비와 수행 시기의 볼셰비키당.
(1917년 4월~1918년.)
VIII 내전 시기의 볼셰비키당.
(1918~1920년.)
IX 국민경제 복구를 위한 평화적 사업으로 이행하던 시기의 볼셰비키당.
(1921~1925년.)
X 나라의 사회주의 공업화를 위한 투쟁 속의 볼셰비키당.
(1926~1929년.)
XI 농업 집단화를 위한 투쟁 속의 볼셰비키당.
(1930~1934년.)
XII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완수와 새 헌법의 시행을 위한 투쟁 속의 볼셰비키당.
(1935~1937년.)
이. 스탈린
『프라우다』, 1937년 5월 6일.
3. 스탈린, 당 선전 문제에 관한 정치국 회의 발언 (1938년 10월)
스탈린 결국 이렇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당사를 공부하면서 마르크스를 공부할 의무는 없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공부하면서 당사를 공부할 의무는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지금 당사 연구자들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다. 당사가 있고 사적 유물론이 있으니 서로 다른 두 분과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바로 이 기능별 쪼개기가 사람들의 의식을 흐려 놓았고, 그래서 그들은 당사 강좌가 나온 것을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여긴다.
여기에 가장 위대한 사건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여러분이 마르크스주의를 당사로, 변증법적 유물론(диамат)으로, 사적 유물론으로 조각조각 쪼개 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 분과들을 다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 머릿속에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훌륭한 점은 바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는 데 있다. 요점도, 비결도 전부 거기에 있다.
베딘[5]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다, 스탈린 동지.
스탈린 당사 연구자는 마르크스주의 강연자여야 한다. 이게 맞는가?
베딘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스탈린 동지. 우리의 과제는 철학자도 역사가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하나의 전체로 공부하도록 배우게 하는 데 있다.
스탈린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무슨 역사가란 말인가. 내가 발언을 좀 하겠다.
스탈린 내 말은, 선전원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 낸 이 혼란 속에서 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선전원을 모조리 다시 가르치고 재교육해야 한다는 말이 나돈다. 왜 그래야 하나?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사람들이 무언가 새로운 문제 앞에 선 것처럼, 마치 교과서가 그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내놓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모두를 역사가로, 마르크스주의자로 다시 가르치자고 한다. 레닌주의를 가르치는 사람들까지, 선전원 전체를 말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 강좌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결코 보통의 역사라고 부를 수 없다. 보통 당사는 다른 모든 역사와 마찬가지로 사실을 서술하되 이어지게 서술하고, 이 현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약간의 윤곽을 주고, 그다음에 연대, 연도 따위가 이어진다. 그게 역사라는 것이다!
『단기강좌』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당사다. 사실 여기서 당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을 이어지게 서술하기 위한 예증 자료로 쓰였다. 역사 자료는 보조 자료 노릇을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사실로 입증한 역사의 간략한 서술이다. 그것도 지어낸 사실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역사적 사실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당사 강좌다. 이것은 보통의 역사 강좌가 아니다. 이론 문제 쪽으로, 역사 발전 법칙의 연구 쪽으로 기운 역사 강좌다.
이론, 그것은 역사의 법칙이다. 이론은 사회 발전, 노동운동 발전, 프롤레타리아 혁명 발전, 사회주의 건설 발전의 법칙을 연구하여 얻은 법칙들의 총합이다.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사건의 완전한 그림을 내놓은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역사가 이 법칙들을 다 길어 낼 때가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조건에 따라 무언가 새로운 측면, 새로운 현상이 드러난다. 그것이 새로운 법칙이다. 그뿐이다.
어쩌다가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쪼개고 부수어, 선전 사업에서 일종의 기능별 분할[6]을 하게 되었나? 물론 여기서는 우리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 우리는 선전을 출판물에서 떼어 놓았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 가장 좋은 선전 형태는 두말할 것 없이 출판물이다. 그리고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부분을 서로 갈라놓았으니, 선전이 학습반으로 흘러간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서는 구두 선전이 출판 선전과 분리되었고, 이것은 근본부터 옳지 않다. 이로써 우리는 선전원들을 학습반에 처박히도록 떠밀었고, 학습반은 또 어찌나 많이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지금 과제는 구두 선전을 출판 선전과 하나로 묶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선전 사업의 무게중심은 출판물과 강연으로 옮겨 갈 것이다. 세상에 출판물, 곧 잡지·신문·소책자보다 나은 선전은 없다. 출판물이란 이런저런 진리를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다. 학습반에서 20명이 공부한다고 하자. 선전원이 훌륭할 수도 있고, 훌륭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아는가? 20명이 알고 그 밖에는 아무도 모른다. 왜 그 보고, 해설, 상담을 인쇄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 이것이 구두 선전과 출판 선전의 차이다. 출판 선전이 더 강하다. 말하자면 구두 선전은 수공업, 일종의 소생산이다. 출판 선전은 대규모 기계제 생산이다.
우리가 지하에 있을 때, 출판물이 우리 손에 없을 때라면 나도 이해한다. 그때 우리 사람들은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자연히 학습반으로 모였다. 이제 우리가 권력을 잡고, 출판물이 우리 손에 있고, 신문과 잡지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출판물을 소홀히 하면서 학습반에 틀어박혀서는 결코 안 된다. 이건 무슨 헛소리인가!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다.
지금 과제는 종속적인 역할을 맡을 구두 선전을, 선전 분야에서 지휘하는 역할을 맡을 출판 선전과 하나로 묶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구두 선전을 출판 선전에서 인위적으로 떼어 놓았을 뿐 아니라, 선전 내용 자체를 쪼개고 부수었다. 우리에게서 그렇게 되었다. 변명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중앙위원회는 이 일에 매달릴 틈이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면, 우리가 여기서도, 선전 분야에서도 선전 내용의 관점에서 일종의 기능별 분할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사적 유물론을 레닌주의에서 어떻게 떼어 놓을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쓰고 가르친 것은 토대다. 레닌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비해 새로 내놓은 것은 발전의 연속이다. 그러나 토대를 모르고서는 그 뒤에 나온 새로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레닌이 내놓은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면 토대를 알아야 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내놓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이것을 갈라놓았다. 이것은 물론 전적으로 옳지 않고, 어처구니없다. 레닌주의를 공부한다. 레닌주의 학습 강령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관해 무언가 조금, 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소책자 몇 권, 「공산당 선언」 따위가 언급되어 있고, 한 쪽짜리로 사적 유물론의 간단한 특징을 소개한 다음, 레닌이 쓴 것이 이어진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나? 물론 안 된다.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에서 떨어져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레닌을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새로 내놓았는지 이해하려면 — 그리고 그는 대단히 새로운 것을 내놓았다 — 원천을 알아야 하고, 그 원천은 마르크스주의다. 토대가 그 연속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레닌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서는 레닌주의 학습 강령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 관해 거의 아무 말도 없게 되었다. 레닌주의를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므로 하나로 묶여야 하고,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쳐야 한다. 곧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어떻게 사적 유물론의 이론에 이르렀는지, 어떤 전제에 바탕해 거기에 이르렀는지에서 시작하고, 그다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공부하고, 그 뒤에 레닌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면 레닌이, 그가 내놓은 새로운 것이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가르치는 실천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주의에서 떼어 놓았을 뿐 아니라, 사적 유물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떼어 내 별도의 분과로 가르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개념, 올바른 개념 없이는 마르크스를 이해할 수 없다. 『단기강좌』에 제4장이 들어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이 쪼개진 부분들을 하나로 이으려 했다. 이 부분들을 모두 쪼개는 것은 그것들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들을 잇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 실제로 있는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이 공부를 어떻게 했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시작했다. 플레하노프를 붙잡았는데, 그때는 아직 레닌의 책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를 몰랐다. 주로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플레하노프의 책을 공부했고, 원전, 곧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인 「공산당 선언」 같은 것들을 붙들었다. 대단히 어려웠다. 이론을 스스로 파고들어야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정치로 넘어갔다. 정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 연구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 선전원들이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알려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그 논리적 귀결인 사적 유물론과 이어야 한다. 그다음에야 레닌이 내놓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는 이 쪼개진 부분들을 모두 하나로 잇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면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여기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길을 따라 우리 구볼셰비키는 한때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다. 여기서는 여러 분과로 쪼개져 버렸던 그 옛길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 옛길을 우리는 지금 『단기강좌』의 도움으로 되살리고 있다. 그러니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에서도 이론에서도 아무런 전환이 없고, 새로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흩어지고 쪼개졌던 것을 하나로 묶었을 뿐이다. 여기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적 유물론과 이어지고, 사적 유물론은 정치·경제와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룬다.
이 모든 것을 역사적 사실로 예증한다. 역사적 사실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역사적 사실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을 더 잘, 더 자연스럽게, 더 알기 쉽게 보여 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기강좌』가 인물에 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교과서는 접근법이 다르다. 옛 교과서들은 사건을 좁은 역사적 단면에서 서술하고, 흔히 인물을 가지고 재미를 본다. 중앙위원회는 이 방법이 교육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으며 교육 효과가 적다고 본다. 중앙위원회는 누가 몇 번 유형 갔는지, 누가 몇 번 감옥에 있었는지 따위를 가지고 교육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의미는 있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역사는 우리 간부를 교육하는 데 아무것도 주지 않거나 아주 조금밖에 주지 않는다. 역사는 사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바로 그래서 『단기강좌』에는 인물 이야기가 적고, 바로 그래서 모든 자료가 우리 당 발전의 결절점,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 발전의 결절점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사람들을 더 잘 교육하고, 개별 인물과 지도자에 대한 관심을 덜 불러일으키며, 참된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되기 위한 의식을 기르는 데 더 이바지한다.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동지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단기강좌』가 나오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에 맞닥뜨렸다느니, 전환이니, 시대니 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아무것도 뒤집을 필요가 없다. 옛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의 사실 위에서 되살리고 있다.
내가 짚고 싶었던 두 번째 문제다. 내가 여기서 발언하는 것은 동지들이 드러내고 있는 문제에 대한 어떤 몰이해를 미리 막기 위해서다.
이 책은 누구를 향하는가? 간부, 우리 간부를 향한다. 간부란 무엇인가? 간부는 지휘 요원, 곧 우리 국가기구 전체의 하급·중급·고급 지휘 요원이다. 여기에는 경제도, 협동조합도, 상업도, 공업도, 문화도, 의료도, 대체로 국가가 그것으로 살아가고 그것에 바탕해 국가가 국민경제와 인민을 지도하는 모든 것이 들어간다.
우리는 흔히 좁은 의미의 당 간부만 그냥 간부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그건 괜찮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 모두를 우리는 다소 경멸하듯 사무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사무원들 없이는, 이 인텔리겐치야 없이는, 지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없이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계급도 자기 자신의 인텔리겐치야, 곧 육체노동에서 떠나 정신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를 지도할 수 없다. 흐루쇼프 동지는 자기가 아직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인텔리다(장내에 즐거운 웃음). 그는 지성으로 살고, 머리로 일하며, 육체노동에서 떠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왔으니 노동자이기를 그친 것이다. 우리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간부에 대해 마하예프식 태도를 보였다. 마하예프[7]는 사회민주주의자였는데, 나도 유형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당 인텔리겐치야를 욕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당 인텔리겐치야를 박멸해야 비로소 당 대열에 질서가 회복된다고 생각했다. 마하예프는 당원이었지만 실제로는 물론 무정부주의자였다. 당사에서 마하예프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 당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이 증오다. 물론 마하예프는 바보, 완전한 천치였다. 자기 인텔리겐치야를 소중히 여겨야 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 농민 전체를 인텔리겐치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남의 것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옛 태도를 우리의 새로운 노농 인텔리겐치야에게 옮겨 오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다면 우리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우리, 곧 혁명의 대의에 영혼을 바쳤고 볼셰비키 입장에서 결코 밀려나지 않을 구볼셰비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소규모 근로 인텔리겐치야 출신의 젊은이들로 그 10분의 9가 채워진다. 우리 소비에트 노농 인텔리겐치야는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무원의 기본 핵심을 이룬다. 우리에게서는 흔히 이런 일이 있다. 노동자가 선반 앞에서 일하다가 공부하러 가서 교육받은 사람이 되면, 곧바로 그에 대한 존중이 싹 사라진다. 나는 이것이 야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로는 우리가 정말로 국가를 망치고, 사회주의를 망칠 수 있다. 관리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지령을 작성한다. 지령은 이행되지 않으면 빈 껍데기이니, 다른 사람들이 그 지령을 이행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행하느냐도 중요하다.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고, 지령을 이행할 각오가 있어야 하며, 이행을 점검하고 결과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지도자들에게 지령의 결함이 어디에 있었는지 따위를 일러 주어야 한다. 명령으로, 결정으로 모스크바에서 내려가는 지령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면 분별없고 순진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 지령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손끝으로 느끼는 현장의 실무자들이 모스크바 사람들, 중앙을 돕지 않고 그 잘못을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면, 중앙과 현장 사람들 사이에 이런 접촉과 상호작용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사업에서 아무런 보람도 없을 것이다. 위에서 시작해 지령·결정·명령 따위를 이행하는 말단 고리까지 이르는 이 기구 전체가 바로 우리 인텔리겐치야 간부를 이룬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동자와 농민 가운데서 이런 사람들을 길어 올려, 그들로부터 우리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를 만들고 길러 낼 것이다. 선반이나 트랙터를 떠나 인텔리가 된 사람은 사회에서 끝장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우리 인텔리겐치야를, 어제는 노동자였다가 오늘 인텔리가 된 사람들을 그렇게 보는 이 사람들은 적보다 더 나쁘다. 우리 인텔리겐치야를 경멸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도 없는 가련하고 불행한 사람들, 마하예프주의자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바로 이 간부, 우리 인텔리겐치야 간부에 기대를 걸고, 우리 책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렇다고 선반 앞의 노동자나 트랙터, 쟁기, 극젱이 앞의 농민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즈다노프 동지의 보고를 그렇게 이해했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우리는 동지들의 관심을 당·소비에트·경제·콜호스 간부에게 돌리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바로 이들에게, 우리 인텔리겐치야에게 우리의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지침 전체가 반(半)마하예프식 잘못의 노선을 따라 나아갔다. 선전원이 공장에 학습반을 하나 두고 있으면 됐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농민은 또 잊어버렸다. 농민의 곡물은 더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상을 주는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공장 노동자 사이에서 선전하면 좋다. 그러나 지도하는 간부 사이의 선전, 그게 필요한가? 이 일을 그렇게 보았다. 우리 학습반을 모두 점검해 보면, 학습반의 100분의 99가 공장 학습반으로 드러날 것이다. (목소리: 옳소.) 간부, 곧 지금은 인텔리가 되어 관리하고 있는 옛 노동자와 옛 농민, 그리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관심을 바로 간부 쪽으로 돌린다. 그렇다고 선반 앞의 노동자가 손해 보지는 않는다. 단축 학습반이니 비단축 학습반이니 하는 것을 그렇게 많이 차려 놓았으니 많이 남을 것이고, 노동자들에게 선전이 모자랄 일은 없을 것이다.
간부 사이의 선전으로 말하자면, 여기는 구멍이 매우 심각하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모든 노동자를 교육받은 사람으로, 인텔리로 만들 것이다. 5~6년만 더 지나면 우리나라에는 8년제 학교를 거치지 않은 젊은이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얼마 뒤 모든 노동자와 농민을 인텔리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토대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노동자와 농민이 모두 인텔리가 되도록 밀어붙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적이 될 것이다. 그건 미래의 일이고, 현재는 이렇다. 젊은이들이 공장에 가서 8시간 일하고 지치는데, 그들을 억지로 학습반에 나가 공부하게 한다. 정말로 모두가 기꺼이 그 학습반에 간다고 믿기는 어렵다. 학습반이 7만 개 있다. 학습반마다 10명이면 70만 명, 거의 100만 명이다. 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강제로 그 학습반에 나갔다고 확신한다. 사람을 올가미로 끌고 학습반에 데려가서 계몽할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가 직접 읽게 하라. 그러면 이해할 것이고,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물어볼 것이다. 학습반이 노동자를 마르크스주의로 계몽하는 유일하고 주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분별없는 일이다. 그가 직접 읽게 하라. 그리고 선반 앞의 노동자를 계몽하는 것만으로 우리 사업이 다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최근 우리에게서 드러난 가장 심각한 해악은 우리 간부가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리고 이 간부가 지성으로 일하는 간부, 나라를 관리하는 간부라면, 그런데 이 간부가 정치적으로 허술하게 단련되었다면, 그것은 국가가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부하린파를 보라. 그들의 상층부는 닳고 닳은 분파주의자들로, 인민 속에서 발판을 잃자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에 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두머리들, 곧 부하린과 다른 자들 말고도 그들에게는 대중이 있었고, 그 대중이 모두 간첩이나 정보원은 아니었다. 부하린에게는 1만, 1만 5천, 2만, 아니 그 이상의 사람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트로츠키주의에도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간첩이었나?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들은 콜호스 쪽으로의 급격한 전환을 소화하지 못하고, 이 전환을 이해하지 못한 간부였다. 정치적으로 단련되지 않았고, 사회 발전의 법칙, 경제 발전의 법칙, 정치 발전의 법칙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평범한 중간층 트로츠키주의자와 부하린주의자들이다. 누구는 주위원회 서기였고, 누구는 인민위원이었고, 누구는 인민위원 대리였다. 그중 일부가 간첩과 정보원이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 가운데에는 우리 사람이었다가 나중에 그쪽으로 넘어간 이들도 있었다. 왜인가? 정치적으로 단련되지 않았고, 이론적으로 교육받지 못했으며, 정치 발전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콜호스 쪽으로의 전환이라 불리는 그 급격한 전환을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전례 없는,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 실험이었다. 무지크를 사회주의 건설에 끌어들여야 했다. 그전에는 이런 실험이 한 번도 없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농민을 사회주의 건설에 끌어들일 가능성과 필요성에 관해 무언가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는 혁명 첫해부터 이 일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선언이었다. 말에서 행동으로 넘어간 것은 1930년에 시작되어 1931년과 1932년에 이어졌다. 우리 간부 가운데 많은 이가 정치적으로 허술하게 단련되고, 이론적으로 준비가 부족하며, 역사 발전의 법칙을 모르고, 이 일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로 이 바탕 위에서 우리는 꽤 많은 간부, 유능한 사람들을 잃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가 간부의 이론 교육이라는 일을 놓쳤다는 뜻이다. 이 잘못은 무엇으로든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더 중대한 일들에 매달려 있었다는 따위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간부 일부를 잃었지만, 엄청난 수의 하급 일꾼을 얻었고, 새 간부를 얻었으며, 콜호스를 바탕으로 인민을 획득하고 농민을 획득했다. 어제의 인민위원과 인민위원 대리들을 그렇게 쉽게 쓸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물론 헛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인민을, 농민을, 노동계급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지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기구를 통해 지도해야 했는데, 기구에는 낯선 사람들이 많았다. 집단화 전까지는 우리를 따라왔다가 집단화 때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민을 획득하면서 간부를 놓쳤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우리 사무원 간부의 정치 교육과 이론 교육으로 바로잡는다. 사무원은 선반 앞의 노동자도 아니고, 우리 정책의 결과를 실제로 보고 있기에 온 마음으로 우리 편에 설 콜호스원도 아니다. 사무원은 머리로 따지고 지성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하고, 질문을 던지고, 정치적 단련이 없으니 갈팡질팡하고, 실무주의에 빠지고, 일을 잔뜩 떠안아 마르크스주의 수양, 자기 볼셰비키화에 힘쓸 마음이 사라진다. 바로 이 구멍을 우리가 메워야 한다.
그 일은 『단기강좌』의 발간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을 역사적 사실 위에서 보여 주는 책이다. 바로 역사적 사실 위에서 보여 주기 때문에, 지성으로 일하는 우리 간부, 우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을 따져 보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놓쳤고, 이제 그것을 메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간부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인텔리겐치야를 조금이라도 깔보는 데 반대한다. 오히려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나라를 지도하는 일을 돕고 있고, 우리는 그들이 역사 발전의 법칙을 공부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론 없이는, 역사 발전의 법칙을 모르고서는 일할 수 없고 국가를 지도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도를 하려면 우리 당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되풀이하건대, 이 책은 무엇보다 우리가 놓친 우리 간부에게 말을 건다. 우리에게 이 구멍이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간부에게 말을 건다는 즈다노프 동지의 말을, 우리가 노동자나 농민에게 등을 돌린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노동자에게 큰 관심을 기울여 왔고 지금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인텔리겐치야의 교육에, 우리 지도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다. 지도란 지령이나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헛소리다! 중요한 것은 그 지령의 이행이다. 그리고 고급·중급·하급 고리의 이 모든 사람들의 줄, 사무원들, 이것이 바로 지도 기구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과 그것을 이행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여러분 선전원들, 다른 사람의 머리를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사무원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들을 보고 콧방귀 뀌지 말고, 흔히 보여 왔던 그런 경멸을 그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를 권한다. 내일이면 이 젊은이들이 우리 경제, 우리 공업, 우리 문화, 한마디로 국가 관리라고 부르는 모든 것의 지휘 요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던 지적은 이것이다.
4. 중앙위원회 결정 「『단기강좌』 출간과 관련한 당 선전의 수립에 대하여」 (1938년 11월 14일)
I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의 출간은 볼셰비키당의 사상 생활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단기강좌』가 나옴으로써 당은 볼셰비즘의 새롭고 강력한 사상적 무기, 마르크스-레닌주의 분야의 기본 지식을 담은 백과사전을 얻었다. 당사 강좌는 볼셰비즘의 과학적 역사이다. 거기에는 세계의 어떤 당도 가져 본 적이 없고 지금도 갖고 있지 않은 공산당의 거대한 경험이 서술되고 일반화되어 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는 볼셰비즘을 체득하고 당원들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즉 사회 발전과 정치 투쟁의 법칙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시킨다는 과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당원 볼셰비키와 비당원 볼셰비키의 정치적 경계심을 높이는 수단이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 사업을 마땅한 이론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이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과제에서 출발했다.
1) 당에 당사에 관한 단일한 지침서, 즉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문제들에 대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검토한 공식 해석을 제시하고 어떠한 자의적 해석도 허용하지 않는 지침서를 주어야 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승인한 『단기강좌』의 출간으로, 앞서 나온 여러 당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던 당사 서술의 자의와 혼란, 당 이론과 당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갖가지 관점과 자의적 해석의 범람에 종지부가 찍힌다.
2)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선전 분야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난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사이의 해로운 단절을 없애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이 단절 때문에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 떨어져서, 변증법적 유물론 및 사적 유물론과 떨어져서, 당사와 떨어져서 독자적 학설로 가르쳐지게 되었고,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자라나 발전했다는 것, 마르크스주의가 레닌주의의 토대라는 것, 레닌주의의 이 토대를 모르고서는 레닌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잊혔다.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이론과 역사에 관한 지침서를 주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것은 단일한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설의 인위적으로 쪼개진 구성 부분들—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레닌주의—을 하나의 전체로 다시 결합하고, 사적 유물론을 당의 정책과 연결하는 지침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학설의 떼려야 뗄 수 없는 통일성과 완결성과 계승성,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통일성을 보여 주고,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새로운 경험을 일반화함으로써 레닌과 그 제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보탠 새로운 것을 서술하는 지침서이다.
3)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사를 무엇보다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인물과 그 전기로 간부를 교육하려 했던 몇몇 옛 교과서와는 반대로,— 『단기강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이 전개되는 것을 토대로 당사를 서술하며, 무엇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으로 당 간부를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설을 가르친다는 과제에서 출발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이렇게 서술하는 것이 사업의 이익에 가장 잘 맞는다고 보았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사상을 보여 주는 것이 더 낫고 더 자연스럽고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역사 자체가 행동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이기 때문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올바름과 생명력이 실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경험을 통해 검증되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자체가 실천과 가장 긴밀하게 결합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투쟁의 실천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토대 위에서 발전하고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4)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과 당사의 여러 문제를 해석하는 데서 나타난 단순화와 속류화로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해방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이런 종류의 속류화와 단순화는, 예를 들면, 최근까지 퍼져 있던, 명백히 반마르크스주의적이고 당이 오래전에 단죄한,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에 관한 견해에서 표현되었다. 몇몇 사이비 이론가와 선전원은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 문제를 반(半)사회혁명당적 입장에서 서술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했다는 문제에 대한 잘못된 해석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런 종류의 속류화와 단순화에 속한다.
현대의 전쟁의 성격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견해의 왜곡, 정의의 전쟁과 부정의의 전쟁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 볼셰비키를 일종의 「평화주의자」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널리 퍼졌다.
역사학에서는 최근까지 반마르크스주의적 왜곡과 속류화가 이른바 포크롭스키 「학파」와 결부되어 있었다[8]. 이 학파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해석했고, 사적 유물론에 어긋나게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조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관점에서 사실을 조명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 역사를 일그러뜨렸다.
실제 역사를 반역사적으로 위조하는 것, 역사를 진실하게 서술하는 대신 미화하려는 반역사적 시도는, 예를 들면, 우리 선전에서 당사를 때때로 일시적 패배나 후퇴가 전혀 없는 승리의 연속으로 그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명백히 역사적 진실에 어긋나며, 그렇게 함으로써 간부를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을 방해한다.
반마르크스주의적이고 속류화하는 혼란은 소비에트 국가에 대한 잘못된 견해, 즉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그리고 근로인민의 사회주의적 쟁취물을 자본주의 포위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동자와 농민의 손에 쥐어진 주된 무기로서 사회주의 국가가 지닌 역할과 의의를 깎아내리는 견해가 퍼지는 데서도 드러났다.
『단기강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을 되살림으로써,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러한 속류화와 저속화,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에 종지부를 찍는다.
5)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힘과 의의를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것은 사회 발전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이론,— 이 법칙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활동을 지도하는 데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이론,—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완성되어 가며, 낡아 버린 개별 명제와 결론을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맞는 새로운 결론과 명제로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론이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에 대한 지식 없이, 볼셰비즘을 체득하지 않고서, 자기의 이론적 낙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 간부들이 두 다리를 모두 절게 되리라는 데서 출발했다.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부문을 올바르게 지도하는 과제는 실무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기초를 체득할 것을, 실천 활동의 문제를 해결할 때 이론의 지도를 받을 줄 알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론을 체득하는 과제가 소수의 일꾼에게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체득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바로 지금, 소비에트 권력 아래에서, 그리고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 지금, 우리 지도 간부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성공적으로 체득하고 당사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저작을 공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마련되어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체득하려면 이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와 끈기와 굳은 성격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과학을 성공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 과학을 완전히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할 근거는 더더욱 없다.
6) 『단기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이론 사업과 선전 사업을 하는 간부들이 체제를 바꾸고, 사업의 질을 높이고, 자기의 이론적 낙후를 없애기 시작하고, 사상적 준비의 결함과 공백을 메우고, 선전 사업을 마땅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돕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세운 이 모든 과제는 『단기강좌』에서 해결되었다.
II
선전 사업의 주된 결함은 무엇인가?
당의 선전 사업과 이론 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하는가?
1) 당 선전 체계의 주된 결함은 당 선전에 대한 지도가 필요한 만큼 중앙집권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선전 사업의 수공업성과 무조직성이다.
당 선전 분야의 수공업성과 무조직성은 무엇보다, 당 조직들이 학습반을 통한 구두 선전을 선전의 기본 형태로 택했다는 데서 드러났다. 학습반식 선전 방법은 주로 당의 비합법 시기에, 당시 당 사업의 조건 때문에 고유했던 방법이라는 것, 그리고 소비에트 권력의 조건에서, 볼셰비키당의 손에 출판물이라는 강력한 선전 도구가 쥐어져 있는 지금은 선전을 무한히 넓게 펼치고 중앙집권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조건과 가능성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었다.
당 조직들은 이 가능성을 활용하는 대신 낡은 선전 형태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 지금의 조건에서 학습반은 더 이상 우리 간부를 볼셰비즘으로 교육하는 주된 방법일 수 없다는 것, 간부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교육하는 기본 방법은 볼셰비키 선배 세대의 경험으로 검증된 방법, 즉 볼셰비키당의 역사와 이론을 스스로 공부하는 자습이어야 하며, 당은 출판물을 통해, 그리고 학습 과정에서 간부들에게 생기는 질문에 대한 중앙집권적이고 수준 높은 상담을 통해, 강연과 보고 등을 통해 이 일에서 간부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학습반을 통한 구두 선전을 선전의 기본 방법으로 택한 당 조직들은 모든 공산주의자를 학습반에 묶어 넣겠다는 그릇된 기획에 빠져, 당 학습반 망을 양적으로 넓히는 데, 공산주의자 전원을 예외 없이, 그것도 의무적으로 당 학습반에 일률적으로 「포괄」하는 것을 좇는 데 판돈을 걸었다.
학습반 수를 좇느라 당 조직들은 핵심 고리인 선전의 질을 손에서 놓쳐 버렸다.
학습반이 너무 많아 당 조직들은 선전 사업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선전에 대한 지도를 손에서 놓고 자기 활동을 주로 공산주의자의 학습반 「포괄」, 학습반의 수와 출석에 관한 사무적·통계적 자료를 모으는 일로 축소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학습반은 제 책임 아래 멋대로 사업을 하는 자율적이고 통제받지 않는 조직으로 변해 버렸다.
학습반이 너무 많은 결과, 나아가 선전원 대열이 이론적으로 준비가 덜 된 사람들, 흔히 정치적으로 문맹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들은 당원과 비당원이 볼셰비즘을 체득하도록 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서술을 해로운 단순화로 바꿔치기하고 청중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뿐이다.
선전원 수를 좇느라 당 조직들은 선전 간부의 양성과 재교육에 대한 이론적 지도, 학습반에서의 선전원 사업에 대한 통제를 손에서 놓쳤다. 당 조직들은 선전원에 대한 지도를 중앙집권화하고 그로써 선전원과의 사업의 질을 높이는 대신, 이 일에서도 그릇되게 양을 좇는 노선을 취해, 기업소마다 수많은 당 학습실과 선전원 세미나, 선전원 단기 강습 등을 만들어 선전 간부를 돕는 일을 흩어 놓았다. 질을 희생하며 이런 기관의 수를 좇은 결과, 당 학습실과 선전원 세미나는 필요한 당의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선전 세미나와 당 학습실을 이끌 자격 있는 간부가 모자라 그 사업의 질이 떨어졌으며, 선전원들은 거기서 일이 처리되는 방식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세미나와 학습실 출석은 형식적인 부역으로 변해 버렸다.
당 조직들은 학습반 출석을 당원의 의무로 만들고, 당원들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스스로 공부할 능력이 없는 영원한 초등학생으로 취급하면서, 당원들을 학습반에 끌어들이고 붙잡아 두기 위해 갖가지 행정적 술수를 썼고, 학습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활동을 시시콜콜 후견하고 규제하는 길로 들어섰다.
학습반 사업에는 당원의 사상적·정치적 성장을 그르치고 가로막는 학교식 방법이 뿌리내렸다. 그것은 모든 학습반에 「통일 학습일」과 통일된 운영 규정을 강요하고, 학습반에서 대화와 생생한 동지적 토론의 방법을 몰아낸 데서 드러났다.
당 조직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책을 읽는 사람 하나하나를 「통제」하고 읽은 내용을 보고하게 하는 관료적이고 해로운 기획까지 내세웠다.
선전 사업에서의 이런 잘못된 방침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같은 학습반에 다녀야 하고 집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문헌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이론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으며, 학습반 수업 출석은 흔히 괴로운 짐이 되어 버린다.
학습반 가입에서 자발성의 원칙을 어긴 것, 당원을 학습반에 기계적·강제적으로 편입시키는 관료적·행정적 관행, 학습반을 당 교육의 유일한 형태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당원들이 스스로 읽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성공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렸다. 그로써 공산주의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를 깊이, 스스로 익히는 일과 당 간부의 사상적 성장이 손상을 입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체득할 수 있는 자기 힘과 능력에 대한 믿음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학습반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해로운 편견을 깨뜨려야 한다. 실제로는 스스로 읽는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하는 주되고 기본적인 방법이다.
2) 출판물을 통한 선전을 희생시키면서 학습반 사업과 구두 선전 전반을 지나치게 부풀린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출판 선전과 구두 선전의 조직이 해롭게 갈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9]에서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기구에서도 선전부와 출판부가 따로 존재하는 데서 드러났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서 주되고 결정적인 무기는 출판물—잡지, 신문, 소책자—이어야 하며, 구두 선전은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출판물은 어떤 진리든 단번에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출판물은 구두 선전보다 강하다. 선전에 대한 지도를 두 부서로 쪼갠 결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서 출판물의 역할이 깎아내려졌고, 그로써 볼셰비키 선전의 폭이 좁아졌으며 수공업성과 무조직성이 생겼다.
당 선전선동부는 자기 활동을 구두 선전으로 한정하고 학습반 수를 좇느라 당 출판물을 선전 사업에 활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선전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잃었다.
출판부는 출판부대로, 필요한 자격 있는 선전 간부가 거의 모두 구두 선전으로 빠져나가 버려 그런 간부를 갖지 못했으므로, 출판물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선전할 능력이 없었다.
3) 당 선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결함은 당 조직들이 정치적 교육과 우리 간부, 우리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단련하는 일을 소홀히 한 것이다. 이들은 당, 콤소몰, 소비에트, 경제, 협동조합, 상업, 노동조합, 농업, 교육, 군사 간부, 즉 노동계급과 농민이 소비에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쓰는 당·국가·콜호스 기구의 간부이다. 우리 당 선전의 실천은 주로 공장 노동자를 포괄하는 데 집중하면서 지휘 간부, 즉 어제의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우리 소비에트의, 당원 및 비당원 인텔리겐치야를 시야에서 놓쳤다.
『단기강좌』는 우리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와 그들의 정치적·레닌주의적 교육의 필요에 대한 이 야만적이고 반레닌주의적이며 업신여기는 태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자기 과제의 하나로 삼는다.
『단기강좌』는 무엇보다 당, 콤소몰, 경제, 그 밖의 일꾼들의 지도 간부에게, 도시와 농촌의 우리 당원 및 비당원 인텔리겐치야 전체에게 말을 건다.
실무에 매여 있는 우리 당, 소비에트, 경제, 그 밖의 레닌주의 지도 간부들은 이론 분야에서 크게 뒤처졌다. 당사 강좌를 만들면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우리 간부의 이러한 이론적·정치적 낙후를 없애기 시작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다음에서 출발했다. 「…만일 우리가 아래부터 위까지 우리 당 간부를 사상적으로 준비시키고 정치적으로 단련하여 그들이 국내외 정세 속에서 자유롭게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만일 우리가 그들을 나라를 지도하는 문제를 큰 잘못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완전히 성숙한 레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면, 그로써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과제의 10분의 9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스탈린).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볼셰비키적 지도의 기술이 이론, 즉 사회 발전의 법칙, 노동운동 발전의 법칙, 프롤레타리아 혁명 발전의 법칙, 사회주의 건설 발전의 법칙에 대한 지식과,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는 실무에서 이 법칙을 활용하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의 모든 간부는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라는 거대한 군대를 이룬다.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는 그 모든 뿌리로 노동계급과 농민에 이어져 있다. 이것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인텔리겐치야이다.
어떤 국가도 자기 인텔리겐치야 없이는 지낼 수 없었고 지금도 지낼 수 없다.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는 더더욱 자기 인텔리겐치야 없이 지낼 수 없다. 소비에트 권력의 세월 동안 자라난 우리 인텔리겐치야는 노동계급이 대내외 정책을 펼치는 데 쓰는 국가 기구의 간부들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지휘 직책으로 올라선 어제의 노동자와 농민, 노동자와 농민의 아들들이다. 국가가 농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문화 부문을 이끌고, 국가 일꾼 하나하나가 자기 일을 의식적으로,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국가의 정책과 나라 안팎에서의 국가의 과제를 이해해야 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서 인텔리겐치야는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교육하는 과제는 볼셰비키당의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소비에트 국가에서 인텔리겐치야가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지금까지 우리 인텔리겐치야를 업신여기는 태도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것은 인텔리겐치야가 지주와 자본가에게 봉사하던 혁명 이전 시기에 퍼져 있던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견해와 태도를 우리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에게 옮겨 놓은, 극히 해로운 일이다.
인텔리겐치야를 업신여기는 이 태도는 간부와의 사상 교육 사업의 방치, 인텔리겐치야·사무원·교사·의사·대학생·콜호스 인텔리겐치야 등 사이에서의 정치 사업의 포기,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인텔리를 이등 인간으로 취급하는 경멸적이고 오만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설령 그가 공적을 인정받아 소비에트 국가의 지도적 직책에 오른 어제의 스타하노프 노동자[10]라 하더라도 그렇다.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이런 반볼셰비키적 태도는 야만적이고 불량하며 소비에트 국가에 위험하다. 바로 인텔리겐치야 사이에서, 우리 간부 사이에서 정치 사업을 내버려 둔 탓에, 당의 정치적 영향 밖에 놓이고 사상적 단련을 받지 못한 우리 간부의 일부가 정치적으로 탈선하고 갈피를 잃어 외국 정보기관과 그 트로츠키-부하린파 및 부르주아 민족주의 첩자망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이 「마하예프식」, 반레닌주의적 태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본다[11].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를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신으로 교육해야 한다.
그런 인텔리겐치야 없이는 소비에트 국가가 나라를 성공적으로 지도할 수 없다.
『단기강좌』는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를 그렇게 교육하는 수단이다.
III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1.] 선전의 질을 희생시키면서 당 교육망의 학습반으로 공산주의자를 양적으로 포괄하는 데 매달려, 힘을 쪼개고 선전 사업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관행을 잘못된 것으로 본다.
[2.] 당 조직들에 당 선전에서의 조직적 수공업성을 없애고, 당 선전에 대한 지도에 필요한 중앙집권화를 확립하며, 당 선전의 조직을 그 질과 사상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개편할 의무를 지운다.
[3.]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를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의 토대로 삼는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의 학습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상당 부분이 준비가 충분치 않은 동지들로 이루어진 하부 간부층은 당사의 세 기본 단계에 따라 강좌를 축소된 분량으로 공부하는 것이 합당하다. 1) 볼셰비키당 창건을 위한 투쟁(제1~4장), 2)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 속의 볼셰비키당(제5~7장), 3) 집권한 볼셰비키당(제8~12장).
비교적 더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 간부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 중간 간부층에게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단기강좌』를 거기 담긴 12개 장에 따라 전부 공부할 것을 권고한다.
상급 간부층, 즉 가장 준비가 잘된 동지들은 『단기강좌』를 각 장의 하위 절에 따라 공부하면서, 동시에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해당 저작을 원전으로 공부하는 것이 합당하다.
4.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습의 주된 방법은 자습이 되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당 교육 학습반의 수를 줄일 것을 제안한다.
지금 큰 기업소마다, 기관마다, 대학마다 수십 개, 때로는 수백 개씩 있는 학습반 대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한다면 큰 기업소나 큰 기관에는 대략 하부 간부용 학습반 2~3개, 중간 수준 학습반 2~3개, 가장 많이 성장하고 준비된 사람들을 위한 상급 학습반 1개를 두고, 대학에는 중간 및 상급 학습반 몇 개를 두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농촌 지구에서는 『단기강좌』를 학습반에서 공부하려는 사람이 있고 자격 있는 선전원이 있다면, 농촌 인텔리겐치야, 즉 당 및 소비에트 활동가, 교사, 상업·협동조합 일꾼, 콜호스 활동가 등을 위한 학습반을 몇 개 둘 수 있다.
학습반 수를 줄일 때는 학습반에 정말로 자격 있는 선전원을 배치한다는 과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5. 공산주의자를 당 교육 학습반에 강제로 편입시키는 행정적·관료적 관행을 없앤다.
학습반 참가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일이라는 것을 공산주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설명한다.
6. 학습반 사업은 생생한 대화와 동지적 토론을 토대로 짜여야 한다. 당원 볼셰비키와 비당원 볼셰비키의 사상 교육을 가로막는 해로운 학교식·행정적 방법, 관료적 형식주의와 도식주의를 학습반에서 단호히 몰아내야 한다. 선전원은 학습반 성원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해 동지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학습반 사업에 대한 형식적·관료적 규제(통일된 당 학습일, 퇴근 직후의 두 시간 수업, 학습반 참가자들이 관심을 갖는 실천적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 따위)를 끝내야 한다. 학습반마다 수업 일정은 지역 조건에서 출발하여 참가자들이 선전원과 함께 정해야 한다. 수업 한 번은 제기된 문제를 철저히 토론하는 데 학습반 참가자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만큼 계속되어야 한다.
학습반 사업은 수업이 지나치게 오랜 기간으로 늘어지지 않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앞쪽 주제들에 시간을 끝없이 쓰고, 당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10월 이후 시기는 공부하지 못한 채 남겨 두는, 지금 학습반의 가장 큰 결함 가운데 하나를 피해야 한다.
당사 학습반은 참가자들의 일반 교육과 정치적 준비 수준이 어느 정도 고르도록 편성되어야 한다. 준비 수준에 따라, 『단기강좌』 학습을 구분한 데 맞추어 세 가지 유형의 학습반을 두는 것이 합당하다.
가) 우리 간부의 하부층을 위한 학습반. 『단기강좌』를 축소된 분량으로, 이론 문제를 더 쉽게 풀어서 공부한다.
나) 중간층을 위한 학습반. 『단기강좌』를 각 장에 따라 전부 공부한다.
다) 가장 준비가 잘된 동지들을 위한 학습반. 『단기강좌』를 각 장의 하위 절에 따라 공부하면서 동시에 원전을 읽는다.
7.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의 중요한 방법인 강연을 실천에 도입한다. 잘 준비되고 내용이 충실한 강연은 『단기강좌』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가들의 저작을 스스로 공부하는 동지들에게 진지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국제 정세와 개별 이론·정치 문제에 관한 강연도 열어야 한다. 강연이 끝난 뒤 강연자가 질문에 답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적은 입장료를 받는 공개 강연을 조직하는 것을 실천에 도입한다.
8. 당 학습실과 선전원 세미나를 무분별하게 늘리는 데서 드러난, 선전원과의 사업에서의 수공업성과 통제 부재를 없앤다. 당 조직들에 두 달 안에 당 학습실망을 조사하고 재검토하여 그 수를 줄이고, 선전원을 돕고 정치 독학자에게 상담을 해 주는 당 학습실은 원칙적으로 당 시위원회와 지구위원회에만 남길 의무를 지운다. 자격 있는 상담원을 갖추지 못한 기업소와 기관의 당 학습실은 줄이거나, 독학자를 위한 열람실과 도서실로 써야 한다. 당 조직들에 선전원 세미나의 수를 줄이고, 선전원 세미나 사업을 큰 도시의 지구위원회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시위원회,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에 집중시킬 의무를 지운다.
당 조직들은 선전원 세미나를 만들 때 마르크스주의 교양을 갖추고 정치적으로 검증된 지도자를 배치해야 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시위원회,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는 선전원 세미나 사업의 내용을 늘 통제해야 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에 관한 선전원 세미나 사업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학습의 세 가지 기본 형태에 맞추어 짜되, 선전원 세미나가 『단기강좌』 학습에서 학습반보다 훨씬 앞서 나가도록 해야 한다.
세미나는 선전원에게 「주입」하는 자리일 수 없다. 선전원 세미나 수업은 세미나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창조적 작업이 보장되고, 이론 문제에 대한 생생한 토의가 이루어지며, 이론과 방법의 문제에 대한 동지적 토론이 보장되도록 짜야 한다.
9.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 우리 당의 가장 자격 있는 선전원, 강연자, 보고자, 상담원을 결집할 의무를 지운다. 이들은 이론 잡지와 중앙 신문에 기고하고, 지방에 나가 강연과 보고를 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서 지방 당 조직에 실효 있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가장 우수한 선전원들의 경험, 그들의 수업, 상담, 강연을 모아 출판물 지면에 체계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위원회,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선전의 기본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선전원과 출판 일꾼을 정기적으로 소집하는 것을 실천하도록 권고한다.
10.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선전의 전연방적 연단인 출판물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것을 없앤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서 출판물의 역할을 높인다. 이를 위해 『프라우다』, 『붉은 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 공화국·지방·주(州)의 당 및 콤소몰 신문 편집부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문제에 관한 논설, 가장 우수한 선전원들의 상담과 강연,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신문 지면에 체계적으로 싣도록 의무를 지운다. 『프라우다』, 『붉은 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 공화국·지방·주(州)의 당 및 콤소몰 신문 편집부 안에 선전부를 조직하여 이론적으로 준비된 동지를 그 책임자로 세우고, 가장 우수한 선전원들을 편집부 선전부 사업에 끌어들인다.
잡지 『볼셰비크』를 당의 이론 기관지이자 마르크스-레닌주의 문제에 관한 전연방적 상담소가 되도록 개편하여, 당원과 비당원이 관심을 갖는 이론·정치 문제에 대한 답변과 설명을 지면에 싣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당 선전선동부와 국립정치출판사에 선전원, 특히 당사를 공부하는 하부 활동가를 돕는 대중적 소책자의 출판을 보장하고, 당사 학습 보조 자료의 출판 계획을 세울 의무를 지운다.
11.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와 그들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신으로 사상적·정치적으로 교육하는 과제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야만이자 불량 행위로 규탄한다. 당 조직들에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에 대한 올바른 볼셰비키적 태도를 되살리고, 인텔리겐치야, 사무원, 대학생, 콜호스 인텔리겐치야 사이에서 사상·정치 사업을 펼칠 의무를 지운다. 당원 및 비당원 인텔리겐치야 간부의 이론적·정치적 낙후를 없애고,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가 볼셰비즘을 체득하고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가들의 저작을 공부하도록 온갖 도움을 주는 것을 선전 분야에서 당 조직의 가장 시급하고 주된 과제로 본다.
12. 이론 전선 일꾼들의 심각한 낙후를 지적한다. 그것은 그들의 이론적 허약함, 시급한 이론 문제를 대담하게 제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글귀 암송주의와 자구 집착의 만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개별 명제에 대한 속류화와 저속화, 이론적 사고의 뒤처짐, 당이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부문에서 쌓은 거대한 실천적 경험에 대한 이론적 일반화의 부족에서 드러난다. 이론 전선의 모든 일꾼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론 문제를 대담하게 제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끝내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개별 명제에 대한 자구 집착, 글귀 암송주의, 스콜라주의, 속류화와 저속화를 끝냄으로써, 이론 전선의 참을 수 없는 낙후를 단호하고 빠르게 바로잡을 것을 호소한다.
13. 사상 부문의 방치를 없앤다. 그것은 특히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불만족스러운 사업에서 드러났다. 연구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의 러시아어 번역에서 여러 왜곡과 부정확을 허용했고, 레닌 저작 몇몇 권의 부록, 주석, 해설에서 파괴 공작적 성격의 극히 엄중한 정치적 오류를 허용했다.
14.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의 러시아어 번역에서 허용한 왜곡과, 레닌 저작, 예를 들어 제13권의 부록과 주석에 담긴 극히 엄중한 정치적 오류를 가장 빠른 시일 안에 바로잡을 의무를 지운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과 레닌 저작집의 재간행을 앞당길 의무를 지운다.
15. 우리 이론 잡지들이 우리 당의 생활과 투쟁의 절실한 문제들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 자기 안에 갇혀 있다는 것, 강단주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론 잡지 편집부들에 사업을 개편하여, 지면에서 시급한 이론 문제의 제기, 사회주의 건설 경험의 일반화, 우리 간부의 이론적 요구에 대한 봉사, 새로운 이론 문제의 연구, 이론 문제에 관한 창조적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할 의무를 지운다.
16.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2~3월 전원회의가 정한 당 지도 간부의 정치 재교육 체계에 덧붙여, 당의 자격 있는 선전 간부를 재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다음 조치를 시행한다.
가) 다음 중심지들에 선전원과 신문 일꾼을 위한 1년제 재교육 강습을 조직한다.
1) 모스크바, 2) 레닌그라드, 3) 키예프, 4) 민스크, 5) 로스토프, 6) 트빌리시, 7) 바쿠, 8) 타슈켄트, 9) 알마아타, 10) 노보시비르스크. 이 중심지들에 조직되는 1년제 선전원 재교육 강습은 해당 주와 지방뿐 아니라 인접한 주, 지방, 공화국에도 봉사해야 한다. 1년제 선전원 강습의 교육과정은 「레닌 강습」의 교육과정에 맞추어 짜야 하며, 수업은 선전 사업의 숙련,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과 스탈린의 저작을 스스로 깊이 공부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짜야 한다.
모든 1년제 선전원 재교육 강습의 수강생 총수는 1,500~2,000명으로 정하고, 그중 대략 절반은 신문 일꾼으로 한다.
나) 당의 높은 자격을 갖춘 이론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산하에 3년 과정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등학원을 조직한다.
17. 고등교육기관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교육을 『단기강좌』에 대한 깊은 학습을 토대로 짠다. 이와 관련하여,
가) 레닌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독립 과목 대신 대학에 단일 과목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를 도입하되, 앞서 사회·경제 과목에 배정되던 총 시간 수는 교육 계획에서 유지한다. 대학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기초 교육은 『단기강좌』 학습에서 시작하고, 동시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을 공부해야 한다. 정치경제학 교육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를 공부한 뒤에 해야 한다.
나) 지금 따로 있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레닌주의,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의 강좌[12] 대신 대학에 단일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강좌를 만든다.
다) 철학부, 역사학부, 문학부가 있는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에서는 해당 학부에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과목 교육을 유지한다.
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와 전연방 고등교육위원회에 1939~40학년도 시작 전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 강좌 책임자를 선발하여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위임한다.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지방(크라이)위원회, 주(州)위원회, 시위원회에 이론적으로 준비되고 정치적으로 검증된 마르크스-레닌주의 기초 교원을 선발할 것을 제안한다.
마) 마르크스-레닌주의 고등학원 산하에 대학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원을 위한 6개월 재교육 강습을 조직한다.
IV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 대한 당의 지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18.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지방(크라이)위원회와 주(州)위원회의 당 선전선동부와 출판·출판사부를 통합하여 단일한 선전선동부를 만든다.
19.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출판 선전과 구두 선전, 대중 정치 선동에 관한 모든 사업(당 언론, 선전·선동 문헌 출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출판 및 구두 선전 조직, 선전 사업의 사상적 내용에 대한 통제, 선전 간부의 선발과 배치, 당 간부의 정치 재교육과 양성, 대중 정치 선동의 조직)을 선전선동부에 집중한다.
이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결정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선전선동부 사업의 토대로 삼는다.
20.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당 조직들이 선전 사업에서 원칙적으로 다른 모든 일에서 풀려나 이 일에 전적으로 몸 바치고 자기의 이론 및 선전 자격을 끊임없이 높일 수 있는 동지들의 간부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주(州)위원회와 지방(크라이)위원회에 가장 우수한 선전원을 상근 선전 사업에 선발하도록 위임한다.
21. 선전선동부 일꾼은 당 기관이 가장 자격 있는 전문 선전원과 당 문필가 가운데서 선발해야 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시위원회의 선전선동부 안에 강연단을 조직해야 한다.
22. 학습반 수와 기업소·기관의 당 학습실 수를 줄이면 도시에서 선전 일꾼의 일부가 풀려나게 되므로,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이 일꾼들 가운데 가장 준비가 잘된 사람들을 농촌 지구로 옮겨 그곳의 선전 사업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23. 당 시위원회와 지구위원회에 지금 있는 문화선전부[13]를 선전선동부로 개편한다. 지금 문화선전부가 없는 지구위원회에도 선전선동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 지구위원회의 선전선동부 설치는 자격 있는 일꾼이 선발되는 대로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제청에 따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지구마다 따로 허가하는 것으로 정한다.
시와 지구의 당 학습실을 당 시위원회와 지구위원회의 선전선동부에 편입하여, 당 학습실장이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겸하게 한다.
24.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 관구위원회, 당 시위원회와 지구위원회의 선전선동부장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승인하고, 이 위원회들의 선전선동부의 그 밖의 모든 책임 일꾼은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뷰로가 승인하는 것으로 정한다.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두 달 안에 선전선동부 일꾼을 모두 선발하고 승인할 의무를 지운다.
25.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사업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과 긴밀히 이어져 있으므로,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를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관할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6.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모든 당 위원회에 볼셰비키당의 피와 살 같은 사업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에 진지하게 힘쓸 의무를 지운다. 당 위원회는 선전의 내용에 깊이 파고들어 선전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의무가 있다.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마르크스-레닌주의 선전의 조직 전반을 개편하는 일의 지도를 자기 손에 쥐어야 한다.
중앙위원회는 이 중앙위원회 결정의 정신에 따라 당 선전 사업 전반을 개편하는 데는 당 기관의 각별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당 조직에 지적하면서, 선전 개편에 기계적·형식적으로 접근할 위험, 지난날의 선전 사업 경험 전체를 싸잡아 헐뜯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말라고 당 조직들에 경고한다.
당 선전 사업의 지도를 개선하기 위해, 시위원회,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마다 선전과 선동의 조직과 내용 문제만을 전담하는 특별 비서를 두는 것으로 정한다.
* * *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지구위원회, 시위원회, 주(州)위원회, 지방(크라이)위원회, 민족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이 결정을 당 활동가층과 모든 당원에게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의 출간이 우리 간부들—당, 콤소몰, 소비에트, 노동조합, 경제, 문화 일꾼,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야 전체의 간부들—이 자기의 이론적 낙후를 없애는 쪽으로 돌아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단기강좌』는 우리 당과 소비에트 인민의 생활에서 새롭고 강력한 사상·정치적 고양의 시작을 연다.
사회 발전의 법칙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시키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체득함으로써 우리 간부들은 참으로 무적이 될 것이며, 이 이론의 깃발 아래, 레닌-스탈린의 당의 지도 아래 소비에트 인민 전체를 더욱 성공적으로 공산주의의 승리로 이끌 것이다.
1938년 11월 14일
5. 야로슬랍스키, 스탈린의 당사 교과서 작업에 관한 고등당학교 강연 (1939년 12월 21일)
의장 야로슬랍스키 동지에게 발언권을 드립니다.
아카데미 회원 엠. 야로슬랍스키의 발언
동지 여러분, 스탈린 동지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단기강좌』를 어떻게 작업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스탈린 동지가 당사 학습에 언제나 얼마나 큰 의미를 두었는지는 여러분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르크스도, 엥겔스도, 레닌도 가장 의미 있는 학문은 역사라고 여겼다.
당사 학습을 드높일 필요와 트로츠키주의의 역사 위조, 트로츠키주의 밀수품을 폭로할 필요에 관해 스탈린 동지가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 편집부에 보낸 편지[14]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온갖 트로츠키주의적 역사 위조와 싸울 필요에 대해 지시를 내린 뒤, 스탈린 동지는 당의 과제에 온전히 부합하는 당사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몸소 나섰다. 알다시피 그는 먼저 집필 중인 당사 교과서를 위한 개요 같은 것을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작성했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한 권짜리 단기 강좌를 만들되 그 집필을 여러 저자에게 맡겨, 일종의 경연처럼 나중에 가장 나은 것을 고르기로 결정했다. 그 밖에 포스펠로프 동지와 야로슬랍스키 동지에게는 두 권짜리를 쓰는 일이 맡겨졌다. 나에게는 내 두 권짜리 책 『당사 개요』[15]를 고쳐 한 권짜리로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두 권짜리로 말하자면 그 과제는 아직 앞에 남아 있고 아직 수행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당사』는 이제 두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이 될 것이다.
그런 초안이 중앙위원회에 제출되어 정치국원들의 검토를 받은 뒤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절반으로 줄이시오. 240쪽이 넘지 않게 하시오.」 이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 단번에 줄어들지는 않으니, 이 두 번째 판을 두고 아주 많은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판도 중앙위원회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스탈린 동지가 일련의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중앙위원회의 위임에 따라 이 일에 아예 한 그룹이 달라붙었다. 그룹에게는 각 장을 맡아 장마다 자기 판을 내놓는 일이 맡겨졌다. 언젠가 즈다노프 동지는 이를 두고 「콜호스가 통째로 하나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판도 중앙위원회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포스펠로프 동지와 야로슬랍스키 동지에게 최종판을 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포스펠로프 동지와 야로슬랍스키 동지가 네 번째 판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제출한 뒤, 스탈린 동지가 작업에 착수했다.[16] 그는 막대한 국가 업무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넉 달 동안 날마다 끈질기게 교과서 집필에 매달렸다.
스탈린 동지가 이 책에 모인 방대한 자료를 얼마나 손질했는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 『단기강좌』에서 여러분은 그야말로 볼셰비키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작업이 최종적으로 다듬어지기 전에 스탈린이 교과서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끌어들여 손질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탈린 동지는 커다란 검증과 연구 작업을 해냈다. 예를 들어 그가 엥겔스를 집어 든다. 읽다가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눈앞의 것과 다른 엥겔스의 어떤 문장을 떠올리고, 다른 번역이 있지 않은지 확인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의 예전의 나쁜 지도 탓에 나쁘고 틀린 번역이 그의 손에 걸려들고, 엥겔스의 번역이 여럿 따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스탈린은 그 김에 엥겔스 번역을 바로잡는 일까지 한다. 물론 이것은 그의 엄청난 기억력과 마르크스·엥겔스에 대한 탁월한 지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탈린은 그 김에 커다란 이론적 연구 작업을 했다. 그가 교과서를 고쳤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그가 완전히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말하겠다.
이번에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의 스탈린 특집호[17]를 위해 이 저작에서 스탈린 동지가 한 일을 따로 가려내 보려 했더니, 이제는 그것을 떼어 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단기강좌』는 스탈린의 당사 교과서다.
이 교과서가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른바 애태우며 기다렸는지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당사 교과서는 언제 나오는가? 나는 어느 집회에서도 말 그대로 그 질문을 피해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일은 대단히 진지한 일이었다. 스탈린 동지는 이 일에서 서두름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되며, 교과서는 한 해 쓰고 말 것이 아니니 그 안의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한다고 여겼다. 스탈린 동지는 이전 판으로도 교과서를 낼 수는 있었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 「그러나」는 아주 심각한 것이다.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의 풍부한 내용에 대한 이론적 일반화가 모자랐고, 이론적 조명이 모자랐다.[18]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스탈린·몰로토프·즈다노프 동지로 이루어진 중앙위원회 위원회처럼 권위 있는 편집위원회라면 혼자서도 모든 작업을 해내고, 마무리하고, 교과서를 인쇄에 넘길 수 있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스탈린 동지의 크나큰 섬세함과, 앞서 교과서 작업을 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크나큰 배려를 짚어 두고 싶다. 그의 제안으로 포스펠로프 동지와 야로슬랍스키 동지가 편집위원회에 들어갔다. 그 뒤 편집위원회의 마지막 작업이 시작되었다.
말해 두어야겠는데, 당에서 40여 년 일하면서 나는 대체로 아주 많은 편집부를 보았지만, 평생 이런 편집을 본 적이 없고, 학문과 인쇄된 당의 말에 대한 이런 태도를 도무지 만나 본 적이 없다.
먼저 『프라우다』에 장별로 싣기로 결정한 것은 여러분도 알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날마다 저녁 대여섯 시쯤 스탈린 동지의 집무실에 편집위원회가 모였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기구에서 일하는 동지들이 「자, 오늘은 3장인가요?」 하고 말할 정도였다.
나에게 그것은 결코 잊히지 않을 학교, 곧 우리 당의 역사를 대하는 정직하고 볼셰비키적이며 레닌-스탈린적인 태도의 진정한 학교였다.
한 줄 한 줄이 토론에 부쳐졌다. 스탈린 동지는 온갖 종류의 아주 사소한 수정에도, 쉼표 하나에 이르기까지 매우 주의 깊게 대했고, 그것을 함께 토론했다. 말해 두어야겠는데, 중앙위원회 위원 한 사람이 더 이 작업에 참여했다. 바로 포스크료비셰프 동지다. 그는 스탈린 동지의 가장 가까운 큰 조력자이자 훌륭한 사람으로, 스탈린 동지의 일에 큰 도움을 주며 말 그대로 밤낮으로 스탈린 동지와 함께 일한다. 포스크료비셰프 동지도 이 원고 전체를 검토하고 자기 의견을 가지고 왔다. 여기에는 이런 낱말을 넣어야 한다, 여기에는 줄표를, 그의 말로는 「줄표 하나」[19]를 찍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스탈린 동지는 이 모든 의견을 매우 주의 깊게 대하고 그것을 토론했다. 동의하지 않을 때는 자기 논거를 댔다. 그것은 진정한 학교였다. 작업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20] 각 장을 두고 더없이 꼼꼼하게 작업했고, 필요한 수정을 모두 신중하게 저울질했다. 게다가 말해 두어야겠는데, 스탈린 동지가 이렇게 작업에 참여한 탓에 정작 스탈린 동지 자신에 대해서는 볼셰비키당의 역사 교과서에서 마땅히 말해야 할 만큼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박수.) 스탈린 동지는 자기 자신, 자기 역할이 화제에 오르면 더없이 겸손하고 까다롭다.
— 아니, 그건 뭣하러, — 하고 그는 말했다. — 그건 필요 없다.[21]
이것이 스탈린 동지의 겸손이다.
스탈린 동지가 얼마나 거대한 작업을 해냈는지는 여러분 스스로 보고 있다.
그것은 때가 되면 다른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이 착취자의 권력을 떨쳐 내도록 도울 것이고, 우리 당의 이 훌륭하고 영웅적인 길을 그들이 활용하도록 도울 것이다.
스탈린 동지와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서 우리 일에서 그가 하는 역할을 생각할 때면, 나는 일반적인 수학 공식과 조금 어긋나는 듯한 민중의 속담 하나를 떠올린다. 그 속담은 「나눈 슬픔은 반쪽 슬픔이고, 나눈 기쁨은 두 배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탈린 동지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이것을 겪어 왔고, 지금도 겪고 있다. 몹시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스탈린 동지와 이야기를 나누기만 하면 그것이 이제 슬픔이 아니라 반쪽 슬픔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반대로 우리에게 무슨 기쁜 일이 생겨서 스탈린 동지가 당신이 한 일을 칭찬해 주면, 날개가 돋는 것 같고 두 배의 기쁨을 느낀다. 아니,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의 기쁨이다. 그 기쁨은 우리 모두가 스탈린 동지의 동시대인이라는 데 있다. 스탈린 동지와 함께 일하고, 그와 함께 공산주의의 승리를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요 가장 큰 행복이다.
주석
- 원고에는 「지시」와 「초안」이 나란히 남아 있다. 한쪽을 지우고 다른 쪽으로 고쳐 쓴 흔적으로 보인다. ↩
- 1937년 2~3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으로 만든 당 간부 재교육 과정. 지구위원회 서기는 「레닌 강습」에서, 그 아래 초급 당위원회 서기는 「당 강습」에서 다시 교육받게 했다. ↩
- 1882년 10월 20일 편지. 노동자 당은 투쟁을 거쳐 분화하고 그로써 발전한다는 취지의 구절을 스탈린이 즐겨 인용했다. ↩
- 1926년 12월 7일 보고. 원제는 「다시 한 번 우리 당 내의 사회민주주의적 편향에 대하여」이며, 트로츠키·지노비예프·카메네프의 연합반대파를 겨냥했다. ↩
- 벨라루스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선전부장. ↩
- 원문은 функционалка. 1930년 개편 뒤 당 기구를 조직·선동처럼 기능별 부서로 나누던 방식을 낮잡아 부르던 말이다. 이 편제는 1934년 제17차 당대회에서 생산·지역별 편제로 바뀌었다. 스탈린은 이 말을 빌려 마르크스주의를 분과별로 갈라 가르치는 방식을 비판한다. ↩
- 폴란드 출신 혁명가 얀 바츠와프 마하이스키(1867~1926). 인텔리겐치야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새 계급이 된다고 주장했고, 그의 사상은 '마하예프주의'라 불렸다. 스탈린은 그를 러시아식 별칭 마하예프로 부른다. ↩
- 미하일 포크롭스키(1868~1932)는 1920년대 소련 역사학을 이끈 볼셰비키 역사가로, 역사를 「과거에 투영된 정치」로 보았다. 1930년대 중반부터 그의 학설은 반마르크스주의로 단죄되었다. ↩
-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 소련을 구성한 공화국의 공산당은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의 지부이면서 자체 중앙위원회를 두었다. ↩
- 1935년 탄광부 알렉세이 스타하노프의 초과 달성 기록에서 시작된 생산성 증대 운동의 모범 노동자. ↩
- 폴란드 출신 혁명가 얀 바츨라프 마하이스키(1867~1926)의 이름에서 나온 말. 그는 인텔리겐치야를 노동자를 착취하는 새 계급으로 규정했고, 이후 소련에서 「마하예프주의」는 인텔리겐치야를 적대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 여기서 강좌(кафедра)는 대학의 교과 담당 교원 조직을 뜻한다. ↩
- 문화선전부(культпроп)는 당 위원회 안에서 문화 사업과 선전을 함께 맡던 부서이다. ↩
- 1931년 가을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실린 「볼셰비즘 역사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전쟁 전 레닌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중간파를 과소평가했다는 슬루츠키의 논문을 「트로츠키주의 밀수품」이라 공격하며, 당사 연구 전반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
- 야로슬랍스키가 1920년대부터 펴낸 당사 개설서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역사 개요』. ↩
- 초고 속기록에서는 이 대목이 다르다. 넷째 판이 제출되자 스탈린이 「어떤 「콜호스」도 이 일은 감당하지 못한다, 직접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되어 있다. 몇 번째 판을 무엇으로 셀지도 두 속기록이 서로 다르다. ↩
- 1939년 12월 21일 스탈린 탄생 60주년을 맞아 펴낸 기념호. 이 강연도 같은 날 고등당학교에서 열렸다. ↩
- 이 두 문장은 수정 과정에서 더해졌다. 초고 속기록에는 없다. ↩
- 원문은 тирёшка. 줄표(тире)를 귀엽게 줄여 부른 말이다. ↩
- 초고 속기록에는 「작업은 아침까지 이어졌다. 때로는 아침까지, 어쨌든 깊은 밤까지 일했다」로 되어 있다. ↩
- 초고 속기록에는 이어서 다음 대목이 있었으나 수정본에서 빠졌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당의 이론가라고 교과서에 쓰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 그건 뭣하러, 필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스탈린 동지의 겸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았고, 우리는 모두 달려들어 이것을 반드시 당사 교과서에 써야 한다고 설득했다.」 1938년 초판의 결론은 「엥겔스가 죽은 뒤에는 가장 위대한 이론가 레닌이, 레닌 뒤에는 스탈린과 레닌의 다른 제자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앞으로 이끈 유일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쓴다. ↩